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차가운 벽 너머의 가시 밭길 뒤에는
"차가운 벽 앞에 한참을 서서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어?"
"여기는 내가 저 너머로 가보려다 겁나고 두려워서 망설이며 결국 넘지 못하고 지나쳤던 벽이야."
"그런데 왜 다시 온 거야?"
"미련이 남아서 와봤어."
"혹시 다시 넘어 보기로 한 거야?"
"그땐 저 벽 높이만큼의 사다리를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 사다리를 갖고 있던 순간은 과거가 되었고 타이밍은 지났기에 지금은 못 넘어."
"무시 무시한 가시나무들밖에 안 보이는 곳에 가봤자 힘들기만 하지 않았을까."
"너도 아직은 저 벽 너머에 정확히 무엇들이 있는지 안 보이는구나."
"딱 보기에도 가시나무들이 가득한데 그 뒤에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결국 저 벽을 지나쳐 언덕으로 올라가서 이 곳을 내려다본 후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보였어."
"무엇이 있었어?"
"지금 당장 보이는 가시나무는 눈에도 안 들어올 만큼 포근하고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한 꽃밭이 있어. 지금은 아는데 그때는 몰랐네. 그때의 미련이 나를 오랜 시간 여기에 머물게 하고 있어. 이 곳은 나의 미련의 벽이야.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 너머의 포근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이렇게 와 있어."
"미련은 고통일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미련을 붙잡고 있는 거야?"
"언제까지나 영원히 붙잡고 있을 생각은 아니야. 미련이라는 고통과 아쉬움을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아. 하지만 붙잡고 있는 미련의 실체를 담담히 인정하고 미련의 여러 조각들을 분석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새롭게 나타날 벽 앞에 달라질 것이란 걸 다짐하게 해줘. 새로운 벽을 넘고 나면 이 미련의 벽도 잊을 거야."
"그래. 새로운 벽 너머에도 네가 본 그 포근한 꽃밭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랄게."
"그곳엔 이와 같은 포근한 꽃밭은 없을 수도 있어. 중요한 건 나는 미련이란 것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야. 나는 단지 이 벽이 나의 마지막 미련의 벽이기를 바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