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문제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좋은 때,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머리를 잘랐다.
"아깝지 않으세요? 제가 본 이래로 가장 긴데?"
나는 머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 머리는 몇 년 단위로 휴식기가 있다고 하는데, 내 머리는 평생 휴식기였다.
1년에 2-3번 정도 보는 후배는 이렇게 말했었다.
"언니는 참 변함이 없어. 머리 길이가 언제나 똑같아. 언제 만나든."
머리카락처럼 마음도 한결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늦은 밤 친구에게 "자니?"라는 카톡과 함께 지난 주말에 만나서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하루 종일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수많은 어쩐지가 스쳐갔다.
어쩐지 헤어지고 나서 답장이 없더라니, 어쩐지 표정이 안 좋았더라니, 아 어쩌지.
최선을 다해 숨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변명을 다 끌어와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핑계를 대고 싶었다. 핸드폰으로 다급하게 몇 번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그 이야기를 오해한 너의 상황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쓰다가 모든 것을 다 지우고,
"미안해. 친구야."
라는 말을 남긴다. 어떤 말이 되었든 나의 잘못을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그때 너 그랬대. 몇 년 동안 이 친구에게 그 말이 상처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서 하지 않았던 그 말을 왜 그날은 왜 그렇게 아무렇지 말을 했을까. 사회적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친구가 모든 것에 너그러워졌으리라 믿었던 걸까?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틈이 나면 6층에 사는 곰아줌마네 나와 동생을 데리고 놀러 갔다. 그럼 곰아줌마네 형제들과 내 동생은 PC게임을 시작했고, 나는 홀로 엄마와 곰아줌마 사이에서 어른들의 수다를 듣고 맞장구치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그러다 옮겨서는 안 될 말을 옮기고 말았다.
곰아줌마가 "너네 옆집 걔는 그게 별로야."라고 했던 말을 옆집 아줌마도 함께 있던 날 곰아줌마가 그랬었다고 3인칭 시점으로 아주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싸움이 일어나는 걸 눈으로 보고 나서 나는 세상에는 옮겨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옮겨가면서 '아'와 '어'가 너무 달라져 종국에는 한 친구를 아주 먼 곳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왜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이야기를 점점 하고 싶지 않아 타인의 근황과 이야기로 수다의 공백을 채울 때마다 타인의 이야기를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한 지 겨우 10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류시화 시인의 2022년 새해 다짐의 맨 첫 번째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하지 말 것'을 올해는 나도 꼭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