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어릴 적에는

둘째 강아지 입양하다

by 뾰족달



톰을 처음 데려왔을 때가 생각난다.

봄이 막 시작되던 4월의 퇴근길에

담요에 꽁꽁 싸서 안고 왔었다.

새까만 콩 같았던 이 쪼끄만 녀석이

언제나 자라서 강아지 노릇을 할까 했더니

딱 10배로 자라 얼마 전 세 살이 되었다.

아직도 아기인 척하는 저 녀석이 세 살이라니!







혹시나 제리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요리 보고 조리 보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너무 좋아했다.

이렇게나 반기다니 잘 지내려나보다.

다행이다.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입성한 아기 톰은

원래 살던 곳인 듯 금세 안정됐고

다음 날 녀석은 돌변했다.

이곳엔 무서울 것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후

우리 집을 야금야금 점령해 갔다.

우리 정체를 너무 빨리 들켰는데?




1 다용도실 웹.png




그 무렵 우리 집은 풀지 못한 박스로 가득했는데

통통 뛰던 까만 콩이 사라지면

박스 틈에 끼어 자고 있었다.

온 집안 구석구석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아기 때부터 그렇게

잡아먹을 듯 뽀뽀를 해댔었다.

크면 덜할 줄 알았는데 거 참 한결같다.

그런데 눈은 왜 가리는 거냐.

무섭게...



1뽀뽀.png



꼼꼼하고 촘촘하게 얼굴을 핥아 드시고는

늘 그렇듯 얼굴을 밟고 넘어간다.

아이 좋아!

나 이상한데?

밟히는 거 너무 좋은데?







녀석이 온 후로 더 이상 대장님에게

운동의 여유로움은 없어졌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에 맞추어 운동을... 은 사라졌다.

천방지축 이 귀여운 녀석.

어쩔 도리가 없다.




1 덜덜 .png






4개월이 접어들어 톰의 배내털이

제법 무성하게 자랐을 무렵이었다.

귀여움 폭발하는 이 시기에 이발을 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이 꼬질꼬질해지는데

그럼에도 우린 털을 좀 길러보기로 했었다.

하얀 종이에 검정 크레파스마구 칠한 것처럼

검은 털이 삐뚤어질 테다... 를 외치고 있을 때

코 둘레에 의문의 하얀 띠가 생겼다.

뭐지,

못생김을 더하는 이 도넛은?



1 도나스.png

살다 살다 이런 도넛은 처음 봤다.




그 도넛은 매일 조금씩 커졌다.

하얀색 도넛이 점점 자라면서

뒤죽박죽 검은 배내털을 밀어냈다.

코가 튀어나와 보여 정말 웃겼었다.

딱 코만 보인다.




이 무렵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라던 제리는

입이 짧아 면역이 약했다.

매 끼 밥 먹이는 것이 큰 일거리였는데

온종일 따라다니며 들이대는 톰 덕분에

밥맛이 꿀맛이 되어 날로 체력이 좋아졌다.

그럴 수밖에.

이 하룻강아지랑 눈이 마주치면 일단 도망가야 한다.

때를 놓치면 아주 힘들어진다.





뭘 해도 코만 보이는구나.



"지나간다.

이것 또한 지나간다.

헌 털이 지나가면 새 털이 오듯이

이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

...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사람도 사춘기 때 그렇지 않나.

나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남도 여도 아닌

그냥 학생이었다.

왠지 힘세 보이는 학생.


1 여자도 남자도 아닌 웹.png






인고의 시간이 흘러

도넛이 자라나 하얗게 얼굴을 덮으면서

톰은 조금씩 예뻐지기 시작했다.

요크셔테리어 아기들은 까만 콩이었다가

자라면서 점점 색이 옅어진다.

성장기의 못생김에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라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된다.

평생 털색이 바뀐다는 요키들 매력 있어!








이제 제리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니는 아름다운 제리님을

이렇게밖에 못 그리냐고 늘 항의하곤 한다.

거대 콩깍지 낀 양반 같으니라고.



제리는 원래 예뻤다.

아니 우리 강아지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뻤다.

세면대에 올려 달라고 아득하게 바라볼 때도

배내털이 마구 헝클어져 자랄 때도

그때도 그렇게 예뻤다.

배변패드를 살짝 맛볼 때도 물론이고

제리에게 흑역사는 없었다.

...고 믿고 싶었다.





예쁜 건가?

음... 자세히 보면 예쁠걸?





자세히 보니 예쁘... 예쁜 건가.




제리가 다 자란 후 아기 때 사진을 뒤적이던

언니와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때 이렇게 못생겼었어?

눈아, 너 왜 그랬어.

왜 있는 그대로 보질 못했어?


1 엉엉 350.png

사랑했으니까요.

사랑하니까 그랬죠...





요즘도 우린 아이들을 보며

아고 이뻐라~ 한다.

언젠가 콩깍지 낀 눈을 원망하게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안목을 믿어보기로 한다.





톰은 넉 달 만에 제리만큼 자랐다.

몸이 아무리 커져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에겐 언제나 어린 강아지다.

퇴근해 돌아오면 온 힘을 다해 두 녀석이 동시에 달려온다.

톰은 언제나 가슴 위에 자리를 잡고,

제리는 언제나 팔베개를 하고 잔다.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하느라 불편하지만

방전되었던 에너지가 슬금슬금 다시 차오른다.

강아지가 둘이니 충전 속도 역시 두 배로 빨라졌다.




1 휴식 웹.png




제리와 톰은 어떤 순간에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신뢰한다.

그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아이들의 눈빛에는 자존감과 따뜻함이 있다.




톰이 오던 날,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아기 톰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우리 집에 오게 되어 안심하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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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콩 같았던 우리 톰.

잘 왔다.

우리 집에 정말 잘 왔다.





제리는 4살, 톰은 3살

강아지들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항상 곁에 있으니 언제까지나 그럴 것처럼 지내지만 20년도 금세 가겠지.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에 대한 안도와

시간이 너무 빠름에 대한 서운함이 교차한다.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신들 만의 공간 속에서

풍요롭게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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