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방영시기 : 2021년
*등장인물 : 스다 마사키, 아리무라 카스미, 나카노 타이가, 후루카와 코토네, 카미키 류노스케
*산들의 코멘트
주인공 하루토, 쥰페이, 슌타는 고등학교 동창. 쥰페이가 하루토한테 같이 콩트를 해보자고 꼬드겨서, 둘은 학교 축제 무대에서 콩트를 선보인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하루토가 콩트의 매력에 빠졌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너네 재능 있다'라는 말을 들은 후 두 청년은 의기투합, '맥베스'라는 개그 콤비를 만든다. 슌타는 고등학교 때 '뿌요뿌요'라는 게임 일본 1위를 한 것을 계기로 프로게이머가 되었지만, 20대 중반이 된 후에는 게임 승률이 떨어져 방황하다 하루토의 제의로 맥베스에 스카우트된다.
이로써 맥베스는 3인조가 되었는데, 사실 개그 트리오로서의 맥베스는 성공적이지 않다. 10년을 활동했지만 작은 공연장에서도 관객을 채우지 못하는 인기 없는 개그맨이다. 하지만 이들은 팔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계속 콩트를 만들고 연습하고 무대에 선다. 그리고 우연히 이들의 콩트 영상을 보고 팬이 된 리호코와 뭔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그녀의 동생 츠무기가 모여, 20대 청년 다섯 명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져 나간다.
사실 이 드라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 청춘들의 손에 달콤한 미래를 손에 쥐여주지 않는다. 10년을 열심히 했지만 뜨지 못한 개그 트리오는 결국 해체 수순을 밟는다. 대기업에서 일하며 미래가 창창할 거라 생각했던 언니는 한순간 삐끗해 경로를 이탈한 채 방황하고,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미라클 매니저로 칭송받던 동생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이들은 제각기 벽에 부딪히면서도 악해지지 않고, 좌절한 서로를 일으켜 주기 위해 노력한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실패해도 이를 꽉 물고 다시 달려보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에는 모두 좋은 사람들만 나오는데, 이 점이 냉혹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묘한 밸런스를 자아낸다. '자, 현실 네가 아무리 거지 같아봐라, 나는 삐뚤어지지 않는다!'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낯간지럽지 않은 정도로 보듬어 주는데, 보면서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실패였다고 생각할 맥베스의 10년간의 도전으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리호코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하루토는 리호코 덕분에 여기까지 해 온 노력이 쓸데없지 않았구나 깨닫는다. 마지막 회에서 리호코와 하루토가 서로에 대해 감사하는 말들을 남기는데, 녹록지 않은 현실에 뭔가를 포기해본 적이 있다면, 그럴 때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면 공감할 법한 멋진 대사들이 나온다. 특히, 20대 중후반이라면 더욱 와닿을. 그래서 이 드라마는 20대에게 꼭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앞으로 이렇게 사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답을 내려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실패하고 포기하고 상처받는 우리들이지만 혼자가 아니야'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서.
성공은 작은 실패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우리가 포털이나 유튜브나 sns 사이에서 접하는 대박 아이템들은 수 없이 많은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거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조합해 다시 만들었을 때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터진 것들이 많다. 돈으로 엮은 명품 브랜드들의 콜라보 제품과 B급 감성이 덕지덕지 묻은 초등학생이 왼손으로 그린 듯한 콘텐츠가 동시에 성공하는 시대다.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콘텐츠가 못생겼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템이 어느 시점에 어디를 통해 퍼져서 순간적으로 널리 발산됨으로써 어떤 집단을 건드리느냐 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거리두기가 발표된 여름, 청정원에서 만든 혼술 선풍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리 튼튼해 보이지도, 유명 브랜드나 캐릭터와 콜라보한 것도 아니고 그저 청정원의 HMR(Home Meal Replacement) 안주제품 구매 시 같이 증정해주는 굿즈였다. 그런데 이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된 상황에서 집에서 혼술 하는 술꾼들의 감성을 건드린 것. 술집에 출입 가능한 인원수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면서, 집에서 술 한잔 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쌓여만 갔다. 혼술 선풍기는 사실 영 부실해 보이지만 코로나 시국에도 나와 술잔을 짠하고 부딪혀 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SNS에서는 이 선풍기와 술 한 잔 하는 인증샷들이 줄을 이었다. 더운 여름밤, 시원한 바람을 날려 주면서 나와 짠 해주는 귀여운 선풍기 친구. 그것도 안주를 5종 담으면 따라오는 거라니 뭐든 재밌는 건 인증샷을 남기고 싶어 하는 2030 술쟁이들이 솔깃하지 않았을까.
담당자는 과연 혼술 선풍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가 많아질 줄 알았을까. 술안주 제품도 호평이지만 굿즈로 준비한 선풍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해 초기 물량 1200개가 빠르게 동났고, 추가 판매 문의가 빗발쳐 2차 물량을 생산과 동시에 흐름을 타서 배우를 섭외해 HMR 제품 프로모션 동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찾아보니 청정원도 다른 식품 회사들과 비슷하게 레시피 응모, 캠핑 초청, 제품 특가 타임세일 등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진행해 온 듯하다. 이 리스트 사이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박 이벤트는 없었다. 마케팅을 하는 모두가 그렇듯, 청정원도 과거 이벤트와 굿즈 제작에 많은 시도를 해보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고민했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19라는 상황을 결합해 '혼 술러'라는 명확한 타깃을 공략한 B급 감성 히트 굿즈가 탄생했다.
여러 회사들의 이벤트나 굿즈를 살펴보면 투입된 자원에 비해 반응이 미미했던 실패 사례가 많다. 특히 빅 브랜드의 이미지나 인지도에 영합해 만드는 컬래버레이션 굿즈가 아닌, 자체 제작 굿즈의 경우 스타벅스 같은 빅 브랜드가 아닌 이상 반향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 그런데 청정원의 혼술 선풍기는 해냈다. 혼술 선풍기는 그 자체로도 안주 5종의 인지도와 판매량을 견인했지만, 온라인 상에서 '청정원'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마케팅 이벤트 10개를 시도하면 1개가 터질까 말까 하는 시장이다. 그 상황에서 성공을 만든 것은 필시 과거 선배와 동료들이 진행한 수많은 이벤트와 굿즈 사례, 타사의 사례를 연구해서 고민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일 것이다. 실패를 그냥 두면 그저 실패에 머무를 뿐이다.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걸 교훈 삼아 다른 아이디어를 붙여가면서 또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걸 '개선'이라 한다. 실패의 무덤 속에서 대박이 터지는 것이다.
A의 팀은 뷰티 분야 앱 서비스를 담당하며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미션은 '고객들의 체류 시간과 리텐션을 늘릴 수 있는 앱을 만드는 것'. 팀에서 머리를 짜내 고객들끼리 특정 주제 대해 글을 올리고 답변을 달 수 있는 커뮤니티성 게시판 메뉴, 멋진 스트릿 패션을 담은 룩북 메뉴, 웹툰 작가들과 연계해 뷰티에 관련한 웹툰 제작 등 콘텐츠로서 소비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여 앱을 개편하기로 했다. 앱 전체의 UX/UI도 바꾸는 수준의 개편이었기에 프로젝트로 진행되어 외주 개발사와 콘셉트 및 기획안에 대한 소통을 나누면서 정시퇴근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출시일이 다가올수록 A는 개발사가 입주해있는 층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기획된 서비스에 오류는 없는지 테스트 앱을 쉴 새 없이 확인했다. 밤새 작업하느라 지쳐 책상에 엎으려 쪽잠을 자고 있는 개발자들을 보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들고 가서 밤늦게까지 테스트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드디어 앱의 출시를 앞두고 담당자들이 모두 모였다. 앱은 24시간 고객이 이용하는 것이기에 대규모 기능이 업데이트되는 건의 경우 최대한 고객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 시간대에 작업한다. 작업자들이 운영 앱 업데이트를 하고 재빨리 기능을 한 번씩 점검해보고 이상이 없으면 출시, 이상이 있으면 급하게 버그를 찾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A와 동료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씻고 새벽 1시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지금부터는 졸음과의 싸움이다. 회사 휴게실 소파에서 동료와 번갈아가며 쪽잠을 잤다. 개발자로부터 앱 배포가 됐다는 전화가 오자마자 앱스토어로 들어가 앱을 업데이트했다. 로그인 절차부터 각 메뉴를 눌러보는 수많은 테스트 케이스를 순식간에 진행한다. 이미지가 깨지는 부분을 발견해 개발자에게 전달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수정 작업을 진행, 변경된 부분을 발견하고 이슈 없음을 확인한 후 서버 배포를 했다. 다행히 다른 큰 버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침 7시를 기해 팀장에게 출시 보고를 했다.
앱의 기능적인 개편을 진행했다면 그다음은 지속적으로 콘텐츠가 업로드되도록 하는 운영성 업무가 이어졌다. 개발은 틀을 만드는 것일 뿐, 운영의 묘를 잘 발휘해야 고객이 모인다. 앱에 지속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앱에서 하는 활동에 따라 리워드가 지급되는 정책을 만들었고, 퀄리티 관리를 위해 리뷰나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글의 검수를 진행했다. 예산 문제로 외주 업체를 통해 운영할 수 없어 이벤트 기획부터 고객 문의 대응까지 팀 내에서 소수 인원으로 소화해야 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바뀐 앱 콘셉트 덕에 MAU(Monthly Active Users)가 늘었고 조금씩이나마 콘텐츠에 반응하는 20대 고객들의 앱 유입이 늘어났다.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앱으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바쁜 와중에도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임원이 바뀌면서 조직의 방향성도 바뀌어 이커머스 몰처럼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앱에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을 사유로, A가 담당하던 앱 담당 조직은 규모를 축소해 다른 조직에 귀속되게 되었다. 회사일이 그러려니 하지만 열심히 발로 뛰어 만들어가고 있는 서비스가 제대로 평가도 받지 못하고 짐짝 취급당하는 상황에 A는 눈물이 났다. 회사 화장실 한 칸에 비집고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열심히 했는데 남은 것은 팀의 해체, 그리고 내가 애지중지 지난 몇 년 간 담당해온 앱이 쓸모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자괴감이었다. 앱을 없애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A는 앱 서비스를 가지고 팀을 이동했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서 A의 앱 서비스는 핵심적인 기능만 남긴 채 다시 재편됐다. 콘텐츠나 커뮤니티처럼 손이 많이 가는 메뉴는 폐쇄했고, 멤버십 등급과 포인트를 확인하는 기본 기능에 충실하게 바뀌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전 고객 대상으로 앱 푸시를 보내며 홍보했던 과거와 달리, 멤버십 등급이 높은 고객 위주로 CRM 캠페인을 펼쳤다. 구매 실적이 높은 고객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은 잘 통했고, 점점 VIP 고객 위주로 MAU와 리텐션이 오르기 시작했다. 전 고객을 타깃으로 운영하며 실패했던 과거에 비해 타깃을 좁힌 전략이 먹혀들었다. 회사 입장에서 가치 높은 고객들의 앱 이용이 점점 늘자 앱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도 점점 늘었고, 실 구매 고객 외에도 최대한 많은 고객들을 유입시켜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A는 과거에 앱 서비스를 담당하며 뼈저리게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앱 주요 서비스를 다시 기획했다. 개발 공수가 많이 드는 대대적인 개편은 지양하고, 작은 규모로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반응이 있으면 그 부분 위주로 기능을 개선하는 프로세스로 방향을 잡았다. 조회수를 보장할 수 없는데 제작비는 많이 드는 형태의 콘텐츠는 배제하고, 사내 여러 조직에서 이미 제작해둔 영상이나 뉴스 콘텐츠를 수급해서 발신했다. 전에 진행했던 이벤트들의 결과를 고려해 투입 대비 효과를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이벤트 위주로, 과거에 만들어둔 툴을 활용해 최대한 공수를 줄여서 오픈했다. 기본에 충실해 앱의 체질 개선을 이루고 양질의 방문 고객 수를 달성하고 나니 과거에는 통하지 않았던 마케팅과 이벤트가 통하기 시작했다. A가 담당하는 앱은 A의 회사에서 가장 높은 MAU를 기록하는 앱이 되었다. 2년 전 실패하지 않았다면 지금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A는 힘들었던 과거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담당했던 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없어진 경험을 한 직장인들은 많을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거나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이 바뀌었다거나 조직의 수장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사유로. 납득이 되든 되지 않든 그래도 오랫동안 담당한 업무나 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은 씁쓸한 경험이다. 회사 업무는 업무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애정을 쏟은 만큼 미련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서비스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기울였던 나의 노력이나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 뛰어들어서 실패를 많이 해봐야 나중에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음 서비스를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실패에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살아가자.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동료들에게도 그런 생각이 퍼져 나갈수록,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고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파생한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