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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eader Mar 23. 2023

푸진 굿 푸진 삶


섬진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꽤 낭만적이다.

운이 좋으면 강진면 인근 필봉농악 전수관에서 새어 나오는 굿가락을 만날 수도 있다.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했음에도

학습된 '고향 정취'의 맛을 이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과거, 취재를 위해 필봉마을을 찾았었다.

정월 대보름 큰 굿을 준비하던 기간,

마을 주민들 대부분 일손을 내려놓고

손님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농사라는 것이 하루 이틀 손 놓아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음에도

마을 청년ㆍ아낙 할 것 없이

새끼를 꼬고 음식을 장만하며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임실 필봉굿에는 ‘가장 한국적인 풍물놀이’라는

수식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적'이라 함에는 ‘함께함의 따뜻함’,

‘협력과 교류’ 같은 전통적 가치관도

내포돼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필봉굿은 아직까지도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패가 구성된다.

과거 마을굿의 성격이 지금까지 보존 돼온 것이다.



필봉마을이 속해있는 강진면은

고려시대 가무 기예인들이

집성촌을 이뤘던 곳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에겐 예술의 기운이 성했던 곳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400년을 이어온 마을의 유산.

대를 이어 지켜왔을 굿은

이제 전국 팔도 수천 여 관광객을 맞는 축제로 성장했다.


필봉굿의 중심엔 당산제가 있다.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격인 당산에

문안을 올리는 것이다.

마을 대표인 제주가 나서

술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면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당산에 절을 올린다.

주민들을 중심으로 치러지는 고사지만

굿을 보기 위해 찾은 구경꾼들에게도

참여기회는 열려있다.

고사를 지낸 뒤엔 당산제에 차렸던

술을 음복하고 음식을 나눠먹는다.


당산제를 마친 굿패는 마을의 공동 샘을 거쳐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지신밟기를 하는데

흔히 작은 굿판이라고도 한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풍물패와 구경꾼을 구분하던 문턱이 사라져 버린다.

구경꾼들 또한 제3의 굿패가 돼

한바탕 어우러지는 것이다.



대보름 굿판 행렬에 섞여있다 보면

문득 각박해진 세상이 서글퍼진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마주하는

그 찰나조차 불편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탈출구를 찾는 우리.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이상의 다가옴을 거부하는

회색도시에서의 삶은

서로에게 다가감을 결례로 느껴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의식은 어우러짐을 갈망하는가?

굿판에서 말하는 ‘푸진 굿. 푸진 삶’과 같은.

대보름굿판 속 사람들의 환함에서

그 갈증을 보았을 것이다.


취재록ㅡ섬진강 따라 만난 필봉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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