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우리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나보다

by 뾰족달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이 벌써 몇 해이다.

그동안 제리는 더 건강해졌고

톰은 완전히 성견이 되었다.

정신과 몸이 함께 성장했어야 하건만 딱 몸만 자랐다.

행동은 여전히 어린 강아지 때와 같다.

어리광만 날로 늘어간다.



눈은 아기처럼 해맑은데

몸은 아주 통통하고 커졌다.

그러니까 아주 음... 거대해졌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탓이겠지.

눕기만 하면 꿀잠자는 느긋한 성격 탓도 있겠고.




밥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아고 이쁘다~

아고 이쁘다~

했더니 밥을 먹을수록 자꾸만

이뻐진다고 생각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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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꼭 앉아서 드시고

365일 입맛은 또 얼마나 좋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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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좀 이뻐져도 될텐데요.

그리고 이름을 통으로 바꿔야겠어요.

허리도 통이고

고기도 자꾸 통짜로 드시고

무엇보다 통통하시니까요.




얼마 전 동물병원에서 면담 중에

우리 제리가 입이 짧아서 밥을 잘 안 먹어요~

라며 걱정했더니

원장님이 눈이 동그래지셔서는

입 짧은 아이를 어찌 그리 통통하게 키우셨나요?

하신다.



그랬구나.

통통했구나.

나만 몰랐구나.



난 강아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나 보다.

먹여도 먹여도 부실한 것 같은,

왜 내 눈엔 그렇게 야위어 보였을까.

원장님은 체중이 지금 딱 적당하지만

여기서 더 늘면 관절이 걱정된다고 하셨다.




네, 저도 걱정됩니다. 언니 관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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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어디 안 가는 걸로.

잠시 저 가방은 넣어두는 걸로.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제리는 수시로 뭔가를 요청한다.

인사성도 밝아서 청하기 전에 감사인사도 잊지 않는다.

아주 짧게

낼. 름




가장 자주 하는 요청은

긁어주세요~

꼭 어디가 가려워서라기 보다

등이나 배를 긁어주면 기분이 좋은가 보다.

내 동생도 어릴 적에 등을 긁어주면 잠이 들곤 했는데

강아지도 그 기분을 아는 걸까.

성에 차지 않으면

이제 됐다~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 이런 소신 있는 녀석을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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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지그시 감고서 시원함을 즐기는 강아지들.

쉬려고 누웠지만

나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들의 통통한 가슴과 궁둥이,

보들보들한 배를 쓰다듬는 것이 나는 참 좋다.

긁다 보면 어디선가 솔솔 꼬신내가 가득한데

그 또한 좋고.

강아지를 만지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지난여름,

손목이 뻐근할 정도로 신나게 긁는 중에

느낌이 이상해서 내려다봤더니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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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거야?

잠든지 한참 됐는데?


한 살이 되기 전까진 배도 잘 보이지 않던 제리였다.

이 녀석이 이렇게 변하다니...

신기하고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이 손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손이 왜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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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모양이 딱 효자손이다.

녀석들이 나를 효자로 만드는구나.

내 손... 내 손을 돌려달라.





톰은 여전히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한다.

폭풍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인사받을 준비를 한다.

눈을 가만히 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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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거 아닙니다...

사랑받는 중이에요.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아는 우리 강아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각오해야겠다.

오래오래 엎드려서 뽀뽀해드릴 각오를.




또 여전히 껴안고 비비고 스킨십하는 걸 즐기는데

밤 시간, tv볼 때를 가장 좋아한다.

쉬려고 누웠다가 우린

의도치 않게 킹사이즈 침대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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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시간에 여기서...

영화 한 편 보겠다는데 그걸 그렇게 안 도와준다.


한쪽 어깨가 묵직하구나.

그런데 언니 뺨은 괜찮을까?

우리 강아지는 편하지?

그... 그럼 됐다.





톰은 이제 물구나무서기 하는 대장님을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물론 옆에서 내가

"기다려야 돼~ 기다려야 돼~"

라고 하니 가능한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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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조금만 움찔했다가는 바로 온몸으로 얼굴을 덮어버린다.

찰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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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찰싹.



그래도 대장님은

"숨 쉬게 해줘서 고맙다~"

너무 찹쌀떡마냥 붙어 있으면

대장님이 힘들다는 걸 톰도 조금씩 아는 것 같다.

뭐든 깨우쳐 가는 것이 참 신통하다.



그동안 제리와 톰의 삶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우리가 강아지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갈수록

녀석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어느 날 언니가 부스럭 부스럭

앙증맞은 어린이 이불을 돌돌 말아 도넛들을 만들었다.

면으로 만든 시원한 도넛.

담요로 만든 따뜻한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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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은 뭔가 이렇게

턱을 괼 수 있는 아늑한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특히 지키는 물건을 숨겨야 하는

제리가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우리 톰,

몸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조금 큰 곳을 추천해드립니다만

좀 작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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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또아리를 마구 펼쳐 거대 베개로 사용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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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옆구리를 걸치는 용도로 사용했다.

아주 창의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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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언니의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넛 모양은

금방 무너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들은

기온차가 심한 요즘

맘에 드는 곳에서 꿀잠을 자며 잘 지내고 있다.



여전한 것도 있지만 변하는 것도 있다.

제리는 톰을, 톰은 제리를

서로서로 배우고 닮아간다.

언제나 꼿꼿하게 앉던 제리는

어느새 톰의 포즈로 앉게 되었다.

삐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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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여전히 도망자 생활을 즐기지만

톰은 더 이상 장난감을 야단치며 놀지 않는다.

난 그 모습이 너무나 그립다.


장난감이랑은 대화가 안된다는 걸 알아챈 거지.

눈치 빠른데?



모든 게 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강아지의 사랑스러움.

몸의 곳곳에서 세월이 느껴지지만

노견이 되어도 사랑스러움은 변치 않을 것 같다.

내 강아지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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