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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an 01. 2023

조르조 바사니, 『금테 안경』의 반쪽짜리 감상평

읽고, 쓰다.

 이탈리아의 작가 조르조 바사니의 소설 『금테 안경』은 당시 이탈리아의 시대상과 배경을 생생히 묘사했다는 점, 주인공인 아토스 파디가티와 화자인 ‘나’가 겪는 동성애자와 유대인이라는 처지에서 오는 소외감과 고립감, 그리고 서로에게 느끼는 연민을 잘 병치시킨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조르조 바사니가 ‘기억의 작가’라고도 불리는 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배제하고 이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마도 반쪽짜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화자인 ‘나’가 유대인으로서 앞으로 겪게 될,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민족적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주인공인 ‘아토스 파디가티’가 개인으로 겪어야 했던 소외감에 대한 연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소설의 주인공 아토스 파디가티는 베네치아 출신으로 페라라에 정착해 성공한 의사다. 교양 있고 온화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이 중년의 신사는 - 금테 안경으로 상징되는 - 당시 시대의 부르주아로써 페라라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삶은 급변하게 된다.


 낙인.

 낙인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본래 목적대로 – 뜨거운 불에 달궈 지워지지 않는 흔적 목재나 가구 등에 남기는 것 – 사용될 때도 그렇지만 생명체인 가축에, 또는 형벌로써 사람의 몸에 찍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무섭고 아픈 흔적을 옷이나 다른 무엇으로 가릴 수는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말로써 찍어버린 사회적 낙인은 가릴 방법이 없다.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점잖게 대응하려 해도 세상은 그를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매도해 버린다. “파디가티 선생은 ‘그런 사람’이잖아.”라는 말 뒤에 숨어 그를 은근히 멸시하거나 대놓고 모욕하거나, 교묘히 이용하기까지 하며 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봐, 내 소중한 친구,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게 훨씬 더 인간다운 거야. 왜 거부하고, 왜 맞서야 하지?…… 이 모자…… 이 외투……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이 안경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있겠어? 그런데도 이렇게 입는 것이 너무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고 터무니없게 여겨지는 거야! 오, 그래, 온 곳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이 상황을 말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어.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 p.124~5      


사람들이 그를 ‘소수’로 인정해 주지 않고 그의 ‘다름’을 존중해주지 않으니 그는 사람들이 던지는 오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한때는 안식처였으나 이제는 낯설고 혹독한 곳이 되어버린 페라라에서 불어난 강에 몸을 던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곁에도 수없이 많은 파디가티가 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각자의 다름을, 소수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하루하루 고독해져 가는 이들. 그들을 만나게 될 때면 나는 먼저 나서서 낙인을 찍거나, 낙인을 찍는 이들에게 동조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혹시나 내가 그 ‘소수’에 속하게 된다면, ‘다수’에 속한 이들이 나를 이렇게 대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 필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이나 이해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존중이 아닐까. 어쩌면 파디가티에게 필요한 것도 딱,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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