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은 것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마 밑 Oct 15. 2016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에 흔들리는 건 바다다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표지. /Daum 책


*이 글은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십오 년 전 버림받은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미국으로 입양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왜 버림받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커진다. 그녀의 마음은 파도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키워준 엄마인 앤이 죽고 난 뒤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간다. 이것이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이야기 줄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는 가지, 바다는 뿌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자신(가지)이 흔들리는 이유의 답이 친모(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모를 만나 왜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호수가 될 거라 믿는다.


그러나 친모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녀가 맞닥뜨리는 건 호수가 아닌 태풍이 부는 바다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버린 게 아니라 버리도록 종용받았다. 그녀를 낳기 전에는 낙태를, 낳은 후에는 입양 보낼 것을 요구받은 그녀의 어머니는 고독했다. 그녀를 입양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어머니는 바다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소설의 2부는 죽은 그녀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을 찾는 그녀에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잊은 쪽은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였다.


그제야 그녀는 '왜 버림받았는지'라는 질문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버림받은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그녀의 어머니는 파도에 흔들리는 바다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흔든 게 아니라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를 흔든 것이었다. 바다(친모) 밖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한 파도(그녀)는 다시 바닷속으로 당겨지면서 바다와 만난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절망적이지 않다. 그것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익사하지 않고 구조된다. 그녀는 버림받지 않았다.


그녀는 입양부모가 지어준 이름인 '카밀라' 대신 친모가 지어준 이름인 '희재'라는 이름을 택한다. 이름은 존재의 근본을 드러낸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더는 혼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우리는 그 일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그녀는 '희재'로서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삶에 앞으로 또 다른 파도가 없지는 않겠지만, 파도처럼 흔들리는 이유를 더는 바다에서 찾지 않을 것이다. 이유를 찾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어차피 조류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6.10.15)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는 스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