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생존 수칙 3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마음도 버틸 수 있다
은퇴 후
가장 먼저 느끼는 일상의 변화는 '시간'입니다.
끝도 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당황합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이 늘 부족했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고,
해야 할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니,
하루가 한없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텅 빈 시간 속에서
마음이 점점 무너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시간은 많지만, 막상 갈 곳은 점점 줄어들죠
마음 둘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은퇴 후에는 반드시 '나만의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있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집은 있지만 피난처는 없다
집은 있습니다.
하지만 집이 곧 피난처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은퇴한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처음엔 편안합니다.
이제야 쉼 다운 쉼을 누린다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또 다른 감옥이 됩니다.
꼭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
가족과 함께 있지만 왠지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
집은 쉼의 공간일 수 있지만,
생각을 다듬고, 나를 다잡는 공간은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 바깥에,
나만의 작은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피난처는 '도망'이 아니다
피난처를 마련한다는 것이 도망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이죠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칩니다.
은퇴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하루,
사라진 역할감, 줄어드는 인간관계.
이런 것들이 마음을 조금씩 잠식합니다
그럴 때,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마음은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나요?
피난처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공간일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가벼운 소음과 느슨한 활기가 섞여 있는 곳이 더 좋습니다.
• 단골 카페,
• 도서관의 조용한 구석,
• 동네 작은 공원,
• 자주 가는 북카페.
그런 곳들이 다시 숨 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만의 공간이 주는 힘
저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습니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노트북 가방을 메고 자주 가는 카페가 있거든요
그곳에 앉으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집에 있을 때 느끼던 무거운 공기가 사라지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커피잔을 옆에 두고,
노트북을 열고,
칼럼을 쓰거나 강의 콘텐츠를 다듬죠
그 시간 동안에는
은퇴한 누구도 아니고,
가족의 가장도 아니고,
그냥 '나'로 존재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시간.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살아갑니다.
피난처를 찾는 기준
피난처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심리적 거리감'입니다.
•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되,
• 집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곳,
• 자연스럽게 혼자가 될 수 있는 곳.
이 세 가지 기준이면 충분합니다.
다만 한 가지
스스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곳.
그곳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그곳이 바로 나만의 피난처입니다.
피난처가 주는 세 가지 선물
첫째, 생각이 정리됩니다.
은퇴 후 무기력함은 '생각이 엉켜 있어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난처에 앉아 조용히 나를 돌아보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이 조금씩 정리됩니다.
둘째, 마음이 단단해집니다.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작은 일에도 휘청거립니다.
피난처는 그런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세워줍니다.
셋째, 삶의 리듬이 생깁니다.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 리듬이 있다'는 뜻입니다.
리듬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피난처를 생활화하라
피난처는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일상이 될 때, 진짜 힘을 발휘합니다.
• 아무 일 없는 날에도,
• 특별히 힘든 날에도,
• 그냥 심심한 날에도.
가볍게 가서 머물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책 한 장을 넘기고,
조용히 생각을 다듬는 것.
이런 작은 일상이 쌓여
은퇴 후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은퇴 후에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내기 위해서는
머물 곳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밀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마음이 산산조각 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숨을 고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편안한 내 공간,
그것이 바로 '나만의 피난처'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만의 피난처를 찾아보세요.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단단해지고,
은퇴 후의 삶이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