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 기술, 모닝 페이지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33

by 리치보이 richboy

제4부. 만렙 독서가, 어떻게 쓸까?


33. 만렙 독서가의 완성은 작가(作家)되기다 (2)



2.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 기술, 모닝 페이지


대학 졸업 후 사업을 하면서 4년 동안 조금씩 모은 종잣돈을 친한 친구의 부동산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한다던 ‘부동산 개발 사업’이 거짓이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돈을 날린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설상가상 평소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봄철 이른 아침 출근길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돈도 잃고, 절친한 친구도 잃고, 아버지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기분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후 어느 노랫말처럼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다. 난 세상을 등졌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깊이깊이 자맥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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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끼꼬모리(引き籠り)라는 일본말이 있다. 정신적인 문제나 사회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따위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 은둔형 외톨이, 그때 내가 그랬던 것 같다. 거의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살았다. 감정도 없었다. 웃지도 않았고 화도 안 냈다. 하지만 수시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의욕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으니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살았다. 반면 누군가 내 공간으로 다가온다고 느낄 때는 극도로 예민해져서 마치 새끼를 품은 어미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 가족과도 원만할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방송작가인 그 친구는 한 손에 술을 들고 와서는 말없이 잔에 채워주며 깊은 밤까지 내 이야기만 들었다. 친구는 돌아가는 길에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그때 나도 내일이 없는 듯 캄캄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큰 도움을 얻었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경당)라는 책이었다. 하지만 난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다 귀찮았다.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아티스트 웨이>를 다시 발견한 건 몇 달이 지나서였다. 심심하던 차에 친구의 당부가 생각나 몇 페이지를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고 그날 밤을 하얗게 새우며 모두 읽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한 번을 읽었다.


이 책은 소설가,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처럼 글밥을 먹고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책이었다.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하여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작가였다. 그러나 스콜세지와 이혼 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다가 ‘모닝 페이지’를 만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 그때 그녀가 깨달은 것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가치는 바로 창조성이라는 사실이었고, 이는 모닝 페이지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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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페이지란 매일 세 페이지 글쓰기를 말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펜을 종이 위에 내려놓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적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내 생각 내려쓰기’이다. 모닝 페이지의 특징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글을 쓴 자신도 다시 보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자가 삐뚤빼뚤해도 상관없고, 글씨가 크거나 작아도 상관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이어도 괜찮다. 욕을 해도 좋다. 어차피 아무에게도 보일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글을 쓴다’는 모닝 페이지의 글 쓰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내 가슴속에 꾹꾹 숨겨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원래 모닝 페이지는 글을 쓰기 위해 창조적 영감을 불러내도록 고안된 방법이다. 매일 같은 시간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날 내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영감 같은 것이 생각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모닝 페이지가 아닌 ‘나이트 페이지’를 썼다. 주위가 고요해지는 깊은 새벽이 되면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글을 썼다. 멍하니 보내는 하루 중에 유일하게 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였다. 당시 무엇인가에 집중한다는 건 내게 적지 않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모닝 페이지를 쓸 때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모닝 페이지는 최초의 의도였던 ‘지금 떠오르는 생각 쓰기’에서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글쓰기로 변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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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나는 수도 없이 화를 냈고, 많이 울었다. 펜을 얼마나 내던졌는지 모른다. 또 종이를 얼마나 꾸겨서 찢어버렸는지 모른다. 처음 두 주 동안이 가장 심했다. 혼자서 글을 쓰면서 울다가 화내기를 반복하다가 지쳐 잠이 들곤 했다. 다음 날 밤, 글을 쓰면서 마음이 괴로워질 생각을 하면 기분이 우울해져서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쓰면서 내 어깨와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내 과거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과 마주 앉아 울고불고, 화를 내고, 싸우며 그간 못다 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쏟아내다 보면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그들을 용서하게 되거나 혹은 용서를 빌며 화해했다.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책에서는 모닝 페이지 글을 따로 모아 두라 했는데, 나는 매일 쓴 글을 밖으로 들고나가 담배를 피우며 태워버렸다. 그러면 내 고민과 시름들이 함께 타서 날아가는 듯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처음 모닝 페이지를 쓸 때처럼 내 생각을 편안하게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나는 인적이 뜸한 밤거리를 걷기 위해 밖을 나와 무작정 새벽길을 걸었다. 이 날은 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지 1년 만의 외출이었다. 나는 밤길을 걷는 내내 기뻐서 울었고, 그런 내가 또 불쌍해서 울었다.


“사는 것이 버거운 것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심리학자 융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모닝 페이지로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내게 난 상처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 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물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그러니까 모닝 페이지를 쓰기 전에는, 나는 매일 마음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사람이었다.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긁고 뜯어서 또다시 더 큰 상처를 냈던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상처의 깊이만 더해졌다. 조금 더 늦었다면 나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모닝 페이지를 쓴 지 두 달 후 나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태양이 비추는 밝은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동안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읽는 모든 책을 쭉쭉 흡수했다. 책을 덮으면 곧바로 리뷰를 썼고, 또다시 밤이면 모닝 페이지를 세 페이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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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에 읽은 책 중에 13억 중국인의 스승으로 알려진 지셴린의 <다 지나간다>(추수밭)가 있는데, 이 책의 본문 중에 “아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오늘, 내 나이에 한 살이 보태졌다. 나는 또 한 해를 죽은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또다시 오늘을 산다.”라는 글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나는 또다시 오늘을 산다.”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새겼다. 그리고 ‘어제는 죽었다. 나는 또다시 오늘을 살겠다는 각오로 하루를 살자’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았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가 <모닝 페이지로 자서전 쓰기>(랜덤하우스 코리아)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를 배출하는 작가로 잘 알려진 송숙희 선생이 쓴 책이었는데, 6~7년째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던 나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마치 동지의 글을 만난 듯 반가웠다. 본문에서 저자 역시 모닝 페이지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나 또한 우울하거나 분노하거나 슬플 때 글을 쓴다. 생각나는 대로 정신없이 쓰고 나면 설움 끝에 잔뜩 울고 난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 흙탕물에 빠져 오물 범벅이던 정신을 맑은 물에 몇 번이고 헹구어낸 듯한 느낌이 든다. 뇌가 감정의 지배를 받다가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지배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감정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도 사색하게 되고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작가 이윤기의 말마따나 ‘글을 쓰는 일은 길이 없을 줄 알았던 곳에서 또 하나의 마을을 발견하는 일’이다.” (모닝 페이지로 자서전 쓰기, 송숙희, 71쪽)



글 쓰는 삶으로 다시 일어난 후 분당에 있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과 수요일 오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6주간 ‘글쓰기 입문’을 가르쳤는데, 나는 커리큘럼 속에 ‘모닝 페이지’를 넣었다. 내 경험담을 종교인의 간증처럼 들려주고 수강생들에게도 매일 모닝 페이지 쓰기를 권했다. 반갑게도 10명 중 꼭 한두 명씩은 옛날의 나처럼 ‘모닝 페이지’의 매력에 푹 빠지곤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닝 페이지의 효과로 두 가지를 꼽는다. 글쓰기도 익히게 되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도 달라졌단다. 40년 동안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전교육 강사로 활동해온 어느 60대의 수강생은 “모닝 페이지를 하다 보니 글쓰기가 한결 편해졌다. 덕분에 나머지 인생에 글쓰기 친구를 얻었다.”라고 소감을 밝혔고, 두 자녀의 엄마인 30대의 주부는 “글쓰기로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너무나 개운하다.”며 활짝 웃는다.


글쓰기에 주저한다면 나는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모닝 페이지를 하면 마음이 개운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고백’ 때문이다. 그래서 모닝 페이지를 쓰게 되면 ‘진짜 나’를 글에 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글쓰기는 나와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글쓰기에는 내가 담겨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그 글이 진솔하다고 느끼고, 살아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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