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묵직한 고백 "내가 아닌 우리"

상견례에서 들은 아버지의 깨달음

by 정설

어릴 적 부모님은 함께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주방장 아저씨가 한 분 계셨고, 어머니는 홀 서빙과 주문 전화, 그리고 바쁠 때는 주방장과 함께 요리도 하셨다. 아버지는 주로 배달을 맡으셨다. 맞벌이하시다 보니 나는 학교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중국집으로 향해야 했다.

가게 한쪽에서 TV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어머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빠 죽겠는데 또 어디 간 거야?”

그리고는 나에게 오락실에 가보라고 하셨다. 오락실에 가면 아버지가 항상 거기에 계셨다. 아버지는 테트리스를 하고 계셨고, 배달통은 그의 다리 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엄마가 배달 나가게 오래.”

“알았다.”

아버지는 대답했지만, 한 줄을 맞추려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테트리스의 달인이었다. 훗날 고등학교 때 테트리스 온라인 게임이 유행했는데, 아버지는 최고 레벨인 ‘신’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쉰쯤이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만큼 오락실 테트리스도 잘하셨다. 그래서 아무리 기다려도 게임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 엄마가 배달 가라고 했어.”

“알았다니까.”

하지만 말뿐이었다. 결국 배달이 늦어지는 것에 초조해지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나였다. 오락실에 안 계시면 당구장에 가보라고 하셨고, 거기에도 어김없이 아버지가 계셨다. 그리고 당구를 치고 계셨다. 배달 이야기를 꺼내면 역시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따금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다투고 나면 그럴 때가 많았다. 가게를 쉬는 날이면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앓아눕곤 하셨다. 오락실에도, 당구장에도 계시지 않을 때면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무책임과 무관심의 상징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삼남매를 키운 것은 오롯이 어머니였다. 가게 일부터 집안일, 자식 뒷바라지까지 모든 것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우리 삼남매 모두 마음속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아버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가게 일도 열심히 하셨고, 특히나 어머니에게 무척 다정해지셨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거실에서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주다 후다닥 TV를 보는 척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릴 적 한 번도 본 적 없던 장면이었다. 자식들에게 보이기 민망했을 테지만, 그런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좋았다.

아버지의 변화로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집안에 웃음이 많아졌고, 어머니의 얼굴에서도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왜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작은누나의 상견례 자리에서였다.

손과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만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어른들은 애써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랑 측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향해 “따님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이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자식을 키운 적이 없습니다. 자식을 키운 건 전부 제 아내입니다. 딸이 잘 컸다면 아내 덕분이지,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후회가 됩니다.”

잠시 말을 멈춘 아버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결혼을 하고 나서 저는 제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내 인생은 어디 갔지? 내 행복은 끝난 걸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지요. 그러다 보니 가정을 뒷전으로 여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내 삶이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결혼을 하는 순간 ‘내’가 아니라 ‘우리’가 되는 거구나. 내 삶과 내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우리의 행복을 찾아야 했구나. 그게 결국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거였구나.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과거가 너무 후회됩니다. 자식들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하고요.”

그러더니 작은누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미안하다.”

누나는 울었다. 그리고 뻘쭘하게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삼키려 더 열심히 씹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가 변한 이유를.


어느덧 나도 결혼한 지 8년이 흘렀다. ‘우리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처음엔 감동적이긴 했지만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작지 않음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로는 ‘우리의 행복’을 생각하지만, 행동은 ‘나의 행복’을 좇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아버지의 말을 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내가 우리를 위해 더 많이 움직일수록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아내를 위해 움직일수록 행복해졌고, 학생들을 위해 움직일수록 행복해졌다. 몸은 그럴수록 피곤해 졌지만 그래도 마음은 더욱 해옵해졌다.

그럼에도 매일 매일 싸움이다. 여전히 ‘우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순간이 많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말이 생각나곤 한다.


어린 시절 내게 아버지는 무책임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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