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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15. 2019

시골집 탄생기

맨 땅에 집짓기

 시작은 은퇴 이후 시골에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계획 때문이었다. 시골 출신의 부모님께서는 노후에 답답한 아파트에 살 바에야 미리 준비해서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노라고 하셨다. 그 시기가 나의 예상보다 조금 앞당겨진 것은 의외였지만.

마을에서 한 시간에 한 대 꼴 있는 버스 타러 가는 길

 부모님은 주말마다 마실 겸 주변에 땅을 보러 다니셨고 부동산 업자들에게도 괜찮은 부지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미리 여유 있게 발품을 팔아 보셨는데, 중국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어느 부부가 노후에 한국에 들어와 집 지어 살려고 했던 부지를 급매하는 바람에 우리 가족에게 기회가 왔다. 부동산 업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마을은 시에서 계획적으로 주택단지로 조성하려고 만든 곳으로, 모자이크 마냥 네모난 주택 부지들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2차선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는 곳이었다.

 

 밤에도 어둡지 않도록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이고, 배선들도 지저분하지 않게 지하로 지나가도록 조성해 둔 이 마을에 대한 첫인상은 '정리된 시골' 같았달까. 눈 앞에 펼쳐진 밭이며 교통편, 주변 인프라로 보면 딱 시골이지만 어릴 적 기억 속 시골 외할머니 집처럼 기와나 마루가 있는 집은 없었다. 각 잡힌 부지마다 집주인들이 원하는 다양한 취향으로 주택을 지어 살고 있으니 그 조화가 참 신기했다. 어떤 집은 몬드리안 그림을 따서 지은 듯 모던했고, 또 어떤 집은 미국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강아지 수영장을 설치한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집들 사이로 2차선 도로가 나있다
가을밤, 길 여기저기에 이렇게 작물을 말려놓은 게 눈에 띄었다

 우리 집이 들어설 부지의  앞, 뒤, 옆은 이미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멀리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이지만 슈퍼마켓이나 고깃집, 국밥집 같은 음식점, 약국도 있었고 시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이며 조그만 공원까지 딸려 있어 부모님은 여기가 좋겠다 싶으셨단다. 두 분 모두 운전을 하시기 때문에,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대중교통의 불편함은 그리 큰 장애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게 2015년 9월에 땅을 매입하기로 하고, 2016년 2월부터 집을 본격적으로 짓게 되었다. 원래 살던 아파트 앞에 경전철 노선이 뚫리면서 다행히도 아파트가 제 시기에 큰 어려움 없이 팔렸는데, 우리 가족이 시골로 이사 가는 것을 하늘도 돕는 것 같았다.


초반에 구상한 집의 큰 그림은 이랬다!

 몇 년 머무를 월세나 전셋집을 찾을 때도 여기저기 찾아보고 발품을 팔며 부지런해야 하는데, 계속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 과정 전체를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은 우리 집을 짓기 위해 백방으로 부지런히 뛰셨다. 인터넷으로 집 짓는 업체들을 몇 군데 정해 비교해보고 상담을 거친 끝에 우리 가족 집을 가장 책임감 있게 지어줄 것 같은 곳을 한 군데 고르셨다고 한다. 고심 끝에 업체 선정을 하고 나면 본격적인 집 짓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집 짓는 업체들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업체가 그 간 작업했던 집 디자인이나 샘플 디자인들을 보여주는데, 우선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 디자인 중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예산에 맞게 건축 자재(창을 이중창으로 할 것이냐 삼중창으로 할 것이냐, 단열재를 어떤 걸 쓸 것이냐 등)나 화장실 옵션(욕조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등), 창고나 다락방 여부 등과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정한다. 필요한 경우 방 하나를 더하거나, 베란다를 추가하거나 하는 설계 수정을 한다. 가진 예산 아래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결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오래도록 살 집이니 말이다. 데크 나무 소재를 고르는 것만 해도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내구성이 뛰어난 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어떻게 관리해줘야 하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나무 데크도 자연에 가까운 느낌이라 좋다

 대지 170평, 건물 34평의 우리 집은 첫 삽을 뜨고 3개월쯤 뒤 완공되었다. 마당에 잔디를 깔았고, 1층짜리 건물이지만 넓은 다락을 올렸다.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거의 매일 현장에 방문해서 작업 내용을 확인하고 진척 사항에 대해 작업자 분들과 의논하셨다고 한다. 꼼꼼한 설계를 바탕으로 베테랑 작업자들이 일하는 거지만 그래도 의뢰자와 작업자가 자주 만나 긴밀히 이야기해서 만들어가야 탈이 없다. 집 짓는 업체에 소속된 작업자들의 책임의식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관리도 필요했다. 요청한 내용에 맞게 잘 지어지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해서 가끔 불편한 말을 하고 세부사항을 따져 물어야 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기에 이 시기의 아빠는 정말로 바빠 보이셨다. 그와 동시에 시골에 우리 집을 짓는다는 사실에 묘하게 활기가 넘쳐 보이시기도 했다.

 

스페인 점토기와를 입힌 지붕,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잔디가 깔린 마당 위를 걸으면 기분이 좋다

 몇 개월 간 공들인 끝에 완성된 우리 집에서 보냈던 첫날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사 가기 좋은 날을 정했고, 사고 없이 무탈하게 잘 살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며 깨끗이 쓸고 닦고 부엌 신에게 빌었다. 이삿짐 트럭에 싣고 온 짐들을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이모, 삼촌이 모여 열심히 나르고 제자리에 놓고 열심히 닦았다. 몸이 너무 힘들었지만 이 새 터에 우리 가족이 자리 잡는다는 생각을 하니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나무 데크 위의 그늘막이나 마당의 파고라는 차차 직접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집 자체는 완성되었지만 이 집이 완전히 우리 가족 취향의 집으로 자리 잡으려면 1년 정도는 마당과 창고에 크고 작은 부분들을 추가해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 가족이 만들어 가야 할 부분이었다. 널찍하게 만들어 둔 마당에 어떤 나무들을 심을지, 텃밭에는 어떤 작물들을 심을지 고민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앞으론 우리 집에서 직접 가꾼 상추며 깻잎을 따다 먹고, 사과나 대추도 우리가 수확해 먹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오히려 조금 어색함을 느꼈다.

 

 새로운 방에서 침대에 누웠을 때 차 소리도 없고 윗집 아랫집 사람 소리도 안 들려 이상했던 그 밤. 도시 소음 대신에 새소리와 바람 부딪히는 소리, 저 멀리 마을의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 우리 집은 정말 시골이구나 하고 슬며시 웃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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