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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6. 2023

요양병원에서 마주 할 현실

그것이 또 다른 절벽일 줄이야.

내과적 급성기가 지났습니다.
슬슬 전원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저 말이 과연 좋은 뜻만 담고 있을까?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다.

치료에 최선을 다했으며 당장 오늘내일 돌아가실 건 아니다.


혹은


앞으로 회복에 집중하세요.



불행히도 전자다.

우리 엄마의 경우엔 그랬다.

의식상태는 더 이상 좋아질 수 없을 것이며

이대로 남은 단계는 임종이었다.

폐가 안 좋다는 것은 그와 연결된 심장도 필연적으로

안 좋아진다.

폐가 안 좋은 환자들은 경험상 오래 사시기가 힘들다.

나는 저 두 문장을 지겹게도 많이 들어왔다.



엄마를 전원 하던 날, 인턴 선생님이 엄마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사설 구급차는 지저분했고, 열악했다.

엄마의 맥박과 산소포화도는 불안정했고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까지의 10분 거리를 살얼음판 위를 걷듯 힘겹게 이동했다.



엄마가 옮겨지는 동안 나는 1층에서 이것저것 온갖 서류에 동의했으며 다른 친척들은 먼저 엄마를 보러 올라갔다.


여러 설명을 듣고 의사 선생님의 얕은 한숨과 종이 사각거리며 넘어가는 엄마의 의무기록사본, 작은 웅성거림, 떨리는 내 목소리,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몇몇 질문과 그가 만지작거리던 DNR 서류 사인을 보류한 끝에 나는 그제사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창문하나 없는 3인실 끝방.

엄마는 벽을 바라본 채 누워있었다.

의미 없는 손까 딱 임, 고정된 엄마의 고개, 아무리 눈을 마주치려 들어도 엄마는 내 눈동자가 아닌 허공 어딘가 내 뒤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는 눈 맞춤 할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보다는 따뜻한 그러나 여전히 차가운 엄마의 손에서 전해지는 서늘함.

나는 엄마가 죽음에 먹어치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서늘한 손 발을 차례대로 매만졌다.

끝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힘겹게 떼어내고

그 다음번 면회에서 만난 엄마를 마주하자 나는 다시금 연명치료를 후회하게 되었다.






뒤통수의 욕창과 관리의 수월함을 위해서였을까?



병원에서 손을 보았는지 무척이나 짧게 깎인 엄마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3cm는 족히 수북이 올라온 흰머리 다발



그걸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바닥 아래 더 한 바닥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엄마는 무슨 꿈을 보고 있을까?

저 눈동자로 나를 보지 않는 엄마는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있을까?

간병인은 살갑지만 나에겐 그런 것들조차 전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꿈꾸는 순간처럼 느껴지더라.



요양병원.

어쩜 그리도 단어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아프던지.

네 음절의 단어는 입에 머금을 때마다 내 혀를 베어내고 삼킬 때마다 내 목구멍을 찢고 내려간다.



와상/기관절개/홈밴트 착용/소변줄/콧줄/의식 있으나 의사소통 불가 

COPD / 부정맥 / 당뇨 / 갑상선 / 뇌경색 + @ 

엄마는 결코 집에서 모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알면서도 시도했다.

집에서 모시면 안 되겠냐 여러 차례 질문했다.

모두 다 거절당하고 엄마를 요양병원에 옮기고 난 후 나는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 병원에 전달하였다.



욕창매트부터 노워시 샴푸 린스 바디워시 라던지, 비누나 기저귀 등등 모든 물품을 합치니 총 70만 원가량이 나왔다.

엄마의 병원비를 결제할 때보다 더 가슴 아팠다.

자기는 죽어도 요양병원 안 들어갈 거라고 간병인에게 이야기했던 엄마가 결국 요양병원에 몸을 뉘인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DNR 동의서에 사인을 못했다.

위급상황시 승압제 사용이나 신장투석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콕 집어 물었다.



" 이 중, 환자의 입장에서 아플만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



그 질문에 의사는 심폐소생술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머지는 환자가 썩 고통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원한다.

바닥 아래 더한 바닥 있음에 좌절하고 아파하고 어디까지 사람이 아파질 수 있나를 체험하고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엄마의 죽음이 머지않아 나는 엄마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애쓰고 있으며, 사실 이 모든 노력은 내 욕심이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의료인 아닌 우리말도 서툰 간병인 분에게 엄마의 케어를 부탁하고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

CCTV라도 설치하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른 채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인다.

환자의 간병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트집을 잡는다던지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엄마를 인격 있는 하나의 존재로 대우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만 되어도 대부분의 요양병원들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가족처럼 가엾이 여기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으로만 봐주기를 간절히, 간절히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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