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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설 Dec 31. 2020

누군가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좋은 외모 발언 따위는 없다.

명절에 집에 가면 친척들에게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살쪘냐?
왜 이렇게 까매졌냐?

첫 만남은 항상 그 말로 시작된다. 살찐 거 나도 안다. 샤워할 때 늘어난 옆구리를 만지며 매번 마음을 다스리니까. 거울을 볼 때 튀어나온 배에 운동을 해야겠구나 결심하니까.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굳이 말로 내뱉는다.
악의는 없다. 1년에 가끔 보는 사이. 본인이 생각한 나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니 생각한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툭하니 튀어나온 말일 것이다. 나도 귀엽기만 하던 친척 동생이 잠깐 사이 훌쩍 커버린 모습에 놀라곤 하니까. 악의는 없지만 그 말은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가뜩이나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어색한 상황인데 마음의 벽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사실 친척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린 너무나 쉽게 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 어릴 때부터 까맸다. 어머니 말로는 태어날 때 보니 고추부터 몽땅 까맸다고 한다. 연탄은 기본 따라오는 별명이었다. 내 이름이 ‘설’인데 한자로 ‘눈 설(雪)’이다. 이걸 안 친구는 밟은 눈이네 라고 놀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내가 목이 길다는 이유로 ET라고 친구가 불렀다. 그런데 그 별명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따라붙었다. 목이 길었던 이유는 사라졌다. 친구들은 ET를 닮아 ET라고 생각했다. 부정하긴 어려웠다. 못생겼으니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당연 따라붙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센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방법은 외모에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외모란 표면적인 것에 불해.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니지.’ 라며 외모에 관심이 없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사실 외모에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서 머리카락이 길어지다 보니 내 머리카락이 돼지털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카락이 자랄수록 ‘꼬불꼬불’. 지저분해 보여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나의 고데기를 이용해서 머리를 폈다. 누나 모르게 몰래몰래. 고데기가 누나 꺼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데기를 쓰는 것 자체가 왠지 창피했다.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외모에 초연해진 것은 30이 넘어서다. 사실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꾸며도 장동건은 될 수 없으니까. 마음으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암튼 외모 비하로 상처가 많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누구에게도 외모발언을 하지 않기로. 그렇다고 예쁜 사람에게 예쁘다고 하지도 않는다. 으잉? 그건 또 왜 그럴까?
초등시절 예쁜 아이가 있었다. 어쩌다가 그 아이와 놀게 되었다. 가만 지켜보니 주변 친구들, 슈퍼 아줌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쩜 이리 예쁘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듣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1년에 마치 기념일처럼 어쩌다가 듣는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근데 그것이 부럽다기보다는 왠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소리를 들으니 지겨울 것 같았다. 또 이런 마음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왠지 그 아이가 예뻐서 접근하는 것 같았고, 그 아이도 그렇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은 것에 왠지 상처가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예쁜 사람에게도 예쁘다 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 모태미녀로 태어날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밥먹듯이 들었던 A와 B에게 물었다. 예쁘다는 말이 어떠한지에 대해.
모태미녀 A가 말했다. 나는 인형이었다. 매 학기 시작되면 항상 아이들과 선생님의 주목을 받았다. 예쁘다고. 좋기도 했지만 불안했다. 왜냐면 사실 내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람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불안했다. 예쁘다고 관심을 주다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나버릴까 봐. 대학교 때는 살이 조금 찌자 다른 불안이 올라왔다. 그 첫 관심조차 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모태미녀 B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 때 좋았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질투와 시기가 따라붙었다. 누군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시샘이 올라왔다. 내가 보기에 예뻐 보여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다른 이에게 갈까 불안했다.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 같았다. 항상 내가 제일 예뻐야 했다.백설공주가 나타날 때 나는 독사과를 마음에 품었다.

미인은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인은 불행하기 쉽다. 외모의 굴레에 빠져 신데렐라 왕비처럼 항상 거울을 붙들게 된다. 예쁘다고 하면 안심하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불안해진다. 늘어나는 살과 주름도 공포스럽다.  

우리 너무나 쉽게 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쁘네, 어려 보이네, 살쪘네, 빠졌네. 부가 어쩌고 저쩌고. 우리의 한마디가 받는 이에겐 한두 번의 이야기가 아닐 터이다. 이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늪을 만든다. 부정적인 말은 콤플렉스에 빠지게 하고, 긍정의 말은 불행의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다.


그러니 제발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 말 말아라. 당신의 그 말에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아닌 것이든 그 사람에게 상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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