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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Sep 14. 2022

멋쟁이 토마토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 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 찍

나는야 춤을 출 거야 헤이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주스가 될 것이라고, 케첩이 될 것이라고. 어릴 적부터 토OO씨는 '멋쟁이 토마토'를 즐겨 불렀다. 자기 몸이 갈려 나갈 그런 미래를 말하는데도, 노래로 부르니 왠지 모르게 신이 났고 설레기까지 했다.


영화처럼 산다는 말이 있듯, 토OO씨의 친구 중 몇몇은 이미 노래처럼 살고 있다. 어떤 친구는 델몬트라는 주스 회사에 들어갔고, 어떤 친구는 하인즈라는 케첩 회사에 들어갔다. 하인즈에 간 친구는 꽤나 일찍 취직을 한 편인데, 최근에는 새끼 토마토를 벌써 둘씩이나 낳아 잘 키우고 있다고 하였다. 조금 늦긴 하였지만, 토OO씨 역시 언젠가 노래처럼 살 것이란 기대를 품으며 살아왔다.


토OO씨는 토마토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토마토 주스 알러지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만있으면 줄기를 통해 들어오는 수돗물이 그에게는 유일무이한 음료수일 뿐이다. 게다가 토OO씨는 수돗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다. 맥도날드 프렌치프라이나 토마토 파스타 따위의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다. 그러니 케첩도 그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음식이다.


본인은 필요로 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된다는 노랫말이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토OO씨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양이 사료는 고양이가 아닌 인간이 만든다. 마약을 만들거나 팔거나 하는 사람 중, 막상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마약 김밥이 되겠다는 옆 동네 멸OO이나 단OO 같은 녀석들에 비하면, 주스나 케첩이 되겠다 하는 그런 노랫말은 아주 건전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스나 케첩은 세상에 이롭기까지 하겠다. 고양이 사료가 고양이를 기쁘게 하고 고양이 집사마저 기쁘게 하듯 말이다.


토OO씨 딴에도 의심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스가 되는 것만이, 아니면 케첩이 되는 것만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유일한 길일까? 과연 그럴까? 태어난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도 세상을 위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사지가 썩어 없어지는 그날까지 쭈욱…. 결국 자신의 살은 흙으로 돌아가 영양분이 될 것이다. 굳이 썩어 없어지는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방법은 있다. 갉아 먹히든, 베어 먹히든, 아니면 우걱우걱 씹혀 먹히든, 애벌레, 쥐, 산짐승, 심지어 동네 새끼 인간에게도 자신의 살을 내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야 벌레 먹힐 거야', '나는야 서리(犀利)될 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야 맷돼지의 똥이 될 거야' 하는 2절이나 3절은 없었나 하며 토OO씨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본다. 역시나, 그런 노랫말은 기억에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한 의심이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세상을 이롭게 하려면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몸이 갈려 나가야 할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내일이 기대된다. 어린이집 선생님, 그 천사 같던 선생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바로 멋쟁이 토마토라고.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이 세상은 거짓말' 뭐 이 따위 노랫말을 들을 땐 "뭐 그런 노래를 듣고 앉았냐" 하고 핀잔을 놓던 어른들도, 주스나 케첩이 되겠다 하는 노랫말을 들을 땐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 토OO씨는 어른들의 미소를 무언의 응원 정도로 이해하며 살았다.


케첩 회사나 주스 회사에 들어가려면 미리부터 준비해야 하겠다.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토OO씨는 생각했다. '일단 건강부터 신경쓰자.' 사실 토OO씨는 몇 달 전부터 집 근처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이참에 PT 이용권도 끊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사실, 헬스장에 들어설 때마다 보이던 입간판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입간판에는 울퉁불퉁 몸매를 자랑하는 토마토 사진이 있었고, 그 옆에 'OO대학교 출신 PT 강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영어 공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미국 토마토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하는 신세한탄은 쓸모가 없다. 하인츠 같은 외국계 기업에 들어갈 것도 아니기에, 유창한 수준으로 영어 실력을 늘릴 필요도 없다. 토OO씨의 친구는, 회사에서 인정해 주는 시험만 잘 치면 된다고 하였다. 설사, 회사가 유창한 실력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런 걸 측정한다 하는 시험만 잘 치면 된다고도 하였다.  


어쩌다 오또기라는 케첩 회사에 면접 볼 일이 생겼다. 영어 점수와, 케첩이 되는 일은 단연코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위대한 일이라 하는 자소서로 서류 심사를 운좋게 통과한 것이다. 면접 날 아침, 토OO씨는 전에 미리 사 놓은 샴푸를 꺼낸다. 새콤달콤한 향기가 좋아 조금씩 아껴 쓰던 그런 샴푸다. 가능한 한 많은 면접관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는 일부러 집을 나서기 직전에 샤워를 한다. 신뢰감을 준다 하는 빨간 넥타이도 꺼내 맨다.


면접장에 들어선다.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반대편에는 실무진이랍시고 토마토가 둘 앉아 있다. 그 반대편에는 토OO씨, 그리고 다른 토마토 둘, 이렇게 셋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실무진 토마토 하나가 입을 연다. 저쪽부터 자기소개를 해 보라 하였다. 한 토마토는 이미 자기 살을 조금 떼어 케첩을 만들어 보았다고,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이미 케첩이 되어 봤으면 무엇 하러 이 회사에 들어 오려 하는지 토OO씨는 궁금했지만, 실무진 토마토 둘은 그런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때 겪은 어려움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하는 것들만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경을 헤쳐 나갈 정도였다면, 역시 쟤는 왜 여기에 들어오려 할까 하는 궁금증이 커진 탓에, 토OO씨는 좀처럼 면접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다음 토마토의 차례다. 케첩 학과가 아니었지만, 케첩 학과를 복수 전공하였다고 하였다. 대외 활동으로는 토론 동아리에서 몇 년간 활동하였고 토론 대회에 나가 우승한 적도 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고 하였다. 한편,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얻어내는 데 능하다고도 하였다.


토OO씨는 어디선가 새콤달콤한 향기가 난다는 걸 느낀다. 혹시나 자기에게 나는 건가 싶어 남몰래 팔을 들어 킁킁거려 본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토OO씨의 몸에서는 시큼한 냄새만 풍겼다. 그의 오른편에 앉은 둘에게서 나는 향기였다. 손깍지를 무릎에 얹은 채 몸은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바로 그들 말이다. 그 꼿꼿한 몸은 마침 울퉁불퉁해 보였다. 한편 얼굴엔 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것도 빨간 빛 말이다.


토OO씨의 차례다. 사실 그에겐, 영어 점수와 조금의 언변 말고는 이렇다 할 어필거리가 없었다. 그 흔하다는 케첩 회사 인턴이나, 파스타 동아리 활동 같은 것도 그는 하지 않았다. 케첩은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소스라고, 나는 그걸 잘 안다고, 그러니 이 한 몸 갈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바치겠다고 하는, 이미 자소서에 써 놓은 후라이만 줄줄이 늘어 놓는다. 화가 난 건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건지, 토마토 실무진 하나가 말했다. "왜 케첩이 소중한 소스인 거죠? 그리고, 몸을 갈아 바치겠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갈아 바치실 계획이죠?" 토OO씨의 목소리는 자꾸만 기어 들어간다. 하나 마나 한 말을 답이랍시고 답한다. 실무진 토마토가 다시 말한다. "그런 건 아마추어나 하는 생각이지 않을까요?"


면접이 끝났다. 토OO씨는 석연치 않다. 이번에도 글렀구나 하며 건물을 나선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던가?' 기억 속 토OO씨는 춤을 추고 있고 노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주스가 되겠다고 케첩이 되겠다고 하는 노래였지만, 사실 노래하고 춤 추는 일이 그에겐 제일 신나는 일이었다. <원피스> 오프닝송 '우리의 꿈'이, 내가 해적왕이 되겠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 듯이 말이다. 그저 가슴 벅차게 하는 그 노래가 좋아서 부를 뿐이지 않겠는가.


"노래? 춤? 좋다 이거야! 근데 취미로만 해." 토OO씨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학교 선생이나 친구들 역시 그렇게 말했다. 간혹 이렇게 덧붙이는 녀석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그 길로 정해서 제대로 가 보든가. 댄서가 될 수도 있잖아? 스걸파, 스우파 이런 거처럼 말이야." 정말 댄서에라도 도전해 볼까 하는 고민을 한다. 하다못해 유튜버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내 삶도 댄서가 되기 위한 삶인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면접장에서 본 그 토마토들처럼 말이다. 구글링을 하여 댄서 연봉은 얼마인지 찾아 본다.


토OO씨는 길을 걷다 멈춰 선다. 어디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듯해서다. 땀에 절어 올라오는 자기 냄새인가 싶다. 얼른 팔을 들어 킁킁 해 본다. '아닌데….' 주위를 둘러보다 족발집 간판을 발견한다. 간판에는 두 발로 선 돼지가 족발이 가득한 접시를 들고 서 있다. 족발이 가득한 것처럼, 돼지의 얼굴엔 돈심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군다. 댄스 유튜버 수입은 꽤나 짭짤하다는 글을 본다. 왠지 모르게 토OO씨는 얼굴에서 기분 좋은 가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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