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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May 01. 2022

뇌질환자 가족의 삶이란

잠들 수 없는

. 우당탕탕

석션기에 연결된 가래통이 떨어졌다. 하필 가득 차 있던 통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몽땅 바닥에 쏟아져버렸다. 그냥 바닥이라면 치우는게 덜 성가시겠지만 바닥에 잔뜩 놓인 짐이며 침대와 벽에깢 튀어서 흘러내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밤새 기침을 아빠의 가래를 뽑다가 생긴 일이었다. 가래통이란 석션기를 통해서 뽑아 올린 침과 가래가 모이는 오물통이다. 아마도 통이 낡았거나 제대로 끼워놓지 않은 것을 석션하다가 잘못 건드린 것이다. 가래통을 비우지 않고 잠들려  대가는 참혹했다. 그럼에도 바닥 아래로 쏟아진 액체보다 가래를 뽑기 위해 환자 입에 물려놓은 마우스피스가  급했는다. 입을 조개처럼  다물어 버린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 입에 집어넣은 참이었다. 급한 대로 가래통만 먼저 수습해서 가래를 마저 뽑아드리고 나서야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다.


  꺼진 병실에서 침대  보조등에 의지해서 끈적한 액체를 닦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입덧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인지 속도 메스꺼워졌다. 그나마 남의 침대에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정도가 불행  다행이었다.


 주말에 모처럼 아빠 간병을 자청했다.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가 무섭기는 하지만 임신 직후 입덧을 무릅쓰고도 해오던 간병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 교대해주지 않으면 24시간 아빠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는  기회가 없다.  입덧이 조금씩 가라앉아가고 있고 입덧 대신 찾아온 두통에 짓눌리던 머리도 오히려 몸을 움직이며 일하니  맑아졌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서 임신한 몸뚱이는 금방 숨이 차오르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다.  몸이 힘드니 제발 무사히  밤이 지나가길 빌었건만 요령 피우려 하니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가래통을 세척하고 밝게 불이 켜진 병동 복도를 지나 화장실을 다녀와 어둑한 병실의 침상으로 돌아온다. 미닫이  하나를 사이로 단절된 공간의 이질감이 새벽의 찬바람처럼 몸을 떨게 한다. 아빠가 아프기 전에는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공간이 너무나 익숙한 것이 새삼스럽다. 복도와 병실이 아주 다른 공간이듯, 병원과 병원  역시 너무 다른 세상이다.


 간이식 수술 후 3년 만에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다발경화성 백색질뇌증이라는병을 진단받고 처음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했을 당시가 떠오른다. 그때는 엄마를 대신해 간병은 커녕 아빠 옆에 수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어도 죽을 것같이 피곤했다.  아빠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의 병마의 무게까지 무겁고 두려웠다.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병원에 꽤 익숙해져서 가끔은 집에 있을 때보다 병원에 더 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작년부터는 병원 근처에 얻는 엄마 집으로 아빠를 모시고 가 함께 명절을 지낸다. 그럴 때마다  전신마비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얻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새로 들어온 신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가 된 우리 가족이다.


  하품이 쩍쩍 나오게 피곤하지만 도통 잠에 들 수가 없다. 뱃속의 아이에게는 좀 거친 일상이라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서 24시간 아빠 곁에 상주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임신했다고 마냥 편하게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내가 교대해드려도 마냥 쉬지도 못하긴다. 그 짧은 시간을 쪼개서 엄마는 밀린 집안일과 미뤄둔 일을 보신다.


 잠들려고 하면 아빠가 부르고 아빠가 잠들면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번갈아가며 보호자를 찾거나 기침을 하거나 가래를 뽑는다. 매일 병원에서 주무시는 엄마와 달리 이따금씩 병원에서 자는 나는 작은 소리에도 선잠에서 깨고 만다. 임신 이후 어쩐지 밤에 더더욱 잘 못 자는 나로서는 병실에서의 새벽은 더욱 길게 느껴진다.

 야간 근무조 간호사들과, 이따금 돌아다니는 사람들 말고는 모든 것이 잠든 새벽이지만, 보조침대 위에 누워있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기매트에 바람이 들어가는 소리, 천정의 히터 돌아가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보호자용 간이침대의 삐걱거림, 가습기 소리의 물방울 소리와 병실 안의 공용 냉장고 소리까지.  이런저런 소리에 뒤척이며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밤이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새벽 네시, 우리는 오늘도 52 병동에서 살아간다.  



 20년 3월에 작성해서 서랍에 저장해 둔 글을

아기 두 돌이 코앞인 22년 5월에 발행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 아닌데도 감회가 새롭네요. 이제는 부모님은 81 병동에서 새로운 병원 생활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우리 가족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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