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5년 차, 경력이 아니라 살을 쌓았다
지져쓰! 작년에 산 옷들이 다 안 들어간다니
나트륨과 당은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살아가라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회사문을 박차고 나가면 맛있는 게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도대체 왜 급식 같은 수준의 음식이 나오는 구내식당을 가는지,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 오는지 이해가 안 되던 MZ시절의 나에게 어떤 선배는 얘기했다. ‘너도 나이 들어봐’. 도파민이 뇌를 지배해서 가만히 있어도(사실 그러지 못했지만) 기초대사량이 높던 20대 때에는 나이 들고 살찌는 미래는 아주 먼 훗날일줄 알았다. 아니, 가시고기 같은 나에겐 영원히 없는 일일거라 생각했다.
저는 숨만 쉬어도 살이 빠져요
뭐 이런 건방진 말이 다 있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마른 체형으로 태어난 이들은 20대, 그리고 운 좋으면 30대 초반까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퇴근 이후 운동이든 모임이든 데이트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케줄이 가득한 시기에는 다이어트를 노력하지 않아도 몸매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핫플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걸었을 거고, 아직까지는 세상이 흥미롭기에 새로운 도파민들을 눈코입귀로 흡수하며 미친 듯이 칼로리소모를 했을 테니 말이다.
살아가는 게 익숙해지니 살크업이 찾아왔다.
날씬과 슬림을 오가는 내 몸에도 변화가 왔다. 귀여운 뱃살로 시작된 이 불청객들은 35 이후부터 조금씩 내 곁에 들러붙더니 이제는 징그러운 살덩이가 되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세상에 더 이상 흥미로운 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느껴진 건, 어느 회사를 가건 어떤 일을 하건 쉽게만 느껴진 건, 남이 내 말을 하건 말건 이 또한 지나갈 테니 흥분하거나 맞받아치지 않는 전투력 상실의 인간이 된 건. 슬프게도 이 시기의 사진첩을 보면 퇴근 후 누군가와 어울리는 일들도 확연이 적어져 있다.
시간이 많아진 노인 직장인은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밝히건대 요리는 생존이다. 세상의 나트륨과 당이 가득한 음식들에서 내 몸을 지키고 생명을 ‘건강하게’ 연장시켜 줄! 솔직히 아직까지 살은 1그램도 안 빠졌다. (2주 차라 그런가?) 사 먹을 줄만 알았지 요리에 무지한 나의 개똥 같은 요리실력은 다행히도 맛없어서 입맛을 한번 떨궈주고, 비주얼이 구려서 한번 더 입맛을 떨궈주고 최종적으로 천천히 먹게 만들어줘서 포만감은 안겨준다. 웃기게도 가장 큰 고역은 도시락을 싸 오는 게 아닌 이 못생긴 도시락을 남들 앞에서 개봉하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요리포트폴리오를 개봉해야 할 때면 평생 없던 낯가림도 생기고는 한다.
도시락 만들기 다음으로 탑재하게 되는 건 혼밥기술인 걸까? 나이 드는 건 참으로도 어렵고 외롭고 맛없고 재미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