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시계 따위 필요 없어
사람이 하루를 계획하고 시간을 지키며
규칙적으로 살아가듯
강아지들도 자신들만의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 같다.
식사 후 아이들은 껌을 먹는데
한 그릇을 뚝딱 비운 톰은 벌써 대기 중이다.
소중한 껌 저장소의 바로 아래에 편안한 자세로 자리 잡는다.
톰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껌 먹는 시간이다.
조금 있다가 주겠노라 했더니
예의 바른 톰이 얌전히 기다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디에도 빙하는 보이지 않는데
내 강아지는 동글동글 북극곰이 되어 간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귀여운 녀석......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나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식사 후 껌은 당연한 말씀이라며
폴짝 뛰어 껌을 물고 달려가는 뒷모습에 기쁨이 가득하다.
제리와 톰은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을 빈틈없이 챙긴다.
야무진 녀석들.
산책을 약속한 시간은 더욱 정확하다.
내가 곤히 자든
두 손 곱게 모으고 공손히 자든 상관없다.
나의 어깨 능선에서 누군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주말에 산책하는 시간,
정확하게 오후 4시 반이다.
대체 어떻게 안 걸까?
시계 보는 법을 깨우친 건가?
제리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
산책 앞에 타협이란 없다.
안 일어난다면 체중으로 깨워보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귀를 양 옆으로 잔뜩 눕혔다.
기분이 좋지 않은 요다의 포스가 느껴진다.
밤이 되면 꼭 하는 일이 있는데
하루를 마감하는 공식 일정인
우리 강아지들 밤 세수이다.
따박 따박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은빛 멍뭉이, 금빛 멍뭉이가
나의 시선 정중앙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럼 그렇지
벌써 9시 40분
어쩜 이리도 정확하단 말이냐.
언제부터인가 세수하자고 찾아오는 시간이
밤 9시 40분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10분 정도 오차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 강아지 천재였던 거야.
쿨쿨 자다가도
간식 시간, 노는 시간, 산책 시간이 되면
어찌 알고 눈을 딱 뜬다.
저 통통한 몸속 어딘가에 시계를 감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나 정밀한 알람 시계라니.
그러나 사람이 그렇지 않나.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을 때,
멈추기 싫을 때도 있는 법이다.
개들이 노려보는 걸 아는가?
이 콩알만 한 눈이 얼마나 힘이 센지 도저히 외면할 길이 없다.
삑삑 대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온다.
이 강아지 모습을 한 사랑스러운 알람시계는
끄기 설정이 없다.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참 쉽네...
야식이 당기는 어느 밤,
살금살금 달그락 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완벽한 음소거 속에서 행복에 겨워 한 입 먹으려는데
뒤통수가 싸하다.
멀고 먼 부엌일을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이건 뭐 기척도 없다.
졸린 눈을 하고선 힘을 주어 바라본다.
눈은 반쯤 감겼는데 초록불이 웬 말이냐.
우리가 맛있는 걸 먹으면
강아지들에게도 늘 간식을 준다.
그래서일까.
제리와 톰은 늦은 밤 내가 야식을 먹는 걸 아주 반긴다.
얼마 전부터는 급기야
마지막 젓가락을 딱 내려놓으면
눈앞에 딱 도착했다.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강아지들 코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
이 녀석들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오래전 며칠간 부산여행을 떠났을 때
내 강아지들과 나는 서로 아주 그리워했다.
밤마다 영상통화를 하며 며칠을 견뎠다.
며칠 후, 집에 도착하기 약 5분 전,
그러니까 아파트 초입에 들어설 때쯤
잘자던 제리가 벌떡 일어나더니 거실을 신나게 뛰기 시작했단다.
귀를 눕히고 몇 바퀴 전력질주를 하고서
숨을 고를 때 즈음 내가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랐던 순간이다.
이 녀석들은 대체 뭘까?
이쯤 되면 생각해봐야 한다.
혹시 지구 너머에
멍뭉이들의 큰 어르신이 있어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상황이 아닐까.
나는 고요한 새벽시간을 좋아해서
늦은 밤에 주로 '제리와 톰'을 쓴다.
자정이 넘어가면 빈 침대를 지키던 강아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더 자주 찾아온다.
횟수가 잦아들수록 눈은 점점 작아진다.
그러다 새벽 2시 경이되면
급기야 눈이 마이너스가 된다.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눈을 하고서
서 있을 힘도 없어 통통한 몸을 벽에 기대어 있다.
두 눈 퉁퉁 부은 제리님도 마중 나왔다.
우리 강아지들 눈에 잠이 내린다.
이 정도 되면 그만 일어나야 한다.
이제 그만 자야 한다.
리듬 뚝뚝 끊는 내 강아지들
규칙적인 일상에도 예외는 있다.
제리의 공놀이 시간은
'놀고 싶을 때마다'이다.
이 알람은 시도 때도 없이 켜진다.
공을 놓고 뒤돌아 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관심 없다.
신경은 온통 뒤에 있다.
저렇게 등을 보이고 앉은 것은
아주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말이다.
이건 노려보는 것보다 더한 압박이다.
...라고 쓰여있다.
내 눈에만 보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에
참 열심히 조른다.
오늘 간식이 부족했다 싶으면 찾아와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 강아지들은 심지어 산수도 잘한다.
아까 그 어르신이 셈도 가르치시나 보다.
쪼끄만 이 강아지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의 발걸음을 다 읽고
나의 하루를 다 꿰고 있다.
이제야 알겠다.
나의 스케줄은 그들이 관리한다.
난 그저 제리와 톰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아이 좋아!
동물들에게는 직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직감이든
먹성이든 눈치가 빨라서이든
때 맞춰 달려오는 멍뭉이들이 참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확실히 녀석들에게는 뭔가가 있다.
강아지들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