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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Aug 05. 2020

저는 관종입니다.

나는 관종이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줄임말이다. 남의 관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 SNS가 발달하면서 남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 전부터 나는 그랬다. 


이 글은 나를 철저하게 까발린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비슷한 사람이 나타나면 동지를 얻은 느낌에 기쁠 것이다. 나만 유독 별나다면? 다른 이에게 '저런 사람도 사는구나, 나는 참 다행이다.'라는 위안이라도 주면 그걸로 족하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나.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에 탑승해, 친구를 사귀지 못한 나를 애써 합리화했다.  


그러다 대학교에 가니 그런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명분이 사라졌고(대학교 1학년을 기억해보라),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부질없이 움켜쥐듯이 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몰랐다. '하림 회장 김홍국'씨는 '성공시대'(성공한 기업인들에 대한 다큐 프로그램, 현재는 종영했다)에 출연해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대화할 내용을 미리 메모해갔다고 말한 바 있다. 나도 몇 번 해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젬병인 사람이 탄생했다. 너무 힘들었다. 오죽 했으면 처음 만난 사람한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했을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인사치레로 번호를 주고 받았던 선배에게 전화했다.  


제가 인간 관계로 힘든데 한 번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이미 결혼해 처자식이 딸린 그 분 집에서 술 한 잔을 얻어마시며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마음이 쉬이 나아지지 않아 향우회 선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그 선배는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난 그저 밥을 같이 먹을 친구 한 두 명이 필요했을 뿐이다. 허나 이미 짜여진 그룹 안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정말 몰랐다. 수업 한 번 듣지 않은 과목을 시험치는 기분이랄까. 


그러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킹오브파이터즈 등의 횡스크롤 대전게임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게이지가 있다. 그처럼 관심종자(이하 관종) 게이지가 작동하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feena74


그 날 하루 일정한 양의 관심을 받아야 기분이 좋아지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날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게이지가 찬다. 내가 한 마디해서 사람들의 반응이 오면 신이 났다. 상대가 먼저 말까지 걸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사람이 많은 대화 자리에서 갑자기 내가 주목을 받으면 넘쳐나는 관심게이지에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대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받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내가 관심받지 못하는 대화는 아무리 좋은 말도 별 흥이 나지 않았다. 세상에는 말하기보다 들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관심을 끌려고 무리하게 말을 던졌다가 오히려 핀잔을 받으면 나의 게이지는 시들어갔다.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는 남이 한 말을 똑같이 말하고 있구나."


그랬다. 내가 인상깊은 말을 할 능력은 없으니, 남이 한 말을 똑같이 따라했던 것이다. 그 날 참으로 창피했다. 


한의원 페이닥터로 일할 때도 그랬다. 나를 포함한 부원장 3명과 대표원장이 있는 큰 한의원이었다. 부원장 한 명은 그야말로 투머치토커였다. 간호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농담 따먹기를 하고, 기분 내키면 피자도 쏘는 등 엄청난 친화력을 보여줬다.


나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날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특이한 환자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러다 보면 '에이, 진료나 열심히 하자. 저들에게 말을 꼭 걸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라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세번째 부원장은 과묵했다. 사람들이 말을 걸지 않는 한 먼저 나서서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저 친구는 외롭지 않을까?' 그 친구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진료 끝나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집에 가면서 마시고, 헬스클럽에서 혼자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리고 제 친구들과 주말마다 클럽을 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말수만 적지, 사람을 잘만 만나는구나.'


활발한 부원장은 그 친화력 때문에, 과묵한 부원장은 제 나름 잘 사는 멋 때문에 부러웠다. 세상에 나만 가장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는데, 내가 수업 때마다 하던 행동이 있었다. 당신이라면 수업 때 관심받고 싶으면 무엇을 하는가? 강의 도중 내가 말할 기회는 딱 하나다. 질문. 수업 끝나기 5분 전부터는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아, 오늘도 어떻게든 질문을 해서 관심을 받아야 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 질문거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교수님의 마무리 멘트가 나온다. "자, 여기까지 하고 혹시 질문할 사람 있나요?" 어떻게든 질문 하려다 보니 되도 않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교수님의 설명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질문했다는 사실이 소중할 뿐. 


나중에 대학원에서 조별활동하며 친해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들 'OO선생님은 자기한테 참 엄격하네.'하면서 껄껄 웃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의원을 운영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업무 외에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이 시끌벅적하게 웃으면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다. 주변 원장들은 직원들과도 하하호호 잘 어울리던데. 위축이 된다. 


이러한 정신적 고단함을 안고 지금껏 생활하고 있다. 관종 게이지가 안 차도 기분이 우울하지만, 꽉 차도 썩 기쁘지 않다. 이번에는 이래 관심을 받았지만 다음에도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끝모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법륜 스님의 책을 보면 이런 걸 '부모로부터 다운받은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명 '업'이다. 내가 가진 업의 무게. 오늘도 이 업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나처럼 악성 프로그램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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