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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27. 2017

작은 가게, 큰 그림을 그리자(2)

 Story: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좋은 이야기는 멋진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공간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장소가 된다. 이때 비로소 공간은 의미를 갖게 되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공간을 찾아 안부를 묻게 만든다. 공간에서의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의 서사 이론에서처럼 3막 구조 형식으로 딱 들어맞을 필요는 없다. 그곳에 어떤 괴짜 주인장이 있는지(인물),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사건),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노르웨이의 숲과 닮은 소품으로 가득한(배경) 등등의 몇 가지 요소들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요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하게 밀당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 고객이 우리 가게를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주요 고객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무엇인지, 그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우리 가게의 제품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포장되어야 하거나 어떤 것과 곁들이면 좋을지, 그것을 가지고 그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떠올려보자.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하면서 가게 이름과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가슴에 어떤 사건을 일으킬 것인가. 공간에서 어떤 시간 흐름을 만들고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사람들은 가게를 방문할 때 어느 정도 기대치를 가지고 방문한다. 일단 작은 가게 콘셉트에서 첫인상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가게의 위치, 이름, 간판, 색상, 조명, 구조, 소품과 같은 물리적인 것부터 맞이하는 사람의 뉘앙스나 태도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기까지 콘셉트는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연핑크와 화이트로 도배된 키티 카페에서는 순수하고 공주 취향의 섬세한 몸짓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빠삐용의 감옥을 콘셉트로 한 주점에서는 거칠 것 없이 내 생각을 마구 표현해보아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콘셉트는 고객이 가게를 경험하는 배경을 조성해준다. 고객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알게 모르게 익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첫인상은 공간이 가진 이야기와 잘 조화가 될 때 공간을 오래 기억하도록 한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신당동 떡볶이 집 할머니의 비밀 양념이라는 스토리는 평범한 떡볶이집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한국 최초의 등산화를 만든 가게는 그 허름하고 낡은 등산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처음 방문한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아마 그 손님들은 그 가게의 전통에 매료되어 당장 수제화를 맞추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가게 간판도 없고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는 구닥다리 가구들뿐인데도 사람들이 넘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그 동네 터줏대감이 하는 이발소이거나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손맛 좋은 청년이 있거나 훌륭한 소설가가 묵었던 여관을 고쳐 만든 카페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 가게에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에는 동화책을 읽도록 하는 두 가지 장치가 있다.


어릴 적 많이 읽었던 동화책은 대개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한다. 이 상투적인 말에는 사실 독자가 동화책을 읽어 보도록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장치가 있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올 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시간 전의 이야기이므로 다소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동화책이 그런 것은 아니며 이러한 장치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사람들이 읽고 난 후 감동이나 교훈 같은 잔상이 남아야 하고 일상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기괴하거나 신비롭거나 낯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용기, 사랑, 평화와 우정 같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좀 극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중에서 조셉 켐벨(Joseph Campbell)은 전 세계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영웅의 이야기에서 공통적 요소들을 뽑아냈다. 이른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출발-입문-귀환의 과정을 거친다는 구조를 제시한 것이다. 영웅은 선택된 존재이며 그런 운명을 받아들여 모험을 떠나고 조력자들 의도 움을 받아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영광스럽게 귀환한다는 스토리를 가진다. 신화는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며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동안 우리에게 상징으로 남겨진 교훈의 다양한 형태이다. 비록 작은 가게가 고객과 소통하는 속에 만들어 낸 소박한 이야기라도 그 나름의 철학이 오랜 기간 전해지면서 가치 있게 여겨지고 독특한 것이 될 수 있다. 고객들이 새로운 공간(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들에게는 일상을 환기시킬 만한 입문이 시작되는 것이가 여기고 다시 가게를 나가 그들의 일상으로 귀환할 때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가도록 해보자.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는 영웅의 여정을 읽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름을 빼앗긴 소녀 치히로는 온천장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찾고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는 동안 하쿠의 도움을 받아 점점 독립성을 키워나가고 용기를 내게 된다. 철부지 아이에서 친구들을 보살피고 희생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동굴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치히로는 다른 사람이 된다. 

이런 스토리를 드러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은 일본 전통의 온천장의 이미지에 각종 요괴들의 모습과 자연을 대표하는 신들을 등장시키며 기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이때 온천장은 온천장은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닦는 곳이 아니라 오염된 자연에 대한 경각심,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 전통적 가치의 관심을 풀어내는 장소를 의미한다.


신촌타프의 입구, 권지혜작가의 전시 설치 작품의 모습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볼 것인가


물론 이러한 영웅의 여정의 이야기를 작은 가게 속의 이야기로 일대 일로 치환시킬 필요까지는 없다. 단지 사람들은 어느 공간에서 주인공이 되어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게 된다면 두고두고 그곳을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고객이 스스로 주인공으로 여기기 위해서는 상품을 낯설게 배치하거나 사소하게라도 기대하지 않았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자극, 변화가 있는 것이 좋다. 그것을 통해 일상에 환기를 불어넣어줄 수만 있다면 작은 가게가 팔고 있는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들에도 가치를 느끼고 더 새롭게 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공간이 가지는 이야기의 힘인 것이다.


쿠키에 손이 절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의 유명한 서점 체인인 츠타야 서점의 경우, 관객들의 시점에서 공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성과를 거둔 사례다. 대개의 서점이 책을 주제별로 구분하여 배치한 것과 달리 츠타야 서점은 특정 책이 소구 하는 것을 중심으로 가상의 고객이 또다시 관심 있어 할 다른 책을 함께 배치하는 식으로 패키지화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바로 멀티패키지 스토어 전략이다. 예를 들면, 파스타 요리책을 고르려고 하는데 그 옆에는 이탈리아 여행 책이 놓여있고 파스타면과 소스를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으며 바로 옆에는 유명 이태리 요리학교의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는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고객은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정통 이태리 요리를 맛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집에서 만든 요리로 남자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직접 본토의 요리를 배워 볼 용기를 낼 수도 있다. 곧 서점이 아닌 다른 곳에 고객을 데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은 좀 더 오랜 시간 머물게 될 것이며 더 많은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공간 자체가 가지는 이야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평일 저녁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이나 ‘생생정보통’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박집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개 2-3대씩 내려오는 전통의 방식으로 우직하게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를 한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옆집 아저씨가 주었던 호빵이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을 잊지 못해 직접 만들었고 은혜를 갚기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직접 농사지은 밀과 팥, 매실, 들깨를 넣어 수고롭게 만든 반죽과 팥소를 가지고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만드는 도넛 이야기, 오랜기간 목욕탕으로 운영되어온 공간의 모습을 살려둔 안경가게 등 작은 가게의 주인과 직원 혹은 공간 자체와 관련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신촌에서 지금은 자리를 옮긴 위즈돔의 한상엽 대표와 만난 적이 있다. 비로소라는 회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신촌에서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다가 내가 공대를 나온 사실을 듣고 재미있어했다. 문화 예술과 관련한 일을 하는 내가 공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신선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인문/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아킬레스건과 같았다. 그래서 그 부분을 많이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이성 학생들에 둘러싸여 학창 시절을 보냈고 논리와 수리가 중요한 부분인 공부를 한 덕에 기존 문화 예술 전공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의 문화기획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물의 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을 사람과 문화에 돌려 이롭게 만드는 문화기획자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내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문화기획자가 된 공대여자'가 되어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나의, 우리 공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호모나렌스(Homonarrans)는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SNS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 SNS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그동안 어디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를 좋아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그 경험은 재구성되고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대리 충족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우리 가게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적어도 두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보도록 하자. 하나, 앞으로 이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 인가. 둘, 다녀간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갈 것 인가.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먼저 공간(속 주인과 구성원)이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생각해보자.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자. 동화가 되고 신화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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