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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25. 2017

시작하며

시작하며

‘안아줘요’ 

2012년 봄, 문화기획 컨설팅을 하겠다고 겁도 없이 회사를 차렸다. 이름은 ‘비로소’. 이 단어 뒤에는 항상 처음으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긍정적 문장이 따라온다. 내 회사도 사람들에게 그런 문장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을 '비로소'로 지었다. '비로소'가 처음 열었던 파티의 이름이 '안아줘요'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벌거숭이 우리를 좀 안아달라는 메시지였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파티는 프리지어 향내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철공소 즐비한 문래동, 열 평 남짓의 ‘내방’이라는 작은 카페 공간에서 열렸다.


 십 센티의 노래 ‘안아줘요’를 반복 재생하며 ‘위로받고 싶은 우리들이 모이는 촉촉한 자리’가 콘셉트라면 콘셉트였고, 지인들과 그들의 친구들, 동네 예술가들 또 그들의 친구들이 모여 제법 사람들로 공간이 북적거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와인을 홀짝이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오렌지색 니트를 입은 호스트는 일면식도 없는 옆 사람들과 포옹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작가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재기 발랄한 사진 전시를 동반한 훈훈한 파티였다. 


이 파티를 통해서 ‘비로소’는 처음으로 인사하며 잠재 고객이 될만한 분들과 눈을 맞추었으며, 사진 전시로 분위기를 돋우고 곧 시작될 그림, 글짓기, 기타 레슨, 독일어/문화 수업 등의 예술 워크숍 접수를 받기도 했다. 전시를 함께한 기획이었기에 입장료와 사진 판매 대금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공간 대관과 다과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간이 장소로 탈바꿈하는 추억을 하나 만들면서  ‘안아줘요’ 파티는 ‘비로소’의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신촌으로 옮겨가기 전 잠깐이었지만 문래동에서 활동하면서 문래동 예술가들의 공간을 경험해보니 예술가들과 공간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고 싶으면 열고 닫고 싶으면 닫는 것처럼 보여서 너무나 자유로운 곳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규칙과 운영의 철학이 있었다. 예술가들끼리 주기적으로 모이는 시간이 있고, 그들과 함께 술과 밥을 먹으면서 다음 전시를 논의하고 카페를 겸한 갤러리 공간에서 바자회, 전시회, 워크숍, 파티, 어쿠스틱 공연을 하였다. 또 어딘가 숨어서 만들어 낸 그들의 작품들은 정기적으로 잡지의 콘텐츠가 되어 실렸으며 그것을 매개로 주변 공간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목격하였다. 그것이 문래동 예술촌의 문화였다.


 ‘나도 저런 공간을 갖고 싶다. 그 속에서 내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 것이 시작이었다.



'비로소' 문화공간을 열다


'비로소'는 신촌에서‘신촌 타프’를 대학로에서 ‘얼반 소울’을 운영하였다. 두 곳 모두 기존의 공간을 이어받아 운영을 하게 된 곳으로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에 위치해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두 곳은 그 외형이나 운영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경험의 폭은 상당히 넓어졌다.


일단 공간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잔잔한 추억을 가지게 되면 공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게 된다. 공간은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지속적으로 알리려 노력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공유하며, 공간에 머무는 이들과 룰을 만들어 나가면서 점점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간을 찾는 친구들과 해볼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고 전시, 워크숍, 공연, 벼룩시장, 팬미팅, 북 토크, 파티, 스몰웨딩 등을 만들었다. 공간은 평소에는 카페로 운영하고 아트 상품 판매를 대행하거나 공간을 빌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공간 운영의 달인이라 생각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점수를 매기라면 얻은 것은 많지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공간을 매개로 예술과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자 했던 나름의 도전이 무색하게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만약 내가 그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더 명확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그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더 명확했다면 어땠을까. 원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은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절대 피하지 않는다. 또 지지부진한 탁상공론을 하지도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일도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그 성과가 나오는 것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 속 캔디 캐릭터처럼 진부한 것도 없지만 우리는 그런 주인공에게 더욱 애정을 가지고 선의를 베풀기 마련이다. 신촌타프와 얼반소울에서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오히려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채 알기도 전에 진이 빠진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말아먹은 것도 아닌데, 뚝심과 성실 그리고 믿음이 부족했다.


그래도 이 경험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적은 가게를 열고자 하는 이들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작은 가게를 문화공간으로 꾸려나가려는 이들에게 나눈다면 내가 했던 시행착오를 덜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다른 멋진 공간들을 염탐하면서 배운 것들을 조금씩 정리해왔다. 잘만 한다면 생기 발랄한 작은 가게의 주인장들의 수고를 조금은 덜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날 선 콘텐츠를 가지고 나만의 작은 가게를 열고자 하는 젊은 청춘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나의 이야기가 작은 가게를 키워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목을 ‘작은 가게, 문화공간 만들기’라고 지은 이유는 작은 가게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맞춤 고객들이 많이 찾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조금 더 어조를 강하게 해보자면 가게는 문화공간이 되어야만 생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책, 공예품, 커피는 인터넷을 통해서든 대형 상점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꾸준히 작은 가게에 찾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고, 친숙하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으며, 나의 추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가게를 운영할 때, 애정이 샘솟게 만드는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시크하고 도도한 고객들을 사로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자꾸 그 작은 가게를 찾는 걸까?


이미 많은 동네서점들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독서 경험을 팔고 있으며, 저자와의 만남이나 책과 관련한 전시와 워크숍 혹은 공연까지도 함께 담는 문화공간이 된 지 오래다. 카페도 여행, 책, 그림이나 꽃을 주제로 하며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는 동네 방앗간이 되고 공예품을 만드는 예술가들도 개방적인 공간에서 작업뿐만 아니라 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 공예품 판매를 겸하고 있다.


물론 작은 가게가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꼭 파티나 전시, 혹은 워크숍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활동을 직접 해야만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공간이 된 작은 가게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공간의 철학이나 가치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는 힘들다. 그 철학이나 가치라는 것도 설익어서 충분히 여무는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키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이 일단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어필하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머물 것인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터득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공간을 즐겨 찾는 고객들이 ‘알아서’ 노는 놀이터가 되는 전략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작은 가게가 누구인지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해 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실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나름 정리해보기로 했다. 말은 좀 번지르르하지만 우선 12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하이콘셉트, 스토리, 브랜드, 베네핏, 커뮤니케이션, 팬, 콘텐츠와 시스템, 놀이, 플랫폼과 네트워크 그리고 컬래버레이션이다. 


머리 속에 뒤죽박죽인 생각과 경험들을 앞으로 부지런히 정리하고 또 부지런히 고쳐갈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산만하고 중언부언 말만 길 수도 있고 산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공들여 고치고 정리하다 보면 작은 가게를 만드는 주인장과 그 공간의 절친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미래의 '비로소'가 함께 만들 세 번째 공간을 위한 준비가 될 수도 있겠다.




목차


0.     시작하며

1.     작은 가게, 큰 그림을 그리자

  1)     High Concept: 한 문장으로 나를 표현해볼까 

  2)     Story: 옛날 옛날 먼 옛날에…

  3)     Brand: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기

2.     작은 가게, 고객 친구 팬

  1)     Benefit: 너를 위해 준비했어

  2)     SNS: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어!

  3)     Fan: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당신

3.     작은 가게, 문화 만들기

  1)     Contents: 단막극과 연속극 혹은 시리즈

  2)     System: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라

  3)     Play: 문화콘텐츠 그리고 놀이

4.     작은 가게, 사회성이 필요해

  1)     Platform: 사람, 공간 그리고 콘텐츠

  2)     Network: 따로 또 같이

  3)     Collaboration: 변신은 무죄 

5.       문화공간이 된 작은 가게들(사례분석)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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