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

by 산들

공장 앞의 나무에서 이파리가 날려왔다. 아직도 초록색 냄새가 났다. 아저씨는 이제 여름이 가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더우니까 물을 많이 먹으라며 내 앞에 물그릇을 들이밀었다. 목은 안 마른데. 여름을 살아보니, 집 뒤 나무가 드리운 그늘막에 숨어 있으면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몸을 움직이면 열이 나서 숨이 막혀 헥헥거리기 벅찼기 때문에, 여름날 동안은 거의 대부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나날들에는 하는 수 없이 집 안에 들어갔다. 한나절 내내 비가 오는 날은, 저 굵은 물방울이 모여서 우리 집을 휩쓸어가서 아저씨를 다시 보지 못하면 어쩌지 무서웠다. 집 안으로도 물이 스며 바닥이 질퍽해지기도 했다. 비와 함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눈앞으로 부러진 나뭇가지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춥고 무서워서 앞발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사실 더 힘든 건 겨울이었다. 나는 추운 게 싫었다. 바람이 거센 겨울밤에는 집 안에 들어가 몸을 말고 있어도 들이치는 찬 기운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고통스러웠지만 해가 뜨면 다시 조금은 몸이 녹았다. 추위에 떠는 것도 몇 번을 해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 겨울밤을 겪었을 때는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계속 추운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는 행복했다.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거잖아. 더운 것도 추운 것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야.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해가 저물어 바람이 조금은 선선해진 저녁 무렵이었다. 이번에도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나는 최대한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고, 여자는 까르륵 웃었다.

“자, 오늘은 약을 먹을 거야. 약인데 고기 맛이 나는 약이야. 잘 먹을 수 있지?”

약인지 간식인지 나는 사실 차이를 잘 모르겠다. 일단 여자 손에 올려진 걸 보고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렸다.

“어휴, 잘 먹네! 아이 이쁘네.”

내 침이 잔뜩 묻은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왠지 칭찬받는 것 같아서 좋다. 여자는 또 한동안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등을 긁어주었다. 등은 아저씨도 한 번도 안 만져줬는데. 누가 등을 긁어주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여자가 나를 예뻐해 주는 동안 나는 슬며시 잠이 들 뻔했다. 하얀 개가 생각났다. 그 개와 함께 걷는 사람은 개를 이 여자처럼 어루만져줄까. 쓱싹쓱싹 시원하게 등도 긁어줄까. 그렇다면 나는 그 개가 부럽다.

여자는 늘 10분 정도 나와 함께 있었다. 매일 나를 찾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올 때마다 간식을 주거나 나와 놀아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여자를 보면 좋아서 껑충껑충 뛴다. 여자의 무릎 언저리에 매달리면 여자는 안된다고 나를 떼어내면서 ‘또 이런다 또’ 하며 웃으면서 야단을 쳤다. 야단처럼 들리지 않아 나는 헷갈렸다. 여자가 기뻐해 주는 것 같아서 만날 때마다 여자를 보면 폴짝거리며 달려들었다. ‘또! 또 그러는 거 아니라고 했지? 까불면 안 돼요~’ 하더니 여자는 이제 나를 ‘또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 내가 자꾸 여자를 보고 방방 뛰니까? 여자를 보고 좋아서 폴짝거렸더니 이름이 생겼어! 나는 누렁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자를 만난 이후 두 번째로 기뻤다.


*사진출처 : 머니투데이 '1m 목줄'에 묶여…시골개의 하루를 보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1017593615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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