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반항은 당연하지 않다.
오늘은 내가 느끼는 답답함을 풀고자 글을 써본다.
신입생이 학교에 오게되면 신입생의 어머니로부터 받게되는 문자가 있다. '오늘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학교를 보내겠습니다.' 혹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집에서 쉬겠습니다.' 라는 문자가 온다. 난 사실 이 문자를 받으면 화가난다. 이유는 왜 학생이 아니라 어머니가 문자를 보내냐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중고등 학생들이다. 중고등 학생이 아프다고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쓸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학교를 다니는 대상은 학생이지 학부모가 아니다. 그런데 왜 어머니가 문자를 보내냐는 것이다.
그래서 신입생이 오면 항상 이런 말을 학생들에게 한다.
"이제부터 아파서 병원을 가게 되거나 못오게 될 경우 나에게 전화하라. 부모를 통하지 말고 직접하라. 너희가 직접 나에게 얘기를 해야하는 이유는 너희가 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부모가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와 직접 소통을 하고 싶다. 기절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파도 얘기를 할수 있다. 너희는 아이가 아니다. 너희가 할일을 부모에게 맡기지 마라. 그리고 문자로 보내지 말고, 전화를 하라. 문자는 일종의 통보에 가깝다. 함께 하는 입장에서 이는 기분이 나쁠수 있는 상황이다.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아프다고 문자를 보낼까? 학교도 사회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학교에서의 사회생활이 실제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자로 아프다고 못 나온다는 것은 기본 예의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단순히 문자 얘기만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예시일 뿐이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많은 부분을 부모가 대신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 제 때 학교에 맞춰 오는 일, 학교 숙제, 공부, 학생의 진로, 자기방 청소 등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한다. 그리고 사랑이라 말한다. 단언컨대 이건 사랑에 대한 오해다. 아이의 내적인 힘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아이는 언젠가 독립한다. 이 모든 것을 해주면 아이가 힘이 생길것이라 생각하는가? 나이가 들면 이 모든 것을 저절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이가 부모에게 고마움을 느낄거라고 생각하는가? 아이가 결정하고 책임질 모든 것을 거기서 느낄 자부심과 뿌듯함을 왜 부모는 뺴앗으면서 사랑이라고 말하는가? 착각하지마라.
진짜 사랑은 아이가 스스로 도울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처음 배우는 것은 항상 서툴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옆에서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실패를 하더라도 격려해주고, 어설프더라도 해내면 응원해주는 것이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기다려 주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원한다. 자신의 힘으로 해내기를. 아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힘을 기르고 싶지 의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춘기 때 아이가 반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사춘기라면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사춘기의 반항은 실은 몸부림이다. 나를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는 마음 속 저항이다. 독립적으로 잘 큰 아이는 반항하지 않는다. 자기 주도적으로 큰 아이는 저항하지 않는다. 사춘기 때 물론 방황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듬어가는 과정이기에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다. 가치관이 온전하지 않기에 방황은 필수다. 다만 부모에게 반항하는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한체 부모의 지혜를 도움받으며 자신의 확립해간다. 사춘기 때 방황한다면 저항일 뿐이다. 자신이 할일을 뺏긴체 삶의 무기력에 빠진 아이가 살기위한 저항이다.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