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불가결한 과정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한가닥도 없던 흰 머리가 내 두피를 덮어나가고 늘 부어있는 눈과 음식을 먹고 토하고 종일 울고 못자고 정신빠져있던 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이다.
집에 굴러다니는 우울증약과 불면증 약통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은 정신승리였다.
애틋하고 안쓰러우면서도 미운 엄마.
내 학창시절을 눈물로 얼룩지게 만들고 나를 슬프게 하고 애기같이 굴어 나를 아프게 한 나의 엄마.
회를 참지 못해 내게 폭력을 행사했던 나의 엄마.
말로 나를 상처주던 나의 엄마.
금전적 지원은 고사하고 학생때부터 온갖 고된 아르바이트로 고작 30대 중반, 내 어깨가 이미 회전근개파열로 너덜거리게 만든 엄마
그러나 나의 작고 여린 엄마.
참을성이 없고 단순하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나의 엄마.
여자혼자 장사하며 매일매일 돈을 벌어 생존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안쓰러운 나의 엄마.
죽음이 다가오자 불안감에 아기처럼 쉴새없이 칭얼거리며 나를 찾던 약해진 나의 엄마.
가장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늘 나에게 기대던 나의 유악한 엄마.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라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대신 내가 선택한, 살려고 발악하는 나의 최상의 선택지가 그것이었다.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이렇게 아프기 전 엄마의 장례식을 꿈 꾸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저승사자가 데리러온 꿈을 꾼 내가 이 아픔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울을 보며 한두달만에 바짝 늙은 나는 염색을 했다.
눈에 보이는 흰머리들 부터 없애 나가기 시작했다.
집을 치워나가기 시작한다.
심호흡을 하고 본가에 들어가 우편물을 정리하고 나온다.
낮에는 뚝방길을 달리면서 몸을 괴롭힌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을 위해서 강제로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미뤄놨던 여가생활 중 내 에너지가 필요없는 것을 골라 잠시나마 정신을 돌린다.
가끔은 미래를 상상하고 가끔은 과거를 회상한다.
매일 샤워를 하고 그러면서 나를 위한 시간 투자 라고 생각하며 정성껏 머리를 빗어준다.
매일매일 끄적여놨던 글을 모아 하나 둘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그건 내 감정이 북받칠때마다, 혹은 하고 싶었던 말이 생길때마다, 혹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을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넘치는 물을 다른 컵에 덜어놓듯 내 고민이나 감정도 함께 덜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대부분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아직 부모님들이 정정하셔서 내 주변에 부모님을 보내드린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해봐야 여섯명 남짓이고 그들은 두명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지인 정도의 친분이고 가깝지 않은 사이들이었다.
게다가 투병 생활을 길게 가졌거나 병원을 들락날락 하다 부모님과 이별 한 친구들이 전무하기에 이 길어지는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운 좋게도 길어지는 이별준비 시간이 감사하면서도 정신을 갉아먹히는 기분에 도무지 버틸수가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함께 숨이 멈췄으면 싶다가도 나 라는 사람 주변에도 내 숨이 멈추면 슬퍼할 사람이 적어도 셋은 되었다.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도 슬퍼해줄 사람이 있구나 싶어 나는 그렇게 또 하루를 꾸역꾸역 이겨낸다.
보호자로 있으면서 여러단계를 거쳤다.
점진적으로 안좋아지는 엄마의 상황을 눈으로 인지하고 하나 하나 내려놓고 포기해가며 소원마저 소박해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좌절을 했던지.
그야말로 나쁘게 말하는게 정신승리였고 다른 표현으로는 관점의 전환이며 불교정신으로는 바꿀 수 어
오히려 장례때는 덜 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