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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리 Aug 24. 2020

해외 취업 대신 한국에 비상 착륙하기

지난 8개월간의 고군분투에 대한 회고

이 매거진의 첫 번째 글의 제목은 '도망가자, 중국으로'였다. 내 인생엔 아주 거대한 똥이 투척되었고, 컴포트 존을 떠나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뭘까 고민했고, 해외 취업이 답이라 생각하고 도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고, 이 매거진의 마지막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작년 12월에 퇴사하기 전부터 해외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썼다. 2월에 퇴사를 했고, 퇴사 당일 알리바바에서 서류 통과 후 면접을 보자는 제의가 왔다. 두 번째 면접을 봤고, 코로나를 만났다. 호주의 아틀라시안과 인터뷰를 하자마자 코로나 확진자 접촉자 발생으로 시드니 오피스는 문을 잠시 닫았다. 이 상태로는 역시 해외취업은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인 4월쯤, 페이스북에서 링크드인을 통해 폰 스크리닝 인터뷰 제안을 받고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기회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물론 다 떨어졌다.


한 4월 중순부터 한국에도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해외 취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짐 싸서 싱가포르나 중국에 직접 가서라도 일할 기회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퇴사도 쉽게 한 것이 아니었는데, 마침내 한국에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겨야 했을 때 절망스러웠고 슬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내가 예전보다 더 별로인 회사에 가게 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까 하면서 불안해하곤 했다.


한국에서 취업한다고 아무 곳이나 갈 수 없으니 이력서를 쓸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재정적으로 건전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여야 하고 융통성 있는 회사 문화를 가진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외국계 스타트업 최종 면접을 거절했고, 이후 몇 개 회사의 채용 과제를 하던 시간이 있었다. 


물론, 8개월간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을 고르라면, 한 회사의 5차 면접을 보고 떨어진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떨어뜨릴 거면 좀 더 빨리 떨어뜨려주시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면접 결과 기다릴 땐 정반대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난 백수 답지 않게 지난 몇 달간 일이란 일은 다 만들어서 바쁘게 보냈다. 그림 그리기, 운동, SQL/엑셀 공부, 글쓰기 등을 하면서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이력서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대표 면접을 앞둔 두 개의 회사가 내 선택지로 남았다. 두 개 다 붙으면 양쪽이 전혀 다른 분야라 너무 고민될 것 같았다. A회사는 중견기업인데 실무진 면접 때 팀장님이 내 포트폴리오를 마음에 들어하셨고, 나라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거듭 말씀하셔서 기대를 했다. B회사는 해외에 있는 회사와 함께 일하는 거라 해외 취업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좀 달랠 수 있는 곳이었다.


결국 A회사에선 면접 탈락 통보가 왔다. 보통 면접 탈락을 하면 '아쉽게도 귀하를 이번 기회에 모시지 못했습니다'류의 답장이 오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이런 뻔한 문장으로 시작한 메일 하단에 엄청난 장문의 편지가 있었다. 

(중략)

전달 주셨던 포트폴리오나 ㅇㅇㅇ로서 성과가 훌륭하고 애티튜드도 너무 좋으셔서 다른 초보 ㅇㅇㅇ보다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아쉬움에 메일 드립니다.

현재 저희 업무가 많아 초보 ㅇㅇㅇ보다는 바로 업무에 투입하여 프로젝트 진행할 인력이 필요하다 판단되어 함께 하지 못하지만 나나리 님의 능력 부족이 아님을 명확하게 말씀드리며 꼭 좋은 ㅇㅇㅇ가 되셔서 나중에 함께 일할 수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취준을 하면서 진심이 꾹꾹 담긴 글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먹먹했다. 나 같은 나부랭이를 위해 면접에 참여했던 팀장님은 시간을 할애해서 부족한 지점을 짚어주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답장을 썼다. 인사팀에 이런 이메일을 쓰기는 처음이었다. 짧은 메일이었는데 2시간은 붙잡고 썼던 것 같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아낌없는 조언을 전해주시고, 초보 ㅇㅇㅇ로서의 장점을 발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직군 전환을 준비하면서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팀장님 덕분에 다시 열심히 할 힘을 얻었습니다.

면접을 통해 팀장님의 ㅇㅇㅇ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팀원으로 함께 일할 기회가 없어 아쉽습니다. 앞으로 말씀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필요한 업무 스킬을 보완하여 좋은 ㅇㅇㅇ로 성장하겠습니다.

모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며, 나중에 함께 일할 기회가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B회사의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타들어갔다. 왜냐하면 8개월 내내 이력서 쓰고 면접 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니, 이젠 도무지 이력서를 쓰려해도 써지지가 않았다. 너무 지쳐버렸다. B회사가 안되면 제주도라도 가서 마음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내 B회사에서 온 메일에서 8개월 중 처음으로 그 단어를 보게 되었다.


최종 합격, 그렇게 한국에 비상 착륙했다.




Photo by Yeo Khe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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