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일 2024
흠뻑 젖을 줄 알면서도
뛰면 된다 믿었다
나는 너만큼 빠르니까
너를 피할 줄 알았다
준비 못 한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게 정정당당한 사내의 길이라 여겼다
한참을 뛰던 남자가 멈췄다
이 비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하늘이 울고 있다고
그 슬픔은 헤아릴 수 없다고
더 이상 젖을 곳도 없다며
덩달아 우는 아이에게 웃옷을 건넨다
맨몸으로 오롯이 너를 느끼며 가겠다
천천히 너를 마주하겠다
남자는 다시 걷는다
지독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