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기미’
"카톡!" 연구실 단톡방에서 알람이 울립니다. "연희야, 교수님 방 청소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 망설입니다. 이게 맞나 싶었거든요. 교수님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거 말이에요.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답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괜히 피곤해지네요.
그때 난 대학원에서 조교 일을 하고 있었죠. 조교도 여러 조교가 있어요. 조교란 보통 교수의 강의나 연구를 보조하는 학생을 두고 하는 말인데요. 내가 하던 건 이제껏 '방돌이'라 불렸던 그런 조교였답니다. 방돌이에겐 교수 방 청소라는 일이 부여된다고 하더군요. 직무기술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방 청소는 직무기술서상 '기타 업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어떤 선배가 말합니다. 문리 해석(文理解釋)인지 논리 해석(論理解釋)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런 일에 법 해석 방법론까지 가져다 쓰는군요. 그렇게 하면 위로가 되나 봅니다. 본인만 위로하면 될 텐데 왜 나까지 위로하려 드는 걸까요? 괜히 피곤한 게 아니었네요.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아." 알기 어렵습니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건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지 말이죠. 선배라는 그 사람은 그렇게 방 청소를 지시합니다. 방 주인도 아닌데 그렇게 합니다. 누구더러 그렇게 내 방도 청소하라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게 어쩌면 후배에 대한 선배님들의 존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방돌이 조교에 대한 존중 말이죠. 이런 게 또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이겠거니 해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답을 남긴 거였어요. 그런 말이 생각나네요.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는, 뭐 그런 말.
교수를 만나러 갈 일이 생겼습니다. "교수님, 방 청소 한 번 하려는데, 버려도 되는 거랑 아닌 거 말씀해 주세요." 교수가 묻습니다. "청소? 무슨 청소?" 누가 나더러 청소하라 합디다! 이 말은 꾸욱 삼킵니다. "방이 어지러운 것 같아서요, 허허." "아, 그러면 나중에 나랑 같이 하자." 우리 교수님께서 이렇게 나이스하게 말씀해 주실 때면, 마음이 동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수는 뿔 달린 악마가 아닌데도 말이죠.
방을 나서며 단톡방에 말합니다. 교수에게 청소하겠다 말했다, 교수랑 다음주에 둘이서 청소하기로 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읽은 사람은 많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한동안 없습니다. 몇 분이 지나 한 선배가 말합니다. 청소를 '시키라고 시킨' 선배입니다. 청소를 '시키는 사람'과 청소를 '시키라고 시키는" 사람이 다를 때도 있답니다. "그러면, 그전에 청소 한 번 해야겠네. 연희 혼자 하긴 힘드니까 우리 같이 하도록 하자." '청소를 위한 청소'라는 말도 있었군요. '회의를 위한 회의'란 말은 들어본 거 같은데….
'기미상궁.' 왕에게 올릴 음식에 혹시 독이라도 들었을까 싶어 미리 기미(氣味 : 냄새와 맛을 아울러 이르는 말)를 보는 궁중여관, 그러니까 궁녀를 두고 하는 말이래요. 왕이 곧 천하이던 시대에 왕의 식사는 유사가 아닌 무사이어야 했을 테니, 기미를 보는 궁녀의 일, 즉 '식사를 위한 식사' 역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네거티브를 위한 네거티브'란 말도 존중의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네거티브하기 전에 미리 네거티브를 함으로써 상대에게 줄 충격을 완화한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우리 교수님이 청소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그 선배는 청소를 위한 청소를 제안합니다. 다른 선배들도 그 제안에 동의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그 선배는 연구실 '넘버투'였으니까요. '넘버원'이라는 사람도 보아하니, 입을 다물었으면 다물었지 조교에게 교수 방 청소가 웬 말이냐 하며 하지 말라 할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를 위한 청소를 거행하기 며칠 전, "시간 되는 분들은 오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는 카톡을 남깁니다. 선배 하나가 먼저 왔네요. 아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겐 친구 같은 선배입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건 버리라는 둥 저런 건 어디에 모아 두라는 둥 하는 식으로 분주히 청소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청소를 시킨 사람과, 청소를 시키라고 시킨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교수와 청소하기로 한 날입니다. 교수님은 어디론가 떠나려 하시네요. 감히 붙잡습니다. "교수님, 어디 가세요? 오늘 청소하기로 한 날인데요?" 교수가 묻습니다. "청소?"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마. 네가 청소를 왜 하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간다. 나중에 보자." 잊으셨나 봅니다. "아, 네. 그렇게 알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활짝 미소로 얼굴을 분칠하고는, 떠나는 교수의 뒤통수에다 꾸벅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 개운한 일도 아닌데 나는 왜 분칠하고 앉았을까요? 단톡방에 전합니다. "교수님이 하지 말라시네요옹."
교수님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물을 따르려고 물병과 컵을 잡습니다. 그것들이 내겐 꽤나 멀리 있는데도 말이죠. 물병을 낚아채는 데 실패한 녀석은 수저통으로 손을 뻗습니다. 수저통마저 빼앗긴 다른 녀석은 제법 자연스러운 코너링으로 그 옆 냅킨에 손을 뻗습니다. 사람을 누이려 이불을 깔듯, 수저를 누이려 냅킨을 깝니다. 우리 교수님 옥수에 닿을 수저가 혹시 차진 않을까 싶어 그러나 봅니다. 손들이 분주히 비행합니다. 그 와중에 어떤 녀석은 젓가락 짝이라도 맞추고 있네요. 아 참! 우리 교수님의 두 손은 그 자리에 잘 있답니다. 물을 따라라, 수저를 놓아라, 뭐 이런 걸 시킨 적도 없고요.
얼마간의 정적을 깨고, 청소를 시킨 선배, 그러니까 "청소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 그 선배가 답합니다. "그래도 해야 해, 연희야." "네." 아…. 그날 밤 열두 시, 운동을 마치고 교수의 방으로 향합니다. 청소를 끝내고 나오니 새벽 세 시가 다 되었네요.
옛날 옛적에 역대급 방돌이가 하나 있었답니다. 우리 교수님 방에 들러, 쓸고 닦고 정리하고를 매일같이 반복했다고 하네요. 물어 본 사람? '넘버투'라는 선배에게 선배 되는 그런 사람이 이런 신화를 내게 들려줍니다. 나를 걱정한답시고 나를 옳게 가르친답시고 들려줍니다. 벅차오릅니다.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해야겠어요. 두 손으로 술병을 들어 선배님의 빈 잔을 채웁니다. "쓸데없는 짓 한다. 나한텐 이런 거 하지마."
대체 누가 우리 교수님 방에 독을 타려 한 것일까요? 그 독은 무엇이었을까요? 궁금합니다. 선배님들은 많지만, 이걸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미'상궁 노릇만 하기도 바쁘거든요. 기미를 보라고 기미(羈縻: 굴레와 고삐. 속박하거나 견제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씌우는 그런 기미상궁 말입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우리 교수님께서 나한테 전화를 다 주셨네요. "연희야, 혹시 OOO 자료 네가 버렸어?" 왜 그걸 버렸냐는 꾸중에 앵무새라도 된 것마냥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내가 버린 게 그건지 아닌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 쓰레기장이라는 델 가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데 카톡 알람이 울립니다. "연희야, 오늘 약속 잊지 않았지?" "미안." 잊진 않았지만 다음에 만나잔 말로 친구에게 답을 남깁니다.
아! 오해는 말아 주세요. 교수님 자료를 죄다 버리려던 건 아니랍니다. 저도 졸업은 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