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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19. 2016

성벽 길을 걷다 아드리아 해를 만났다

#21.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비록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은 넘쳐나는 인파와 소음으로 인해 그 매력을 반감시키지만,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걷는 성벽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한다.     


평지로 되어있는 성벽 길은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힘들지 않고 거뜬하게 볼 수 있어 부담이 없다.     

전날, 올드타운에 제대로 실망한 터라 별 기대 없이 성벽 길에 오를 채비를 한다.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인가 보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정신없는 상점들에 뒤덮인 올드타운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멀어도 너무 멀었다.     


실망을 뒤로하고 오른 성벽 길은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생각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다.

아무 기대도 설렘도 없던 탓만은 아니겠다.     

성벽 길에 오르자마자 보이는 올드타운의 붉은 물결이 한 순간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아드리아해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그 아래로 시원하게 뻗은 아드리아 해가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외에,

짙푸른 아드리아 해만이 이 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마도 두브로브니크를 가장 아름답게 여행하는 방법은 바다를 끼고 걷는 성벽 길을 천천히 음미하며 거니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건물과, 불게 물든 지붕, 그리고 반짝이는 푸른 바다는 언제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성벽 길이 생각보다 높아 아래를 볼 때마다 슬쩍슬쩍 오금이 저리지만,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드넓게 펼쳐진 아드리아 해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     

두브로브니크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성벽 길이 끝이 나면

그다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다시 계단을 오른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기엔 케이블카 만한 게 없다.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의 물결을 가장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순간은 그 얼마나 낭만적인가.

케이블카를 타고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어느 곳 하나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바다가 눈에 가득 담긴다.


아드리아해의 푸르른 빛깔은 보고 있는 내내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사이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떠오른 해는 조용붉게 물들고 있다.


마치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기라도 한 듯, 구름 사이로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다.     

점점 붉은색으로 채워지는 하늘과 더욱 짙게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머리 바로 위에 피어나는 뭉게구름.


두브로브니크이기에 가능한 황홀한 순간이 아닐까.     

위에서 바라보니 아드리아 해 사이로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을 감싸고 있는 성벽이 보인다.

드넓은 바다와 함께이기 때문일까.

성벽의 견고함과 웅장함이 더욱 실감 나다가온다.

     

올드타운을 꼭 끌어안은 성벽처럼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 안에 꼭 들어앉는다.     

오랜 머뭇거림을 가져다준 케이블카를 끝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투어를 마쳤다.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마지막 발을 디디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두브로브니크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나오는 길, 입구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길목에 앉아 바이올린을 켜는 두 사람.

귓가에 꽂히는 소리에 이끌려 조용히 감상해본다.


Shostakovich의 Waltz No.2

아름답지만 약간은 애절하고 슬픈 그 멜로디가 지금 이 곳과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

아마 한참이 지나도

두브로브니크를 생각하면 그 연주곡이 가장 먼저 떠오를 듯싶다.    

 

두브로브니크는 코토르에 비해 중세시대의 낭만을 찾기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좀 더 짙은 세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다만,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깎아내리게 되는 역설적인 모습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적인 물가와

못난 상술이 덕지덕지 붙은 양심.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나는 사람들까지 더해지면

그 불편한 모습들은 두브로브니크의 명성을 깎아내리고도 남는다.     


이게 과연 아드리아 해의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들은 잠깐이나마 가졌던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아름다움마저 퇴색시켜버린다.

언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한 도시의 이미지를 끝까지 추락시키곤 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갔을까.

두브로브니크 곳곳의 아름다움이 더 이상 멈추지 않았으면 싶다.

또 다른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이곳처럼 안타깝게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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