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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22. 2021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며

아이의 손톱이 자라는만큼 세상이 커진다.

손톱은 중요하다. 손끝을 보호하고 힘을 줄 수 있도록 하며, 작은 물건을 집거나 긁는 것처럼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때로는 적당한 길이나 모양으로 다듬거나 색을 칠해서 손이 예뻐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는 한다.

내 손톱은 손 크기에 비해 작고 뭉퉁한 편이다. 게다가 긴장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나쁜 버릇도 있어서 손톱을 길러서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하는 것이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다. 반대로 남편의 손톱은 꽤 큰 편이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왕눈이개구리 손가락처럼 큼지막한 손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농담삼아 내 엄지손톱이 남편의 새끼손가락 손톱만하다고 할 정도다.


이른아침에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다가 문득 아이는 누구의 손톱을 닮았는가를 생각했다. 엄마를 닮았다면 손재주는 좀 있을 것 같지만 손톱은 자라다 말 것 같고, 아빠를 닮았다면 손재주는 조금 양보하고 그래도 시원스러운 손톱을 가지게 되겠지하고. 갓난 아기 시절에는 손톱이 손톱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랑말랑한 손톱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단단해진 것이 손톱의 기능을 곧잘 하는 것도 같다. 엄마 꼬집을때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집어 올릴 때나.


그 갓난 아기 시절 손톱을 어떻게 잘라야 할 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가위로 자르다가 살점을 살짝 건드려서 피가 난 적이 있다. 아이는 멀뚱멀뚱할 뿐이었는데 나만 까무라치게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연고를 발라주고 가슴 두근거리던게 바로 엊그제 같다. 이제는 자기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손톱깎이로 툭툭 깎아도 될 정도가 되었는데 아침에도 살짝 살이 집혔나보다. 아이는 '집중좀 해주세요'라며 시선은 여전히 텔레비전을 향하며 선생님 말투를 따라 주의를 줬다.


손가락이 길고 손톱이 큰편인걸 보니 아무래도 아빠 손을 닮을 모양인데, 손까시라고 하나 손톱 위쪽으로 살점들이 부스스 일어난 것은 나를 닮았다. 영양상태가 불균형하거나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아닐텐데도 괜히 신경이 쓰이길래 손톱깎이로 살짝 끝부분을 다듬어주었다.


아이를 꼭 껴안거나 마주 앉아서 아이의 손을 잡고 열개의 손가락끝을 온정신을 집중해서 손톱을 자를 때만큼 아이의 성장을 실감할 때가 있을까 싶다. 지난 여름, 어린이집에서 봉숭아물을 들여왔을 때는 엄마인 내가 생애 최초 봉숭아물들여주는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아서 묘한 실망감을 느꼈고 최근 겨울에는 스티커를 매니큐어처럼 손톱에 붙이고 예쁘다고 자랑하는 것을 지켜 본 후로는 그런 생각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일주일 한두번씩 5분씩 부동의 자세로 단 1cm거리에서 마주하는 날들이 생각보다 오래 남지 않지는 않았다.


아이는 점차 커가고 어쩌면 내 손보다 더 자라서 나중에는 내 손톱을 아이가 잘라줄 날이 올것이다. 점점 길고 넓고 단단해지는 아이의 손톱을 확인하는 것이 마치 아이가 점차 커 나가는 세상의 크기를 마주하는 것인냥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침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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