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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r 21. 2021

시골에서 진돗개랑 함께 살기

가끔은 버겁지만 사랑스러운 너라는 존재

 부모님이 시골에 주택을 짓고 산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랐던 생각은 '그럼 우리 강아지 키울 수 있는 건가?'였다. 마당을 자유로이 뛰노는 멋있는 우리 집 개.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다. 어떤 강아지를 데려오는 게 좋을까 온갖 상상을 했다.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천사 같은 골든 레트리버? 용맹하고 잘생긴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 다 키울 수는 없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상상으로 벌써 마음이 푸근해졌다. 주택이 완성되어 갈 즈음부터 엄마 아빠에게 은근슬쩍 강아지를 키우자며 나의 흑심을 조금씩 드러냈지만, 부모님은 완고했다. 강아지 키우는 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데, 어떻게 키우냐며.


 원래 마당 있는 시골집에는 개 한 두 마리 정도 뛰놀고 해야 그림이 완성되는 거라며 생떼를 써보기도 하고, 서울에서 각박하게 살며 심신이 지친 딸에게는 정서 안정 치료견이 필요하다고 어설픈 호소를 해보기도 했다. 시골 마을에는 사람도 많이 없고, 우리도 독립했으니 부모님 두 분만 사시기엔 적적하지 않겠냐며 틈만 나면 스리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그렇게나 진득하게 강아지 키우자고 졸라댔던 이유는, 부모님도 강아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개를 몇 마리 키웠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개를 팔겠다고 해서, 아빠가 절대로 안된다며 학교도 안 가고 울면서 강아지를 지키려고 했다는 소리를 고모들로부터 들었는 걸. 아마 아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모르셨겠지만. 그리고 우리 엄마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쉽게 마음을 주시는 분이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강아지를 모른 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기 뿌꾸는 너무 조그마했다

 그렇게 나와 내 동생의 질척거리는 강아지 타령에 엄마 아빠도 결국 손을 들었다. 전화 통화를 하며 강아지 한 마리 데려와야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너무 좋아 만세를 불렀다. 이제 어떤 강아지를 고를지만 정하면 된다고 동생과 호들갑을 떨며 '역시 골든 레트리버 정도면 괜찮겠다, 시골이니 맘껏 뛰어다닐 수도 있을 거야' 하고 기쁨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어느 날 갑작스럽게 엄마가 강아지를 데려왔다며 보낸 사진에는 시골 누렁이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견종이 우리 집으로 오다니. 허탈함도 잠시, 시골집에는 역시 외국 순종견보다는 우리 전통견이 어울리지 않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소년기의 뿌꾸. 너무 빨리 큰 데다 갑자기 애가 늙수그레해서 깜짝 놀랐었다

 강아지를 들였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내려간 시골집에서 마주한 강아지는 작고 보송보송한 데다 발랄하고 애교가 많았다. 처음 만난 우리들을 향해 강아지풀 같은 꼬리를 흔들면서 짧은 다리로 달려오는 그 귀여운 모습이란. 왜 골든 레트리버가 아니냐며 따질 틈도 없이 나는 이 강아지와 사랑에 빠졌다. 이름은 뿌꾸.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야 오래 산다는 속설을 믿고 금방 결정해버린 이름이었다. '우리 귀여운 뿌꾸, 금방 또 보러 올게' 하며 짧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했었다.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돌보는 게 너무 힘들지만 아이의 모습만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조금만 천천히 자라 다오’ 하고 바라게 된다던데, 뿌꾸를 향한 나의 마음도 그랬다.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뿌꾸의 덩치가 우락부락해지고 힘도 세지는 것을 본 후 이렇게 압도적인 건강미야말로 시골 개의 매력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지만.  

 

뿌꾸야, 가방이 좀 작네...

 뿌꾸는 우리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성견이 된 이후부터는 마당에서 밖을 경계하다 낯선 누군가가 지나가기만 해도 굵은 목청을 울리며 짖는다. 보통 누군가 그냥 지나가는 경우라면 그 짖음도 곧 그치지만, 우편배달이나 택배, 수도 점검처럼 집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꽤나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짖는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낯선 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뿌꾸는 똑똑해서 우리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택배기사분 같은 사람은 기억해두었다가 처음에만 인사하듯 짖고, 꼬리를 흔들며 그 사람이 업무를 볼 때까지 기다려준다. 덕분에 동물을 좋아하는 택배기사분은 우리 집에 배달을 오셨다가 뿌꾸랑 놀다 가시기도 한다. 시골 개가 이렇게 용감한 데다 똑똑한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생각보다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시골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뿌꾸의 아침밥과 물을 챙기는 일이다. 마당에 나가면 뿌꾸가 졸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갑다며 꼬리를 흔든다. 매일 만나는데 뭐가 그렇게 반가운 지 모르겠다. 좋다고 몸을 부딪혀 오는 뿌꾸를 요리조리 피해서 밥을 듬뿍 두 컵 퍼주고 물그릇에 신선한 물을 떠다 준다. 그냥 가면 아쉬우니까 간식 통에서 간식도 한 두 개 꺼내서 뿌꾸 쪽으로 던지면, 뿌꾸는 잽싸게 날아서 간식을 낚아챈다. 그 모습이 또 예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귀를 쫑긋거리면서 웃는데 정말이지 내 동생이지만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입만 달라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뿌꾸

 그리고 간단히 과일이나 빵 같은 걸로 아침을 챙겨 먹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뿌꾸와 함께 아침 산책에 나선다. 뿌꾸는 산책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다. 뿌꾸가 흥분해서 뛰쳐나갈 때면 제발 진정하라며 달래 보지만 보통은 소용이 없어서 그냥 나도 같이 뛰어버린다. 늘 산책하는 동네인데 뭐가 그리 신기한 게 많은지 몇 걸음 걷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어떤 개나 고양이의 흔적이 보인다 싶으면 그 자리에 영역표시를 해버린다. 뿌꾸는 배변도 산책 가서 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뿌꾸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배변을 하도록 기다려주고 배변봉투로 정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커피 한 잔 들고 강아지와 여유 있게 산책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건 판타지가 분명하다. 뿌꾸와 산책할 때면 그런 여유 따위 부릴 새가 없다. 뿌꾸와 뜀박질을 하거나, 뭔가에 흥분한 뿌꾸를 말리거나, 뿌꾸가 길바닥에 떨어진 이상한 걸 집어먹지는 않는지 유심히 살피느라 바쁘다. 절로 운동이 된다.

산책을 할 때 행복한 뿌꾸

 혈기왕성한 뿌꾸를 위해 틈틈이 고양이 낚싯대 장난감으로 뿌꾸와 놀아주거나, 마당에 풀어놓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배드민턴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며 같이 왔다 갔다 뛰는 뿌꾸를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뿌꾸는 야외활동이 많은 데다 어디 풀숲이 보이면 항상 뛰어들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매월 심장사상충과 내외부 구충이 되는 약을 사서 먹인다. 한 달에 한 번 약 먹이는 것 만으로 여러 가지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 꼴로 목욕도 시킨다. 쉽게 더러움이 묻지 않는, 방수가 되는 튼튼한 이중모를 가진 뿌꾸지만 그래도 가끔 목욕은 시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뿌꾸 냄새가 목욕시킬 때면 유독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뿌꾸를 목욕시키고 나면 엄마 아빠는 화장실에 락스를 뿌리고 초를 켜면서 뿌꾸 냄새를 뺀다며 무진 애를 쓰신다. 나는 뿌꾸 냄새에 적응이 되어서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개니까 개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지' 하고 넘기는 정도다. 하지만 뿌꾸와 집 안에서 털 날리며 논 날은 괜히 찔려서 물걸레로 바닥을 박박 닦아 놓곤 한다.

뿌꾸는 목욕을 싫어한다, 머리 위에 간식을 올려두고 장난쳐도 호응해줄 기분이 아닌 뿌꾸

 저녁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뿌꾸와 함께 저녁 산책을 한다. 산책을 몇 번이나 해도 지치지 않는 뿌꾸는, 밤이 되어도 넘치는 힘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리고 걸을 때면 항상 우리 가족의 선봉에 서려고 한다. 내가 산책을 앞장서려고 하면 후다닥 앞으로 뛰쳐나오는 뿌꾸를 보며, 엄마가 '뿌꾸 뒤로 와라, 뿌꾸가 앞장서야 하니까'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다. 뿌꾸가 우리 집 대장이란 말인가. 요즘 집에서 집안일은 내가 다 하고 있는데 시골에서 익숙지 않은 노동에 허덕이는 큰 딸보다, 존재 자체의 귀여움으로 밥값을 하는 뿌꾸의 서열이 더 높은 것 같아 서글퍼졌다.


 중성화 수술, 홍역 접종처럼 뿌꾸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서 가끔은 동물 병원에 간다. 시골에는 병원이 없어서 차에 뿌꾸를 태워서 이동하는데, 차를 여러 번 탔더니 뿌꾸도 익숙해졌는지 제법 어른스럽다. 뿌꾸 하네스를 바꾼 적이 있는데, 하네스가 닿은 부분의 털이 벗겨진 것 같아 온 가족이 놀라서 황급히 뿌꾸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피부에 바르는 연고를 처방받았는데, 아무래도 피부가 쓸린 것보다는 여름 털갈이를 해서 그런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모두 안도했다. 그리고 그 하네스는 바로 창고행. 시골 진돗개가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 맛있는 간식, 즐거운 산책도 좋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바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주는 것. 시골 개와 건강하게 함께 살기 위해서 꼭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정신없는 뿌꾸

 그리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뿌꾸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한다. 반복적인 생활이지만, 지겹지 않은 이유는 뿌꾸 덕분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제멋대로 굴다가도 다가와서 촉촉한 코를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뿌꾸는 걷고, 뛰고, 냄새 맡고, 어딘가를 응시하며 그 넘치는 생명력을 내게도 나눠주는 듯하다. 존재 자체로서의 위안. 그런 뿌꾸를 사랑하고 보살피며 기운이 솟아난다. 시골에서 진돗개와 함께 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래도록 함께 산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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