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공포특집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을 만큼 영화를 사랑하지만
딱 하나 못 보는 것이 있다.
소복 귀신이 나오는 영화이다.
전기톱을 든 아재나
흰자위 히번덕대는 악마나 좀비들,
침 너무 흘리는 에이리언은 언제든 환영이지만
대한민국 귀신은 눈을 감고도 무섭다.
그저 흰 옷 깨끗이 빨아 입고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다소곳이 서있을 뿐인데도.
포스가 아주 그냥...
조...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우리 집 멍뭉이들은 뭐가 제일 무서울까?
제리는 똥꼬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섭다.
그 첫째가 똥이요,
두 번째가 방귀이다.
난 강아지 똥, 똥꼬라는 말이 참 귀엽다.
내 강아지들을 키우면서 이리되었다.
궁둥이에서 뽕 소리가 나면 놀라서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5년쯤 만났으면 그만 친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만
제리는 그들과 영 가까워지지 않는다.
톰에게 그들은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다.
때가 되면, 배변패드에 얌전히 증거물을 남겨놓고
기쁜 소식을 전하러 신나게 달려온다.
어디 경사라도 난 줄 알았다
이런 현상은 아무래도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배변 교육 때 칭찬을 많이 했더니
그만 심하게 행복한 배변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오버를 하더니만...
톰 생각에 똥을 싸면
가족 모두에게
크나큰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듯.
어찌 되었든 배변패드에서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하룻강아지 톰은
최근 들어 무서운 것이 하나 생겼다.
어느 가을날 다리 많은 벌레가 출연한 이후
그만 벌레 공포증이 생겼다.
난 벌레가 무섭다기보다 싫다.
특히나 다리 많은 벌레라니.
휴지를 칭칭 감고도 잡을 수가 없어서
난리법석을 피우며 우왕좌왕했었다.
그 순간 물끄러미 나를 보던 톰이 기억난다.
벌레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스스로 우리 집을 떠나 주기를 바랐다.
어르신들은 돈 들어온다고 귀하게 여겼지만
숨어 살더라도 우리 만나지 말았으면 한다.
호감형으로 그렸더니 영 다른 벌레가 탄생했다.ㅇ_ㅇ
톰은 원래 벌레를 겁내지 않았다.
톰이 벌레를 대하는 방법은,
뭐 이렇게 된다.
이렇게 호기심 많던 톰을 벌레 한 마리가
단번에 겁보로 만들었다.
하긴 동물병원서 만난 시바견 용감이도 용감하지 않았다.
사람과 개가 다가오는 것을 겁내는 겁보들.
톰과 용감이는 마주 보고 짖어댔다.
동물병원 떠나가는 줄 알았다.
톰아, 그날 정말 창피했다.
모두가 너희 보고 웃었다고.
이야기가 산으로 갔는데,
다음 날 톰이 꼼짝 않고 서랍장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집을 떠나 달라 그렇게 애원했건만
벌레 녀석 기껏 옆 방으로 옮겨간 거다.
바닥 틈새에 벌레가 있나 보다.
가자고 해도 기어코 지키고 있다.
톰은 벌레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흘렀는데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뛰어가 보니 톰이 우두커니 서있다.
입에서는 거품이 보글보글
거품 사이에 그 벌레도 있었다.
차마 그릴 수가 없어 꽃으로 대신했다
얼른 닦아냈지만 톰이 꽤 놀란 듯했다.
이후로 톰은 틈새를 보면 겁을 먹었다.
벌레가 지나갔을 법한 벽엔 가까이 가지 않았다.
톰은 시원한 벽에 붙어 자는 걸 즐겨했는데
편안한 안식처가 그만 공포가 되어버렸다.
모두 잠든 깜깜한 밤에도
제 침대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
......
......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구석구석을 같이 살펴봐주자.
나는 손전등을 가져와 톰과 함께
틈새마다 꼼꼼하게 비춰보았다.
구석구석 확인한 후
벌레들은 다 떠났고 이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또, 톰이 더위를 식히던 곳
부엌으로 가는 돌바닥에도 드러누웠다.
더없이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쓰담쓰담을 무한 반복했다.
내 손 냄새가 배어들기를 바라면서.
톰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벽에 찰싹 붙어 있던 톰의 간이침대에도 올라갔다.
뺨을 비벼대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벌레가 없다고도 말해주었다.
참 희한하게도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톰의 눈빛이 점점 편안해졌다.
사라졌던 꼬리도 쪼끔 올라왔고.
이 녀석은 눕는 자리가 왜 이리 많은가.
내친김에 아무 문제없던 굴집에도 들어가 봤다.
뭐 여긴 유일하게 안심하고 들어가던 곳이지만 뭐 어떤가.
푹신한 털로 만든 굴집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사람용이었던가보다.
잠들 뻔했다.
그렇게 톰의 공간을 찾아다니며
별일 없음 퍼포먼스를 해보인 결과,
나를 한 번 보고
바닥을 한 번 보고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서야
사라졌던 꼬리가 완전히 고개를 들었다.
집에서 때 아닌 감옥살이를 하던 톰이 해방되었다.
톰은 안심했다.
이제 잔다.
그래, 이제 우리 톰 같다.
사냥개의 후손이라더니
쥐잡이 개의 혈통은 대충 이어받다 말았나 보다.
멍뭉이 조상님들이 너 창피하대.
아! 가만 생각해 보니
제리와 톰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었다.
껌이 없는 걸 제일 무서워한다.
간식이 똑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날 녀석들의 눈빛은 참...
껌이 없는 하루는 공포와 경악 그 자체였다.
참 미안했다...
^^
여기 거대 사과...
마음을 담아 아주 정성껏 그렸다.
그날 톰은 벌레로부터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그냥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믿고 싶다.
난 톰이 좀 기특했다.
뒷수습은 좀 힘들었지만
우리 톰, 다 컸다.
든든하다, 우리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