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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하우트 Nov 26. 2021

아이와 취미를 함께 한다는 것

아이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를 포함한) 보통의 아빠들이 다들 그렇듯 본인의 취미를 가족과 공유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공통의 취미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물론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건 가족 구성원 간의 관심사가 같다는 이야기이고 자연스레 대화가 많은 가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아마추어 천문을 취미로 하는 오픈 채팅에 새로운 분이 들어와 아이와 함께 천체관측을 하고 싶은데 어떤 장비를 사면 좋겠냐는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마침 저도 애와 함께 천체관측을 어느 정도 하고 있던 터라 아이의 연령을 물어봤더니 우연하게도 제 첫째애와 동갑내기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5세 유아와 함께 볼 수 있는 간단한 장비를 두 가지 정도 추천했습니다. 하나는 goto 가대가 포함된 etx 시리즈, 다른 하나는 테이블 위에 두고 볼 수 있는 작은 미니 돕소니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한 분은 소개받은 장비가 맘에 안 들었는지 다른 장비 추천을 원하는 눈치였습니다.


경험상 5세 아이들의 키가 어른과 비교하면 많이 작으니 망원경을 어른 편한 높이로 설치를 하면 애가 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사다리나 발판 등등을 가져다 놔도 불편한 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안아서 보여주게 된다면 아빠도 덩달아 힘들겠죠.. 애와 함께 관측을 하고 싶다면 어디까지나 저는 애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애가 서서 접안부를 충분히 볼 수 있는 높이로 설치를 하는 편입니다. 삼각대 다리를 전혀 빼지 않고 위에 망원경을 세팅하곤 하는데 이러면 애가 대상을 보는 게 쉬워집니다. 특히나 천체관측 시 중요한 망원경을 건드리지 않고 눈만 대서 보라고 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눈높이에 접안부가 딱 있으니 그냥 서서 보면 되거든요.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상을 찾아 보여줘야 하는데 애들 높이에 맞춰 있으니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자세로 대상을 찾아줘야 합니다. 아빠는 고생하겠지만 그래도 애들은 편하게 관측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큽니다.


유아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과학에 대한 교육을 받지도할 수도 없는 연령입니다. 그래서 관측을 나가면 볼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입니다. 달이 떠 있다면 달을 보고 조금 더 본다면 다른 별들과 망원경으로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목성이나 토성 등의 행성이 그것이죠. 달과 밝은 행성들은 사실 비싼 장비 없이도 어느 정도는 관측이 가능한 대상들입니다. 시작할 때 진입장벽이 낮은 셈이죠. 저렴한 장비로 시작해서 애가 커 가면서 흥미를 보인다면 그때 좋은 장비로 가도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에게 성단 성운을 보여주고 싶고 아빠 본인도 관심이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실 여기서 살짝 기분이 상하긴 했는데 왜냐하면 아빠가 관심 있어 장비를 사는 것과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건 천지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배제하고 추천해준다면 아마 추천해줬던 장비가 달랐을 겁니다. 솔직하게 장비는 사고 싶은데 명분이 없으니 애를 끼워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위 아빠의 말에 제일 큰 문제는 5세 유아에게 성단 성운을 보여주고 싶다는 점입니다. 외부은하, 성운, 성단 중 성단은 그래도 별들이 모여있고 하는 모습 덕분에 어느 정도는 보여줄 법하다 보지만 성운이나 외부은하의 경우는 이미 학교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청소년이나 어른들에게 보여줘도 이 취미를 접해보지 않은 입장에선 매우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그 유명한 안드로메다 은하를 보여줘 봐야 뿌연 솜뭉치 같은 게 보일 듯 말 듯 하며 보이고 오리온 대성운을 보여줘도 뿌연 구름 안에 별들이 몇 개 정도 빛나는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5세 아이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요? 아마 열이면 일곱여덟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제가 아이와의 취미활동에서 이런 점을 경계하는 이유가 아이가 안 보인다 그러면 아빠는 옆에서 자꾸 '아빠는 보이는데 잘 봐봐' 이런 말을 하게 될 테고 애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뭐가 보이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엔 아빠와 아이 사이의 간극이 생기고 점점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를 가르칠 때 처음에는 자연수를 가르치고 그다음엔 정수 유리수... 순서대로 가르치는 게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애들이 크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르치는 거라 봅니다. 아빠와의 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맨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대상을 보려 하면 이해도 안 되고 보이지도 않으니 흥미가 떨어지게 됩니다. 애들이 제일 잘 아는 대상을 보여주고 놀고 그런 과정이 익숙해지며 성장해가면 그때부터 하나둘씩 다른 대상을 보여주면 따라오지 말라 그래도 아마 같은 취미를 공유하게 될 거라 생각됩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길고 밤하늘의 천체들도 오래갑니다. 조바심을 조금만 버리면 아이와 함께 좋은 취미를 갖고 롱 런 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달이랑 행성 몇 번 보고 그다음은 동네 친구들과 놀면 어떤가요? '오늘 아빠랑 망원경으로 달 보러 갈까?' 했을 때 선뜻 '좋아요!'라고 할 수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친구와 놀이하듯 망원경 설치하고 애와 놀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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