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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태형 Sep 15. 2022

분류하는 인간

작아서 큰 세계 (7)

  듀이십진분류법은 1876년 미국의 ‘멜빌 듀이’가 고안해 낸 도서 분류체계로, 2011년까지 총 23판이 개정되어 나왔다고 한다. 큰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 듀이십진분류법

000 -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100 – 철학,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200 – 종교 (Religion) : 서양, 기독교 중심적 분류

300 – 사회 과학 (Social sciences)

400 – 언어 (Language) : 서양 중심의 언어 분류

500 – 과학 (Science)

600 – 기술 (Technology)

700 – 예술, 레크리에이션 (Arts & recreation)

800 – 문학 (Literature)

900 – 역사, 지리 (History & geography)


  위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종교와 언어가 서양 중심 분류라고 되어 있다. 400번대인 ‘언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00 - 언어 (Language)

410 - 언어학(Linguistics)

420 - 영어와 고대언어(English & Old English)

430 - 독일어 관련언어(Germanic languages)

440 - 프랑스 관련언어(Romance languages)

450 - 이탈리아, 루마니아어(Italian, Romanian ,Rhaeto- Romanic)

460 - 스페인, 포르투갈어(Spanish & Portuguese languages)

470 - 라틴과 이탤릭 언어(Italic languages)

480 - 고대, 현대 그리스어(Hellenic languages)

490 - 다른 기타 언어(Other languages)


  한국이나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에 있는 모든 나라들의 언어가 480번대 ‘고대 그리스어’보다 하위인 ‘다른 기타 언어’에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 영화 <컨텍트>(Arrival)를 다시 봤다. 테드 창의 원작도 훌륭하지만, 영화는 언어에 대한 낯선 감각을 일깨워줘 다시 봐도 좋았던 작품이다. 여기에서 독특한 점은 언어가 전혀 다른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주인공이 자국의 언어(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굉장히 지난한 작업처럼 보였다.

  며칠 뒤, 토미 웅거러의 원작 그림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달사람>(Moon Man)을 보았다. 천천히 흐르는 음악과 그림이 애잔한, 참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달사람이 지구에 도착하자 박사는 달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가르친다. 전혀 다른 두 영화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선한 지구인이 낯선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가르치는 것. 처음엔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려고 했을까?’

  옆에 있던 반려(오랜만에 등장)에게 물었다.

  “여보, 이상하지 않아? <컨택트>도 그렇고 <달사람>도 그렇고 다들 낯선 존재한테 자기들 언어를 가르쳐주는데 그걸 또 선한 일이고 소통을 위한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하잖아. 물론 폭력이 아닌 언어로 관계를 맺는 건 좋긴 한데, 난 왜 불편하지?”

  그러자 이이가 뜻밖에 맞장구를 쳤다.

  “원래 서양 국가가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언어를 가르친 거야. 자기중심적인 거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듀이십진분류법이 퍼뜩 떠올랐다. 비약이 심한 건가? 나는 서양 중심적 사고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생각한다. 듀이십진분류법처럼 여실히 드러나는 것도 경우도 있지만, 위에 언급한 영화에서처럼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영화가 담고자 하는 가치와 주제는 참신하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시 생각해 본다. 분류란 무엇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좀 삐딱하게 바라본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다. 책은 언어로 만들어지며 분류도 이 언어를 기초로 이루어진다. 모국의 언어를 어디에 놓을 것인지,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누구의 언어로 소통할 것인지는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가 영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나라 관객들은 숱한 영화를 자막으로 봐 왔음에도, <기생충>을 본 서양인들이 자막 읽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하자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에선 책을 분류할 때 듀이십진분류법과 더불어 우리만의 ‘한국십진분류법’을 따른다. 한국십진분류법은 듀이십진분류법에서 유래하긴 했지만, 아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혀 다른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십진분류법에서는 700번대가 언어인데 분류표를 보면 중국, 일본, 영미 순으로 지리적 접근성에 기초해 분류되어 있다. 서양 중심의 듀이십진분류법을 수정하여 새롭게 분류체계를 조합한 건 당연해 보인다. 이처럼 도서를 분류하는 것만 봐도 한 나라의 정신과 가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 한국십진분류법

000 총류 / 100 철학 / 200 종교 / 300 사회과학 / 400 자연과학 / 500 기술과학

600 예술 / 700 언어 / 800 문학 / 900 역사


700 – 언어

710 – 한국어

720 – 중국어

730 – 일본어 및 기타 아시아 제어

740 – 영어

750 – 독일어

760 – 프랑스어

770 – 스페인어 및 포르투갈어

780 – 이탈리아어

790 – 기타 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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