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 감사 ]
날카로운 칼날이 손을 스쳤다.
멈추지 않는 피에 적잖은 당황을 했다.
실수할 일이 아니었는데 어이없게 생겨난 상처에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깊게 베였나 보다.
한 참을 기다려도 아물지 않은 손가락을 붙들고 멍하니 차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금세 어둑한 밤이 되어버렸다.
창문을 여니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볼을 스쳤다.
"아, 내가 이걸 좋아했었지."
이 계절에 부는 바람엔 토닥거리는 손길 같은 느낌이라 좋아하곤 했다. 저녁이 어둑한 때, 습기도 없는, 차갑지도 않은... 몇 주 정도만 느낄 수 있는 이 계절의 바람. 이때엔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에 몸을 맡기면 그 자체로 이미 위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고다...'
주말 아침의 상쾌함을 한 순간에 잃었다.
찰나에 본 얼굴이 뇌리에 확 와서 박혔다. 손에 난 상처를 보고 있으니 그때 느낀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기억에 남은 사고가 너무 생생하게 떠올려졌다. 그것도 대형 사고. 내가 버스에서 졸면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날이 나의 수업 발표날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없었을지도 모를 사고. 누군가는 삶을 마감해야 했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응급인 상황이었지만,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던 두 번의 사고. 새벽 출근길 운전에 추돌사고. 스스로 핸들 한 번 더 꺾지 않아 간신히 고가다리 아래로 추락하지 않았던 사고.
이런 일 이후에 나는 삶의 모든 것들에 긴장을 안고 살아갔었다. 아주 작은 것들에도 쉽게 놀라고, 큰 소리에는 많이 민감해져 잠시 나가 숨을 쉬어야 했다.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늘 안전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꽤나 괜찮다 싶었고 잘 지낸다 싶었는데, 순간 떠올린 기억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려지는 걸 보니 그게 노력한다고 지워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순간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늘 그렇듯 스스로를 토닥이며, 며칠 시간을 보냈다.
내게 위로가 되는 모든 것들에게 나를 내어 맡겼다.
하지만 안정되지 못한 마음은 결국 작은 생채기 하나를 손에 내고 나서야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요즘 나의 마음은 이랬다. 커다란 사회의 티끌만 한 한 명의 일원이 되었지만 사람과의 관계, 일과의 관계, 얽히고설켜 대체 내가 할 줄 아는 일은 있는 건지, 대체 뭘 어디까지 해야 선을 넘지 않는 건지. 잘한다고 애를 쓰고 애를 써도 뭐 그렇게 맘에 안 들어하는 사람들은 많은 건지. 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까지 하는가 싶은 날들이 계속되었었다. 인생은 원래 그렇게 사는 거다 되뇌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쳇바퀴 돌 듯, 또 아침에 일어나 가기 싫다를 내뱉으며 일터로 나가야 하는 하루가 그냥 불만스러웠었다.
그런 나의 마음들과 나의 불만이 주말을 보내며, 행복한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알았을까,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난 발걸음이 생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줄을...
나의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고치기 시작했다.
왜 늘 항상 어떤 일을 겪고 나서야 그 마음을 갖게 되는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언제 어느 때에 어찌 될지 모르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며 후회할 일을 많이 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최선을 다해 한 없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고.
그저 나눠 줄 수 있다면, 나눠주기로 했고. 하고 싶다면, 도울 수 있다면 해야겠다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더 많이 나눠주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내는 걸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의 방향으로 잡아보기로 했다. 그저 이 마음이 아주, 오래...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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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