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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Oct 08. 2022

기부천사

누군가의 기부 소식에 대고 하는 말

맥북 겉면에다, 그러니까 스타벅스 입장권이라   있는 맥북 겉면에다 스티커를 하나 붙인다. 사과 문양을 덮지 않게.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받은 스티커다. 그렇게 허영심 조금을 채운다.


"그기에 진짜 기부하세요?"


아니, 기부하니까 이런 걸 붙이고 다니지, 아니면 내가 왜 붙이고 다니겠나 하는 말을 참으며 답한다.


"네, 왜요?"


"아, 그냥 붙이고 다니는 줄 알았지. 기부천사였네."


이 사람은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걸까? 어쩌면 그의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 안 감을 때마다 모자를 쓰는 사람이라면, 모자 쓴 다른 사람더러 '오늘 안 씻었냐?' 하고 묻듯이 말이다. 그러다가도 괜히 반성하게 된다. '아, 내가 그럴 것처럼 살았나 보군.'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하면 주는 게 많다.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연차보고서를 보내고, 때가 되면 매거진을 보낸다.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말이다.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따로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로고가 있는 스티커가 그것이다. 맥북 겉면에 붙인 건, 그중 가장 큰 스티커라 할 수 있다. 흰색 배경에 빨간 포인트가 마치 흰 색 수프림 티셔츠를 연상케 한달까.


나는 언제부터 기부를 하였을까? 아마 영어 센세 알바를 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중고등학생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이미 세상 다 산 친구들처럼 지쳐 보였다. 그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워, 초등학생 전문 영어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비는 시간 없이 옮겼기에 기부도 계속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조금만 웃겨주면 금방 배우려 했다. 사춘기가 빨리 온 학생들에게는 무서워 말도 못 붙였지만. 학생이 좋으니 이제는 원장이 문제였다. 그는 여덟 아홉 살짜리 꼬맹이들을 이겨 먹겠다고 용을 썼다. 그러다가도 학부모 앞에서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세상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학원비는 부모의 지갑에서 나오니까. 신물을 느꼈달까. 내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끝은 좋지 않았고 그렇게 나의 기부도 끝이 났다.


머지않아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에 입학하니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알바 자리를 소개받기도 했다. 두 번째 학기에는 교수 연구실에 들어갔고, 그래서 매달 60만 원 정도를 벌게 되었다. 돈이 생기니 기부를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월급의 조금은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몇 잔 안 마시면 아낄 수 있는 돈 정도만을 기부했다. 누구 줘버려도 아쉽지 않을 딱 그런 정도 말이다.


지금은 정기 기부에만 참여하고 있지만, 한 번으로 끝나는 기부에 참여한 적도 있다. 전화인가 문자인가 아무튼 그 자리에서 연락 한 번으로 돈을 내는 기부 같은 것 말이다.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유진이를 도와주세요' 하는 그런 광고에 마음이 동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루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유진이는 지금 치료 잘 받고 있다고, 고맙다고 했다. 뿌듯했다.


유튜브 광고에 마음이 동하여 기부를 신청한 적도 있다. 돈이 없어 휴지를 생리대 삼아 쓰는 여학생이 한국에 그렇게도 많다니. 대가리 깨진 듯 링크를 클릭했다. 회원 가입도 하고 카드 정보도 넣었다. 두 번째 기부처가 생긴 순간이다. 지금까지도 여기에 매달 돈을 내고 있다. 나란 놈은 참 대견하다. 어떻게 이런 말을 본인이 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아무도 해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있겠는가.


운이 좋았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들어갔다. 연구실에서 받던 돈이나, 영어 센세 알바를 하며 받은 돈에 비하면 훨씬 큰 돈이 달마다 나를 찾아 왔다. '어서와요. 곧 떠나겠지만….' 버는 돈이 늘었으니 기부액도 늘려 보겠다 생각했다.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안 사 마시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서너… 대여섯… 일고여덟 잔… 뭐 이 정도? '회사에 커피 머신 좋은 거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때쯤 잠깐 현기증이 온 것도 같다.


세이브더칠드런엔 홧김에 기부한 걸로 기억한다. 연말 사업 평가 자리에 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온 어느 날이다. 어지러운 마음 추스리는 데는 류튜브 만한 게 없다. 광고가 나왔고, 나는 '오호통재라' 하며 링크를 클릭했다. '시발비용' 아닌 '시발기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어쩔 수 없었다. 평가회에서 어떤 평가위원은, 하나도 잘 되지 않은 사업을 두고 매우 잘 된 사업이라 평가했다. 다른 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업을 이끌던 팀장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류튜브 광고에서는, '자녀 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랍시고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가정 폭력이 그렇게도 많다고 하였다.


나는 왜 기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까?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왜 도와야 한다 생각했는지는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헌신적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재능기부할 곳을 찾으려 했겠지만, 알다시피 내겐 재능이라 할 만한 게 없다. 재능이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어디 사무 보조, 어디 무료 급식소 설거지 등등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주말엔 쉬어야지 하며 거르고, 어떻게 평일 점심 시간에 매일 그기서 일을 할 수 있겠나 하며 거른다. 집 밖은 위험하니까 하면서도 거른다.


"세금 덜 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주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돈을 아끼려고 돈을 쓴다니. 기부를 하지 않았을 때 내야 하는 세금은 얼마인지, 기부를 했을 때 내야 하는 세금은 얼마인지, 이런 것들을 따지는 데 소질은 없다. 나는 문과니까. 헌옷을 기부했다는 말에도 누군가 비슷하게 물어본 것 같다. 역시 의문스럽다. 절약되는 세금과 헌옷을 기부하려 쓴 나의 택배비 중 어느 게 큰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기부한 돈이 온전히 그 어린이에게 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세이브더칠드런 직원들 월급으로 가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 광고를 봤다면, 그만큼 많은 돈이 광고료로 나갈 테지요. 그게 싫어서 저는 못하겠더라고요."


'기부천사' 드립을 날리던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이는, 나의 기부가 세이브더칠드런 직원들 돈까스 사 먹는 데, 넷플릭스 구독하는 데, 헬스장 등록하고 바디프로필 찍는 데 쓰인다고 한다. 내 돈이 막상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에게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두 번 듣는 말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기 어렵다.


며칠 전 아이폰13을 샀다고 자랑하던 그가 그렇게 말한다. 아이폰 사려고 내는 돈은 아이폰을 연구개발하고 직접 조립하는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꼭 그들에게만 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폰을 광고하고, 아이폰을 배송하는 사람에게도 가니까. 애플 투자자들에게도 간다. 그에게는 기부와 아이폰 구매가 다른 일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꾹 참는다.


아이폰으로는 전화를 할 수 있고, 길을 걷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있다. 고성능 카메라도 탑재되어 있어 그걸로 <일장춘몽> 같은 영화도 찍을 수 있다. 물론, 다음 핸드폰을 사기까지 그럴 일이 단 한 번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이폰 살 때 내는 돈은 아이폰 이용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폰 구매는 기부랑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는, 그리고 고성능 카메라도 있는 스마트폰은 널렸지만 그래도 그는 아이폰13을 샀다.


"그래도 아이폰이 주는 감성이 있는 거죠."


감성 운운하는 그의 말에 기억이 난다. 왜 기부하려 하였는지 말이다. 달마다 돈 조금을 내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남을 돕고 있다는 기분이 그것이다. 또, 그런 기분을 느끼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기부였던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백만 원 정도만 내면, 아이폰이 주는 감성을 살 수 있듯이 말이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누군가처럼, 나 역시 기부하는 내 모습을 사랑한다. 천사가 되긴 글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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