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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뾰족달 Oct 19. 2016

대화가 필요해

우리 말로 하자



강아지들이 할 말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제리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아주 분명하게 표현한다.

아기 때부터 바라는 것이 있을 땐

어떻게든 우리가 알아듣게 만들었다.


뭔가 할 말이 있을 때는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리, 뭐 할 말 있어?"

라고 물었더니 점점 대답하기 시작했다.

간식을 바랄 때는 부엌으로 안내했고,

맑은 공기가 그리울 때는

베란다로 안내했다.






제리가 할 말 있어요 자세로 바라보면

나는 늘 같은 단어로 간단하게 질문했다.


배고파?

간식 먹을래?

산책 갈까?

안아 줄까?


바라던 질문이라면

궁둥이를 흔들며 답했고,

뭐, 그것도 괜찮아요 라면

꼬리만 흔들었다.




언젠가는 자다가 눈을 떴더니

제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고 깜짝이야!




제리, 뭐 할 말 있어?

꼬리가 살살 움직인다.

혹시... 배고파?

갑자기 기습 뽀뽀를 한 후

궁둥이를 흔들며 뛰어다닌다.

띵똥

정답이었군.




"제리야. 깜깜한데 귀도 접고서

초록눈으로 내려다보는 건 좀...

나 정말 놀랐다."



레이저 빔 발사!





때로는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어

제리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귀 기울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제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이 있는데 꼼짝 않고 

등을 보이고 앉아

목표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제리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곳에 정답이 있다.

띵똥!





마음먹고 앉은 뒷모습이 동글동글

너무나 귀엽다.



하지만 지금은 안돼~



내가 바쁘다는 것을 안 제리는

포기하고 돌아서... 면 얼마나 좋을까.

뒤 돌아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더욱 집중해서 나를 본다.  

얼굴이 왠지 따갑다...






내가 TV로 시선을 돌린다면

TV와 나 사이에 슬그머니 와서 앉는다.

귀여워서 언니와 마주 보며 씨~익 웃고는

이불로 산을 만들어

따가운 시선을 피해 본다.






빼꼼 얼굴을 내밀어 나를 본다.

내 시선이 가는 곳에 재빨리 자리를 옮겨

어디를 보나 눈이 마주친다.

포기란 모르는 녀석.

아니 이렇게 굳건한 강아지가 있나.


하긴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기 때부터 제리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물어봐줄 것이라는 것을.

난 그때부터 길들여졌던 거야...




오래전 강아지들을 집에 두고 

가족 모두가 처음 외출을 했던 날이었다.

집에 남겨진 제리와 톰이 

불안해할까 걱정이 되었다.

특히 이런 경험이 처음인 어린 톰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출발 전에 반복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녀올게.

푹 자고 사이좋게 놀고 있어.

빨리 올 거야.




마음을 졸이며 집에 돌아왔을 때

의연했던 제리와 달리

톰은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한참 동안 톰을 안아주고 위로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외출 후 돌아왔을 때

톰은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는 가족들이 꼭 돌아온다는

깊고도 깊은 신뢰로 인해

우리는 푸대접을 받았다.

푸.대.접.





이거 너무 서운한데?

아니... 누워서 꼬리만 흔드는 거냐?

별로 안 반가운데?



그래도 좋았다.

강아지들이 우리가 다녀온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 준 것이 정말 좋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강아지들이 과연 말을 알아들을까?

딱히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해주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열심히 듣는다.

새로운 상황이 생기면 나는 설명을 해주곤 하는데

왠지 빨리 적응하고 금세 안정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음...

우리 강아지들은 천재인가봐.





그건 그렇고

목표물을 향해 앉아 뚫어져라 바라보는 화법이

제리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둘이 함께 앉아 나를 보고 있다.

한 녀석의 시선만도 버거웠는데

이젠 두 녀석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거냐...

얼굴 따갑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톰은

통역자 제리를 통해서 우리와 대화했다.

표현이 서툴렀던 톰은

제리가 좋아하면

영문도 모르면서 마냥 좋아하곤 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던 순둥이 녀석이

뭔가 야무지게 배운 것 같다.

둘이 어디 학원이라도 다닌 건가.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이런 가시방석이 있나...



이 2인조 강아지의 대화법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대화를 시도한다.


둘이 해맑은 눈빛으로 착석하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므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못 본 척에 돌입한다.

귀여우니까...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

곧 시무룩해하며 꿍얼거린다.



아마도 작전을 짜는 중이겠지?

다 안다.  요 녀석들...





[3단계]

불쌍한 표정으로 포기하는 척한다.



제리와 톰은

어떤 눈빛이 설득력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3단계에서 나는 100% 무너진다.


차라리 요구를 해라.

이런 고단수 녀석들...




바라던 대로 신나게 놀고 난 후 제리와 톰,

왠지 개운해 보인다.

2인조 강아지에게 뭔가 

제대로 당한 것 같은데?







귀담아들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강아지들은 어떻게든 말을 걸어온다.

눈빛으로 꼬리로 몸짓으로.

강아지들과 소통이 잘되다 보니

나는 더 바빠졌다.

제리와 톰은 뾰루지가 간혹 나는데

약을 발라주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혹시 불편한 데가 있으면 꼭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일까.

꼭 내 곁으로 와 몸을 밀착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댄다.

내가 잠을 자든 말든 찾아온다.

자다 보면 탈탈탈탈... 소리와 함께

침대에 진동이 전해진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겠지...

소통이 원활해서

잘된 거라고 해야겠지...







그럼~ 이야기해줘서 다행이지.

다행이고 말고.




갓 태어난 어린 강아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 자란 강아지는 눈만 바라보고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아는

세상 가장 미덥고 오로지 내 편인

좋은 친구가 된다.


나는 아기 때의 깜찍한 모습도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지만

성견이 된 지금의 제리와 톰이

더더욱 사랑스럽고 좋다.


내 곁에는 언제나

복슬복슬한 털북숭이 모습을 한

최고의 친구가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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