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훼방꾼은 내 안에 있다!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35

by 리치보이 richboy

제4부. 만렙 독서가, 어떻게 쓸까?


35. 만렙 독서가의 완성은 작가(作家)되기다 (4)



글쓰기의 훼방꾼은 내 안에 있다! - 내면의 비판자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훼방꾼은 바로 ‘내면의 비판자’, 곧 '내 속의 나' 이다. 내면의 비판자는 글을 쓰다가 한 문장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소름이 돋아서’ 마침표를 찍지도 못하고 지워버리든지, 글을 쓰는 중간마다 도대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생각을 들게 해서 사전을 찾고 싶어 지게 만든다.

글을 쓸 때 내 속에 있는 내가 글을 쓰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내면의 비판자를 만났다’고 보면 된다. 글을 쓸 때 내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게 뭐야, 이게 글이야? 웃기고 있네.'

'야, 야, 야! 집어치워라.'

'너는 띄어쓰기도 제대로 못하고, 마침표도 제대로 못 찍잖아. 이런, 맞춤법도 틀렸잖아. 잘 한다 잘해. 이렇게 하다간 한 줄 쓰는데 한 시간 걸리겠다, 쯧쯧 쯧.'


글을 쓰려고 할 때 내면의 비판자를 만나면 글쓰기는 더뎌지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을뿐더러 온전히 내 생각을 종이 위에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주제가 무엇이든, 소재가 어떻든 우선 머릿속 생각을 비우듯 아무 제약 없이 남김없이 글로 쏟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잘하려면 자기 검열을 하는 ‘내면의 비판자’를 우선 제거해야 한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이 ‘내면의 비판자’의 정체를 센서, 즉 ‘논리적인 뇌(좌뇌)’라고 말했다.


“센서는 논리적인 뇌의 운동이다. 논리적인 뇌는 선택을 하는 단정적인 뇌이다. 논리적인 뇌는 깔끔하고 직선적으로 생각한다. 논리적인 뇌는 세상을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이해한다. 예를 들면 논리적인 뇌에게 있어 ‘말(馬)’은 말을 이루고 있는 동물적인 요소를 조합한 것일 뿐이다. ‘가을 숲’은 가을 숲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색깔들로만 비칠 뿐이다. 논리적인 뇌는 가을 숲을 보고 ‘빨강, 오렌지, 노랑, 초록’이라고 쓴다.


논리적인 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생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논리적인 뇌는 기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은 무조건 틀렸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논리적인 뇌는 똑바로 줄지어 행진하는 꼬마 병정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논리적인 뇌는 우리가 신중해야 할 때 특히 귀 기울이게 된다. 또한 논리적인 뇌는 우리의 센서이고 제2, 제3, 제4의 생각이다. 처음 쓴 원고를 보고 논리적인 뇌는 “도대체 이게 뭐야? 틀렸어!”라고 말한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35쪽)


쉽게 말해 내면의 비판자는 늘 같은 일만 하는 ‘좌뇌의 목소리’다. 만약 당신이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에서 단 1센티미터만 벗어나면 내면의 비판자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치를 해야 하고, 8시 5분까지 지하철역에 도착해야 하고, 출근하면 꼭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하고, 10시 30분 정도 되면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만약 당신이 이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내면의 비판자’가 이렇게 속삭인다.


“어이, 이봐! 시간이 지났잖아! 왜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정신이 맑아지지 않잖아. 얼른 마시라고. 빨리, 빨리!”

“아, 그것 참 이 사람 좀 보게. 점심식사 후 양치를 하지 않았잖아. 그러고 어떻게 오후를 보내려고 하지? 얼른 다녀오지 그래?”


좌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늘 하던 대로 행동하기를 원한다(반면 우뇌는 창조적인 뇌다. 그래서 변화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습성이 있다.). 조금이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경고를 보낸다. 그런 까닭이다. 글을 쓰는 당신에게 좌뇌가 말을 거는 이유가.


글은 잘 알던 것, 익숙한 것만을 쓰는 게 아니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기분 등 알고 있었지만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던 일들을 쓰는 것이다. 좌뇌에게는 새로운 무엇이다. 당연히 좌뇌는 불안하다. 주어진 길을 벗어나려는 당신이 불안하다. 그래서 자꾸만 가로막는다.


모닝 페이지는 그래서 필요하다. 매일 3쪽에 걸쳐 모닝 페이지를 쓰다 보면 ‘내면의 비판자’를 잠재울 수 있게 된다. 쓰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도리어 쓰지 않을 때 나타날지 모른다. 또한 모닝 페이지는 누구에게 보이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쓴 것이 있을 수 없다. 내면의 비판자로서도 꼬투리를 잡을 게 없다는 말이다.


미국의 유명한 글쓰기 선생이자 작가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에서 ‘모닝 페이지 쓸 때의 유의할 점’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논리적 사고는 버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핵심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쓴다는 사실이다.


1.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2.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3.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4.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5.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6.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 26쪽)


결론적으로 매일 3쪽에 걸쳐 내 생각을 적어나가는 모닝 페이지는 당신으로 하여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종이 위(혹은 모니터)에 내려놓을 수 있게 하고, 글 속에 나의 고백을 담는 법을 알려준다. 내 생각을 글로 술술 풀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글을 쓰고 난 후 읽어봤을 때 온전히 내 생각이 글에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글쓰기가 얼마나 즐거울까 한번 생각해 보라.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 고백은 훈련해야 할 수 있고, 모닝 페이지도 꾸준히 써야 글이 술술 써진다.


‘어떤 행동을 습관이 들게 하려면 66일 동안 같은 시간에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다시 말하지만 연습의 결과는 ‘습관화’다. 이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루에 단 한 단락이라도 글을 쓰지 못하면 허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글쓰기가 일상이 되어 있다면, 즉 글쓰기가 하루라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습관이 되었다면 당신은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자, 이제부터 모닝 페이지를 써보자. 딱 두 달만 투자해보자.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책과 더욱 가까워질 것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있은 뒤에야 책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글을 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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