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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26. 2017

작은 가게, 큰 그림을 그리자(1)

High Concept: 한 문장으로 나를 표현해볼까

될 성 부른 작은 가게, 콘셉트부터 알아본다.


하이콘셉트이라는 말은 거대 자본을 필요로 하는, 그래서 리스크가 무척이나 큰 영화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이를테면 영화‘도둑들’은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 드라마‘도봉순’은 ‘여자 슈퍼맨’, 영화‘조선 명탐정’은 ‘조선시대 셜록’과 같이, 실제 이들 영화가 저런 하이콘셉트로 기획되었는지는 몰라도 기존에 충분히 알려진 것들을 기반으로 비틀거나 뒤집고 시공간을 바꾸는 식이다. 이처럼 기존의 잘 알려진 것에 새로운 것을 조합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하이콘셉트라고 한다. 


콘셉트라는 것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미리 단순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지만 하이콘셉트와 달리 일반 명사들로 설명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차이다. 예를들면 ‘젊은 직장인들이 손쉽게 드나드는 갤러리 카페’를 콘셉트로 한 카페가 있다고 하자. 이 카페는 주변 사무실에 배달을 해주거나, 점심시간 할인 등의 메뉴를 구성할 수 있다. 평일 저녁에 워크숍이나 공연을 곁들인 2시간 이내의 이벤트를 열거나 직장인들의 관심사가 반영된 주제의 전시를 기획할 수도 있다. 한편,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서점’이라는 콘셉트를 잡았다면 구비하는 책들의 목록과 내부 공간의 디자인에 콘셉트가 반영되어있을 것이다.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에 편안하고 세련된 가구들을 배치하고, 책을 읽으면서 즐길 수 있는 디저트 메뉴 혹은 수제 맥주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한 문장 정도만으로도 머리 속에 상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콘셉트인 것이다. 


작은 가게도 엄연한 사업이기에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콘셉트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테리어 등의 외형적인 것부터 운영방식, 서비스 내용, 상품의 품질 보이지 않는 것까지 결정짓게 하는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키친 405’, ‘경성 팥집 옥루몽’ 등 많은 사람들이 찾게 만든 김현우 씨는 그의 책, <카페 불패>에서 카페 불패의 3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콘셉트 : 가게의 큰 그림, 콘셉트를 먼저 정하라. 그러면 그에 따른 비용과 위치, 인테리어 등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밸런스 : 맛과 서비스의 밸런스, 설비와 운영의 밸런스 등 전체적인 조화가 맞아야 한다. 이는곧 콘셉트를 얼마나 잘 구현했느냐와 연관된다. 

퀄리티 : 맛의 질뿐 아니라 서비스와 운영의 질도 포함한다. 무조건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콘셉트에 합당한 퀄리티를 실현한다. 


 이렇게 작은 가게를 시작하는데 콘셉트만 확실하다면 공간을 꾸미거나 운영을 하는 방식을 정하는 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시 하이콘셉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수십 억 들어가는 영화처럼 거창한 하이콘셉트가 꼭 필요하겠냐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우리 가게가 어떤 가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직장인들이 손쉽게 드나드는 갤러리 카페’를 ‘B급 대림미술관’으로,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서점’을 ‘본오동 땡스북스’라고 한다면 어떨까. 


대림미술관은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여는 워크숍이나 공연의 기획이 어우러진다.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 이루어지는 전시와 일회성의 이벤트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방식은 전시에 새로움을 더하며 관심을 끌어들인다.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인 구슬모아 당구장과 연계하여 창작의 과정에 지속적 예술을 지원한다. 주류 브랜드 혹은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파티 등에서 지금 우리가 관심있는 트렌드는 무엇이고 사랑하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B급 대림미술관'은 그 주제와 규모를 달리해서 이러한 운영 방식들을 활용해볼 수 있다. 


또한 ‘본오동 땡스북스’라면 비록 예술가들의 고향 홍대 앞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서를 충분히 살린 세련된 공간을 안산의 본오동에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을 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 <심플하게 산다>,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여행의 기술> 등과 같은 책을 권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커피 한잔 마실 여유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 위치한 서점들과 달리 거리상 저자와의 만남을 자주 해보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교외로의 하루짜리 나들이를 함께 진행하여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갈대습지공원이나 오이도 빨간 등대 등으로 짧은 나들이와 연계시켜 다른 수도권 지역의 사람들을 모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지역 중형 서점과 연계하여 지역 주민들과의 워크숍이나 직장인 모임 등은 활발하게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하이콘셉트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전시하는 예술가와 방문하는 관객들을 대하는 태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이벤트의 성격과 주제, 공간의 홍보와 뒷정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하므로써 내 가게의 공간의 위치와 주로 찾는 고객을 염두해서 나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가게를 열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고 그런 계기를 꽃피운 공간이 있을 것이다. 많이 알려진 공간이라면 그 공간을 벤치마킹하되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이 초심을 지속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이들 모델이 된 공간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된다. 그 공간은 그곳에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또 그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이어야만 그 대림미술관이고 땡스북스일 것이다. 다만 그들 공간에서 배울 점을 찾고 그것을 최대한 살려 새롭고 근사한 공간을 만들어 볼 포석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니 일단 본보기가 될만한 사람들의 성장 과정을 참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충북 괴산에서 ‘숲 속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백창화, 김병록 부부가 있다. 유럽의 책 공간을 탐방하며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감도는 책문화를 소개하였고 우리나라 각 지역의 작은 책방을 탐방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도시에서 살 때에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을 직접 운영했던 것과 시골마을에서 자리를 잡고 북스테이를 겸한 작은 책방을 일일이 손수 만들어 온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숲 속 작은 책방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또다른 의미를 만들어주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공간의 콘셉트는 ‘마음의 집’이라는 콘셉트의 일본 키죠 그림책 마을이 롤 모델이라고 밝히고 있다.


“멀리 한국에서, 또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키죠 그림책마을을 찾는 이유는 이곳이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기본 건축부터 인테리어 하나, 소품 하나, 공간 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일관된 철학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민 공간으로, 보기 좋고 예쁘고 그럴듯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이식해서 꾸며놓은 공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간에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귓가에 소곤소곤 사연을 전해주는 그림책 마을은 그만의 독특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p.236)




나도 처음 신촌에서‘신촌 타프’를 새롭게 운영하게 되었을 때, 신촌 타프가 가진 외형과 이름, 신촌이라는 위치를 고려해서 콘셉트를 정하였다. 바로 ‘예술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을 위한 아지트’가 콘셉트였다. 신촌이 주변에 대학이 많아 기본적으로 젊은 청년층이 많은 곳이고 이들 학교를 졸업한 직장인들도 자주 찾는 지역이라는 점, 카페의 위치가 신촌의 번화가와는 멀리 떨어져 주택가 안쪽에 있지만 신촌역과는 가깝다는 점, 구조가 1층에서 반 지하로 들어가서 낮에도 어두운 동굴과 같은 형태라는 점을 두루 고려하였다. 동굴과 같이 다소 어두운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지만은 않은, 그래서 언젠가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진 공간을 상상했다. 그래서 공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도 문이 열린 새장을 모티프로 하였고 ‘OPEN CAGE’라는 이름을 달아 오프닝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공간을 처음 보았을 때, 문래동에서 인상 깊었던 대안 문화 공간 ‘정다방’을 떠올렸다. 그래서 하이콘셉트를 ‘신촌 정다방’으로 정했다.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 역시 공간이 낮에도 어두워서 조명이 필요한 공간이라는 단순한 공통점도 있었지만,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면서 예술가, 주민들과 다양한 손님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하이콘셉트를 ‘신촌 정다방’으로 정하였어도 당연히 ‘정다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때때로 전위적인 주제의 전시가 열리며 대안 예술 공간을 표방한 그곳과 달리 나는 만화, 웹툰, 청춘들의 철학, 여행과 같이 보다 일상적인 주제를 담은 이벤트를 주로 열었고 순수 예술가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아직은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로 북적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이콘셉트는 내 작은 가게를 위한 하나의 유전자 같은 것이다.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예상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 아기가 커서 키가 클지 머리가 좋을지 쌍꺼풀이 생길지, 달리기를 잘할지, 노래를 잘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면 예쁘고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랄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으므로 정성을 다해 키워내야 한다. 어쩌면 어떻게 키우는가에 따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전자의 형질보다 더 훌륭하고 개성 있는 모습으로 키워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 나중에는 혹 누군가 우리 가게를 롤 모델로 생각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상 깊었던 공간이 있다면 그곳의 콘셉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그 콘셉트에서 그려지는 가게의 외향, 제품의 품질,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역량이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자. 그리고 그 콘셉트를 이미 잘 구현하고 있는 곳이 없는지 살펴보자. 그래도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 작은 가게를 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곳을 대명사로 한 하이콘셉트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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