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인 듯 산책 아닌 듯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 중 하나가
함께 산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림.
나도 내 어린 강아지와 함께 나란히 걷는 것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난 곧 알게 되었다.
감히 우아하게 발맞추어 걷는 걸 기대하다니 내가 심했다.
산책 연습을 하던 어린 제리가
줄을 물고 버틸 때부터,
앞장서서 내달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우리 강아지는 나란히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언니와 내가 나누는 대화가 있다.
아이들은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궁둥이를 흔들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녀석들의 재촉에 지쳐버려서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을 바꾸어 보았다.
하지만 어떠한 말로도 산책이 간절한 강아지를
속일 수는 없었다.
녀석들은 우리 눈빛만 봐도 알아차렸다.
이런 조바심 유발자들!
이쯤 되면 이제 서둘러야 한다.
산책이 확정되면 바로 그림자로 돌변하여
어디든 따라다니며 보채기 시작한다.
눈 동그랗게 뜨지 마요.
얼굴 따가워요.
집요한 녀석들의 재촉 속에서
변 봉투 안에 미리 휴지를 조금씩 넣어둔다.
야외 배변에 대비하여 넉넉하게 만들어둬야 한다.
배변과 동시에
강아지똥이 사라지는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미안하지만 이게 최고 속력입니다.
그쪽 때문에 싸야 할 게 많아요.
아시면서...
핸드폰은 깊숙이 넣어두고
언제든지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편한 복장을 장착한 후
곧 헤벌쭉하며 공중에 떠서 달리는 강아지를 볼 수 있다.
길에 나서자마자 녀석들이 시동을 건다.
산책은 언니와 나의 뜨거운 외침으로 시작된다.
지난여름에는 이른 아침에 산책을 했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발바닥 화상도 걱정되었고
더위에 약한 강아지들 건강도 걱정되었지만
무엇보다 우리만의 산책을 즐기고 싶었다.
둘의 산책은 너무나 다른데
톰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좋아하고
제리는 여유롭게 냄새를 즐기며 머무르는 것을 좋아한다.
풀 냄새, 흙냄새, 누군가의 자취를 쫓으며
또 내 곁에 함께 걷는 사람이 엄마가 맞는지 확인해 가면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톰은 뛰어난 길 안내자이다.
처음 가는 길은 건물마다 냄새를 맡아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올 때 정확하게 길을 찾아온다.
저만치 앞서 가던 정찰팀이 우리를 기다린다.
꼬리는 바짝 추켜올리고서
멀리 내다보며 낯선 이 가 다가오지 않는지 경계 중이다.
냄새 따위 관심 없다.
낯선 개가 제리 곁으로 다가오면 쏜살같이 달려와 지켜준다.
집 밖을 나오니 우애가 솟는구나.
한편 풀밭을 사랑하는 제리 덕분에 우리 팀은 진전이 없다.
우리는 모두 제리를 기다린다.
제목을 바꿔야겠다.
라고.
서울 어딘가에서 쪼꼬미 요크셔테리어 곁에서
하염없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가 있다면
그게 바로 접니다.
그들의 스무 걸음 앞에서 꼬리를 바르르 떨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통통한 녀석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정찰견 톰입니다.
자고로 산책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산책은
걸음, 걸음, 쉼, 쉼, 쉼
걸음, 걸음, 오래도록 쉼
오던 길 좀 돌아가지 말자고.
하긴 강아지의 산책은 걷는 것도 좋지만
냄새를 맡는 것이 목적이니까
코를 많이 써야 머리도 맑아진다고 하니까
괜찮다. 괜찮고 말고.
뭔가 놓쳤던 냄새가 있었나 보다.
톰은 정말이지 안전한 곳이다 싶으면
쪼르르 달려와 제리의 몸 냄새를 맡아본다.
모든 정보를 수입한 제리에게서 정보를 얻는 건가.
이 녀석 고단수인데?
그리고는 코를 하늘로 향해 온갖 냄새를 단번에 빨아들인다.
하고.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제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크고 작은 멍뭉이들,
비둘기의 깃털, 돌멩이,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기둥들의 냄새를 세심하게 맡아본다.
특히 낙엽더미 속, 풀밭을 걷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풀베기를 막 끝낸 여름에 풀독이 오를지라도.
그때 풀독 때문에 고생 좀 했었지...
멍뭉이도 싫다. 길고양이도 싫다.
아저씨들 무섭다.
검은 비닐봉지를 든 아저씨는 정말 무섭다.
오로지 무생물과 친분을 깊이 쌓으신 톰.
급기야 대화도 가능하신 톰님은 날아가는 낙엽을 만났다.
낙엽 보니 너무 좋지?
낙엽이 뭐래?
잘 지냈냐고 해?
나뭇잎들과 깡충거리며 대화한다.
이젠 나도 대화가 되려고 한다.
우리 동네는 반려 가족이 많다.
다양한 모습의 강아지들을 볼 수 있는데
멋진 달마티안부터 래브라도, 아마도 형제인 듯한
회색빛 푸들까지 이쁜이들이 참 많다.
오늘은 공원에서 귀요미를 만났다.
요키만큼이나 작은 비글이라니!
멀찌감치 서있는 톰,
가만히 지켜보는 걸 보니 위험인물은 아닌가 보다.
제리는 아기 비글과 오래도록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 제리는 기분이 좋을수록 흰자위가 많이 보인다.
희번덕대는 걸 보니 기분 완전 좋은 듯.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대부분 강아지와의 산책에 호의적이다.
웃음을 보여 주시고 말을 걸어 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가는 꼭 마지막에
톰이 제리 어미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곤 서둘러 자리를 뜨신다.
하긴 누가 봐도 덩치로는 톰이 제리의 어미이다.
갑작스레 제리 어미가 된 톰 어린이.
괜찮아. 노안이면 어때?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자 제리 어멈, 갑시다!
산책할 때는 더없이 사랑이 넘친다.
또 확실히 강아지들이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까르르까르르 아이들이 계속 웃는 것 같다.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웃는다는 여고생들처럼.
여유롭고 한가롭게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
제리야, 우리 그만 가야겠다.
이때부터 신이 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집에 가는 것이 이렇게나 좋을까.
그 뒤로 끌려가는 언니와 내 모습은
차마 볼 수 없는 모습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집에 돌아와 깨끗하게 발을 닦고 출출한 배를 채운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뛰어다니던 강아지들,
이제 네 발을 쭉 펴고 잠을 청한다.
이제 우리도 해방이다.
잠든 제리와 톰의 발가락이 꼼질 꼼질
꿈속에서도 녀석들은 달리고 있나 보다.
재미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