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점을 먹고 숙소 1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벽을 보고 난 자리는 조용히 컴퓨터를 하거나 독서를 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치앙마이의 어느 곳으로 빠져나가고 사람이라고는 스탭 한 명과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전부인 오후.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멈춘 것 같기도 하던 그때. 어디선가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노크 소리와 함께.
이렇게 우는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릴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다, 라는 생각에 고개를 드니 스탭이 숙소 옆문을 열고 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제 집인 양 당당히 들어오는 한 마리의 냥이. 고등어를 닮은 자태에 통통하게 부른 배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우완', 발음할 때는 한 음절처럼 붙여서 발음하고 태국어로 '뚱뚱하다'라는 뜻이란다. 빨래와 마사지를 하는 맞은편 집의 고양이인데 이렇게 자기가 내킬 때 이곳을 들락날락한다고 덧붙였다.
치앙마이의 흔한 풍경 1
치앙마이의 흔한 풍경 2
치앙마이는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룬 도시다. 주변 산지와 분지 형태를 갖춘 지리적 요건 덕분에 임업과 농업이 발달하였고 현재까지도 태국에서 가장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라고 한다. 1345년 란나타이 왕국의 두 번째 수도가 된 이후 16세기까지 번창하였고, 동남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외세의 침략을 당하지 않았기에 역사적인 유물들도 보존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도시들과 비교하자면 루앙프라방의 자연과 방콕의 편리함이 공존하는 곳이 치앙마이였다.
치앙마이의 흔한 풍경3 - 골목 안에 사원이 있고 옆집이 사원이기도 하고...
골목마다 다양한 초록잎과 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치앙마이에서는 동물들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길을 걷다가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고양이가 조용히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보면 커다랗고 마른 개가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색적인 동물은 작은 도마뱀, '찡쪽'이다.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찡쪽.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이기에 숙소의 복도나 식당 벽에서 찡쪽을 만나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찡쪽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동물인지 알게 되었다. 찡쪽은 서늘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접착력이 뛰어난 발바닥을 가지고 있다. 90도로 기울어진 벽뿐만 아니라 천장까지 자유자재로 이동하지만 정작 사람이 나타나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딴짓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순간이동을 한 듯 사라져 버리기 일쑤. 결정적으로 찡쪽은 벌레를 먹어치워서 이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찡쪽들
찡쪽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니 이제는 하얀 벽 어디선가 그들이 나타나도 겁을 먹지 않게 되었다. 어제는 조금 외진 골목에 있는 건물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내려왔는데 건물 입구에서 찡쪽을 발견했다. 너무 연해서 투명해 보이는 찡쪽을 발견하고 그 옆에 또 다른 찡쪽을 발견하고 하나, 둘, 세다 보니 무려 열 마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어젯밤 케이시가 팔뚝 만한 사이즈의 진짜 도마뱀은 사람처럼 '악! 악!'하고 운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찡쪽은 울지도 않는다. (찾아보니 이름처럼 '찡쪽쪽쪽!'하고 운다고 하는데 아직 들어본 적은 없다.) 가만히 그늘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붙어있는 찡쪽을 구경하다 보면 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것 같다.
찡쪽에 비해서 우완은 존재감이 강하다. 아무렴, 스스로 집사를 간택하는 분들이시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성큼성큼 움직이던 우완은 테이블 다리에 몸을 밀착하거나 이리저리 비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가 간지러웠나 보다. 우완의 근처로 슬쩍 다가갔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 밑으로 다가와 누워버린다. 발라당.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사야, 어서 내 등을 긁거라. 그리하여 집사 취업에 성공하였습니다...
눈이 감긴다아...
우오오... 너무 사랑스러워...
우완은 특히 자신의 목줄 주변을 긁어줄 때 크게 만족했다. 동그랗게 뜨던 눈이 가늘어지면서 시원함을 만끽하는 표정이었다. 적절한 간격으로 몸을 뒤집어가면서 골고루 몸을 맡기더니 어느 순간 도도하게 걸어가 문 앞에 앉는다.
충분히 긁혔(?)으니 이제 문을 열으라는 무언의 명령. 문이 열리자마자 집이 아닌 어딘가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으로 이름을 아는 동물 친구가 생겼다. 등 푸른 고등어, 아니, 참치를 닮은 우완,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