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내가 진짜 힘들었던 이유

by 정설

몇 년간 정말 바빴다.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교육청 지원을 받게 되면서 행정 업무가 많아졌다. 원래도 학교 일이 바쁜데 행정 업무까지 겹치니,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많아 책 모임, 운동 모임 등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마음 한구석이 점점 힘들어졌다.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왜 이렇게 많아? 수업 준비도 벅찬데.' '회의는 왜 이렇게 자주 하는 거야?' '대표교사라고 모든 걸 나한테 물어봐야 해? 좀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들이 한 번 올라오면, 부정적인 감정이 꼬리를 물고 확장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부탁이라도 하면 짜증부터 나고, 학생이 작은 사고라도 치면 화가 치밀었다. 마치 내 삶이 엉망이 된 것 같았고, 불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가 실제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다는 것. 가만히 보니, ‘힘들다’라는 감정은 주로 일을 하기 전이나 일이 끝난 후에 올라왔다. 막상 집중해서 일할 때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부담감이 컸고, 일이 끝난 후에는 '오늘도 이렇게 힘들었어'라는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켰다. 즉, 실제 일이 아니라, 그 일을 둘러싼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정말 이렇게 힘든 게 사실일까? 물론 일정이 많고 정신없이 바쁘면 에너지가 소진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한 번에 하나씩이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하나씩 해나갈 수밖에 없다. 단지 일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즉, 현재의 순간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겠다. 등산을 할 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건 ‘한 걸음 한 걸음’이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걸어왔네' 하는 생각이 힘들게 만들고, '앞으로 저만큼 남았네' 하는 생각이 더 힘들게 만든다. 물론 육체적 피로가 쌓이면 힘들 수밖에 없지만, 과거와 미래의 생각이 힘듦을 더 키운다.

결국, 나를 지치게 하는 건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더 힘들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유 중 하나는 ‘인정 욕구’였다. 내가 힘들다는 걸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겉으로 직접 표현할 수 없으니, 무의식적으로 힘든 티를 냈던 것 같다. 그러면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어줄 테니까.


이걸 깨닫고 나서, 아무리 바빠도 힘이 들지 않게 됐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일이 많아지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전환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첫 번째, 현재에 집중하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느껴본다. 생각을 들여다보며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본다. 그러면 실제 내 몸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두 번째, 과거와 미래의 생각을 내려놓기.

‘이것도 했고, 저것도 해야 하고’라는 생각을 최대한 비워내고 현재만 바라본다. 그러면 일이 좀 더 가볍게 느껴진다.


세 번째, 스스로에게 인정과 격려를 해주기.

어차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라도 ‘오늘 정말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게 낫다. 그러면 좀 낫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번 주 개학을 맞아 학교 일이 폭발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회의가 끝났다. 그런데 오늘이 브런치 연재하는 날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글까지 쓰려니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그러자 또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잠시 가만히 있어 보았다. 1분 정도? 그렇게 현재에 머물러 보니, 과거의 피로감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힘이 생겼다.

한 발 한 발. 결국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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