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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Jan 13. 2023

욕심스러운 아빠

큰 아이를 데리고 복싱장에 가서 3개월치를 등록해 주고 나왔다. 복싱장은 나도 처음 가 보았는데, 드라마에서나 보던 링과, 샌드백, 글로브들이 낯설어 보였다. 얼떨결에 따라온 아이가 잔뜩 주눅이 들었다. 아이 엄마와 어쩌다가 '복싱' 교습 진행을 합의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가 여기서 3개월을 완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조금 더 낮춘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앞으로 잘하라는 의미로 아이가 좋아하는 일본 라멘을 한 그릇 사주었다.


몇 번째 예체능 교습 시도일까? 5살 때 축구, 6살 때 피아노, 7살 때 테니스, 10살 때 첼로, 12살 때 수영, 13살 때는  인라인 스케이트.. 이것저것 시도는 많이 해봤으나, 매번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나를 닮아 운동도 음악도 젬병인 기질을 어쩌겠는가. 내가 물려주었으니, 원인은 나로 비롯되었는데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보면 늘 분하고 울화가 치민다.

 

지난 그 많았던 수업들 중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선생님이 아이에게 가장 못되게 굴었다. 과체중으로 보이는 체구와 느릿느릿한 행동, 틈만 나면 쉬려고 하는 모습이, 선생님 마음에 드는 학생 타입이 아니었나 보다. 아이가 딴 짓을 할 때마다 '이럴 거면 오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하다가, 나중에는 화가 났다. 그날로 그만두었다. 운동은 장비빨이 절반이라 믿고 사준 인라인만 당근 시장에 절반 가격도 안되게 팔려나갔다. 다시는 운동 따위 안 시키겠다고 다짐했는데, 복싱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또 이렇게 질러버렸다.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늘 한결같은 사랑과 지지, 그리고 넓은 포용. TV 상담 프로에서 상담사 선생님들이 쉽게 말씀하시는 그 단순한 덕목이 내게는 왜 이렇게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것인지, 우리 아이가 평균 이하로 심하게 못 미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부모 역할을 15년을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


우리 아이는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임신 6개월 차에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한참을 들여다보시다가, '천공'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첫 고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생후 1개월에 심장 수술을 한 아이는 성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더디었다. 조그만 녀석이 그 큰 수술을 받았으니 몸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세 살이 될 때까지 부모와 조부모까지 다 매달려 아이를 키웠고,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래도 완치되었음에 감사했고, 탈 없이 커줌에 감사했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부모였고, 고난과 다짐은 차차 잊힌 것 같다.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에는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아니 더 욕심 많은 부모가 되어서, 우리 아이가 무엇이든 잘했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져 지냈다. 유치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꼴찌를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났었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완주하는 걷기 대회에서도 혼자 뒤처지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언제나 줄 마지막에 서있는 모습에 열불이 났고, 차차 참관수업에 가는 것이 꺼려졌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 동료들과 집 근처에서 맥주를 한잔 하려는 찰나, 와이프에게 걸려온 전화를 잊을 수가 없다. 심리 상담 센터에서 아이의 심리 상태를 검사했었고,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었고, 시간이 지나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간의 모든 것들이 설명되는 결과물이었는데, 부모가 너무 몰라주었던 것이다. 아이 본인은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 부모 상담 교육과 아이의 치료 교육을 몇 년에 걸쳐서 진행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다되어서, 다시 검사했던 결과서에서,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10년 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정말 건강하게만 커주는 것에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두번이나 결의를 다졌건만 인라인 좀 못타는 아들 녀석에게 난 열불이 났다. 애초에 부자간에 사이 좋아지자고 시작했던 인라인인데, 이 일로 사이만 더 틀어졌다.


우습다. 왜 계속 이렇게 어리석은 사고의 순환 고리를 도는 것 인지. 이렇게 커준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착한 녀석인데, 순전히 내 욕심에 의해서 잣대와 기준을 높이고, 그에 맞추지 못하는 아이를 책망하고, 그런 나에게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일까.

 

기대감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쏟아 넣는 시간과 금전적 지원 대비 소위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랄까. 또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어느 쪽이던, '건강하기만 해 다오'라던 10년 전 나의 초심은 어디에도 없고, 미련한 아빠의 욕심만 덕지덕지 붙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참 덤덤하셨다. 나에게 크게 요구하신 것도 바라신 것도 없었다. 그런 두 분 아래에서 나는 '안전'하게 컸고, 내가 스스로 나설 수 있을 때, 일어섰던 것 같다. 부모님이 지금의 나처럼 늘 높은 결과물을 바라고, 못 미친 결과에는 실망하시고, 이에 따라 감정이 들쑥날쑥 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그분 들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부모인 것 같다.

 

복싱장을 나서며 다시 다짐을 한다. 줄넘기만 30분씩 하고 와도 칭찬해 주자. 살만 조금 빼면 이 동네서 가장 미남 될 녀석이니 그 정도만 바라자. 복싱선수하라는 것도 아니잖는가.

 

마침 새해이기도 하고, 새해 다짐에 한 가지 더 추가해 두었다.


올해는 제발 어른스러운 부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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