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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Oct 10. 2020

세상에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

외로움에 치를 떨었던 어느 저녁의 기록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합니다. 외로움을 느끼시나요? 잘 지내다가도 밀물처럼 다가오는 고독함에 몸이 시린 적이 있었나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는 1000개가 넘지만 누군가에게 연락하려다 손가락이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바쁠 때는 좋은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저녁 어스름이 거리에 깔리면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발가벗깁니다.


사람은 외로운 섬입니다. 눈에는 서로가 보이지만, 배가 없이는 가 닿을 수 없는 곳. 봄에 꽃 필 때는 안분지족이라도 누리지만, 찬 바람이 불면 황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두운 바닷 바람은 차갑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무얼 하시나요?


술을 마시나요?

영화를 보나요?

모임을 만드나요?

잠을 자나요?

운동을 하나요?

또 다른 바쁨으로 외로움을 덮지는 않나요?


저는 글을 씁니다. 별 재주는 없으나 글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더군요. 그렇다고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적어놓기는 싫습니다. 남이 봐주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같은 분이 읽어줘야 글에는 온기가 스며듭니다. 굳이 황송하게 댓글 달아주지 않아도 누군가 읽고 갔다는 조회수 '1'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옵니다. 제가 적어놓은 '외로움'이라는 단어에 당신의 마음이 공명하여 왔을거라 믿습니다.


나는 외롭습니다. 당신도 외롭습니다. 우리는 외롭습니다. '나만' 외롭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신기하게 외로움이 덜해집니다.


예전에 서울에 갓 올라와서 홀로 살 때 일입니다. 집에 도착했는데 지독한 외로움이 몸이 떨렸습니다. 집안에 있으면 검은 그림자에 짓눌릴까봐 밖으로 나섰습니다.


차분하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평소 자주 다니던 카페에 갔습니다. 알바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한테는 말할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당신이라면 카페 아르바이트 생에게 '나 힘든데, 얘기 좀 들어줄 수 있어요?'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라면 아마 용기를 내서 누구든지 붙잡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카페를 나왔습니다. 바로 근처에 자그마한 빵가게가 있었습니다. 정말 자그마했습니다. 그 안에 아저씨 한 분이 TV를 보며 앉아있더군요. 한 50대로 보였습니다. 들어갔습니다. 카페에서는 못 해도 여기에서는 할 수 있겠더군요.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얘기 좀 잠깐 들어주실 수 있나요?"


멈칫하던 아저씨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제 얘기를 했습니다. 외롭다. 세상에 나 혼자다. 뭐 이런 얘기들이었죠. 그리고 나서 빠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죠.


"아저씨도 그런 적이 있나요?"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상대도 나처럼 외로움을 겪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서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니 괜찮아. 나를 토닥토닥해주려고 답을 정해놓고 물었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때 학교짱이라서 외롭지 않았는데."


아. 그 분은 학교짱이었습니다. 힘을 가진 존재. 그에게는 외로움이 파고들 구석이 없었습니다. 어색하게 씩 웃은 저는 주춤주춤 일어났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준 그 분을 위해 빵을 사야죠. 샌드위치 하나를 샀더니 그 분이 서비스로 빵 하나를 더 얹어줍니다. 학교짱이었던 분이 고독한 저를 위해 마음을 쓰셨습니다.


빵봉지를 들고 다시 집으로 걸어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이후로 가끔 들러 빵을 사곤 했습니다. 아저씨와 저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돌아서는 제게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요즘 어때?"

"좀 낫습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동네에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사실. 별 희안한 놈으로 기억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혼자라는 느낌음 많이 가셨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제가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202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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