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지내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우리 집 마당에는 진진이가 살았다.
진돗개를 너무나 사랑하시던
내 아버지가 주신 이름,
진짜 진돗개라는 의미의 내 동생 진진이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아침이면 쥐를 잡아놓고
우리에게 자랑을 해댔는데
그 최고 기록은 6마리였다.
아직도 줄지어 잠들어 있던 생쥐들을 잊지 못한다.
쥐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소문이 난 거겠지.
속닥속닥
동물 사랑이 각별했던 아버지 덕에
겨울이 오면 진진이의 나무집은
두꺼운 비닐로 바람을 막고 따뜻한 담요로 온기를 더했었다.
손님이 올 때를 제외하곤
마당에서 뛰어놀며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캄캄한 밤에
혼자 외롭진 않았을까 마음이 짠해온다.
아침에 자랑하려고 밤새 쥐구멍을 들여다봤을 생각을 하니 웃음도 나고...
어른이 되어 강아지를 키워보니
부모님이 키우시는 것과 내가 키우는 것은 입장이 달랐다.
어릴 적 강아지는 그저 내 동생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들의 부모이자 보호자가 되었다.
강아지에게 나는 세상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얼마 전,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을 때
확실히 알았다.
쑥스럽고 낯선 이름,
나는 제리와 톰의 엄마가 되었다.
강아지들의 엄마가 되어 보니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릴 적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털옷을 입은 개들은 추위를 타지 않는다.
개들은 열이 많고
사람보다 체온이 평균 1도가 높다고 하지만
강아지들도 감기에 걸렸다.
제리는 열감기를, 톰은 목감기를 하며 기침을 했었다.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환기를 하느라 창문을 열면
쌀쌀한 공기에 강아지들이 사라진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을 때 이곳이면 백발백중이다.
왠지 불룩한 이불속,
그 안에 많이 보던 검정 코가 있다.
제리와 톰은 새벽녘에 기온이 떨어지면 바쁜 걸음으로 찾아온다.
이불을 들춰주면 쏙 들어가
따뜻하고 포근함 속에서 잠을 잔다.
이불만큼 따뜻한 곳이 또 있다.
다리로 만든 둥근 집.
나의 움직임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가
앉으면 바로 찾아와 앞 발로 긁는다.
이렇게?
잠시, 아주 잠시 바닥에서 볼 일을 보고 가려던 참에
톰에게 붙잡혔다.
일어설 틈을 주지 않고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톰이 품 속에 들어오면
나는 바로 기억을 잃는 마법에 걸린다.
아, 여기 앉아 먼 산 보려고 왔나 보다.
난 원래 양반다리가 힘들었다.
강아지와 살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지만
체형까지 변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따뜻하기로 말하자면 가족의 체온만 한 곳도 없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불던 여름날,
낮잠을 즐기던 중이었는데
자다 보니 뭔가 아주 뜨끈했다.
삼복더위에 녀석들은 얼마나 더웠을까?
그래도 꼭 이렇게 잔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엄마의 품속에서 말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뜨뜻하게 잘 잤다.
제리가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해 뜰 녘에 낑낑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방공기가 너무 더웠을까?
몸이 따끈따끈, 찬 바람을 쐬고 싶단다.
개들은 체온이 높아지는 걸 주의해야 하므로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사랑은 오만가지 귀찮음을 이긴다.
눈이 소복이 쌓인 밤에 달구경을 하고 시원하게 바람을 쐬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 참 좋다.
새벽의 청량한 냄새도 좋고.
잠이 확 달아나지만 괜찮다.
누우면 곧바로 잠들 테니까.
단순한 사람의 특장점이랄까.
영하의 날씨에 기침이 나려 하니 이제 가서 자기로 했다.
쪼르르 앞서더니 거실에서 자리를 잡는다.
품에 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 잊었다.
난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사람이었지.
꿈에서 막 북극을 헤맨다.
오들오들 떨며 막 얼음물을 마신다.
눈을 떠보니 덩그러니 나 혼자 있다.
제리가 없어져서 깜짝 놀랐다.
설마 날 버리고 혼자 들어갔을 리가.
강아지 하면 의리 아닌가.
꽁꽁 언 몸을 이끌고 들어와 보니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는
이미 잠이 든 강아지가 있다.
분해서 잠이 안 온다
언제부터 혼자 들어와 잤던 건가.
몸이 아주 그냥 따끈따끈하다.
치사하긴 하지만 강아지다.
어린아이 같은 강아지다.
어쩌겠나.
역시나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을까.
후다닥 이불에서 뛰쳐나간 제리가
방문 앞에 서 있다.
어린 제리가 헉헉댔다.
이불속에서 너무 깊이 잠들었나 보다.
다시 몸을 일으켜 베란다 창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를 깊이 들이쉬고
함께 이불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좋지?
또 금세 잠이 들었다.
또 헉헉대며 뛰어나간다.
또 방문을 열라고 한다.
또 찬바람을 쐬겠다고 한다.
그날 밤 세 번을 반복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 강아지가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
제리가 성견이 되고는
스스로 따뜻한 곳에서 몸을 덥히고
시원한 곳에서 열을 식히며
체온 조절을 잘하게 되었다.
귀찮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날 새벽 풍경만큼은 참 예뻤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강아지들에게는 가족이 삶의 전부인데도
어릴 적 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어설펐던 그 시절의 나의 강아지들에게 미안하다.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진진이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또 새벽에 창문을 열 때마다 생각한다.
누군들 그런 삶을 원했을까.
원치 않게 태어난 길 위에서의 삶이 부디 평안하기를.
길고양이들, 강아지들 모두 이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나길 바란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해준 동생들도
모두 따뜻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고기를 싫어하던 채식주의자 진진아.
용감하던 미미야.
귀여운 치와와 치돌아.
쿠키와 캔디라고 부르고 싶었던 둔철, 둔순아.
평생 공 하나만 사랑한 레미와
일찍 떠난 그의 아이들과 쭌쭌아.
동네가 모두 너의 구역, 복실이와 풍뎅아.
그리고 아름다운 검은 고양이 다크.
세 개의 다리로 신나게 뛰어놀던 지미야.
점박이 고양이 타리와 나비, 잉꼬부부.
토끼들, 수야, 물고기들아.
마지막으로 청거북 7 총사 청1, 청2, 청3...
(이름 안 불러주면 서운할 수도... 계속해서)
청4, 청5, 청6, 청7아.
(아버지의 작명 실력을 존경합니다)
모두 모두 고마웠어.
서툴러서 미안했어.
아름다운 그곳에서 뛰어놀고 있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