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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Dec 18. 2020

좋은 하루 되세요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거나, 시험장에 들어서거나, 발표를 위해 곰돌이 같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될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한 달만, 한 주만,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내게 더 주어졌더라면. 결과에 따라 내 작고 부드러운(microsoft) 자의식이 높아질 수도 있다. 어쩌면 용문에 올라 맑고 고운 것만 보는 용이 될 수도, 세월도 어찌할 수 없는 상처를 이마에 새긴 채 오늘도 내일도 거센 물살을 헤어나가야 하는 잉어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재수, 삼수가 싫어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청년에게, 그 썩은 속은 알아주지도 않고, 명문대학의 학사 학위는 돈을 주고라도 살 수 없다 하는 사람을 더러 보게 된다. ‘군대엘 5년 다녀와도 좋으니 고교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시간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친절한 금자씨’, ‘옥자’ 같은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때 한국에서는 옥자, 말자, 금자, 우탱클랜 르자, 줄자 등의 이름이 흔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미쯔코, 하루코, 준코 등으로 작명하는 일본의 문화에서 온 것이라 한다. 대개 그러한 이름에는 무엇인가 되라거나 어떤 사람이 되라는 조상의 바람이 담겨 있다. 옥자는 옥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일 테고, 금자는 금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일 테다. 물론, 이젠 그만 좀 낳자는 우리 부모님 등골의 외침이 담긴 이름, 말자는 예외이겠지만 말이다.


어떤 이에게 하루가 되라는 말은, 그것도 좋은 하루가 되라는 말은 금은보화를 주고서라도 살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되라는 덕담이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하루로 끝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할 정도로 소중하기에 나쁜 하루가 되라는 말마저 덕담이 될 것이다. 하루가 되라는 말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부모의 따스한 염원이 숨어 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그 무엇이 되라는 바람은 찰나, 모먼트, 초, 시, 일, 달, 연 등을 써서 ‘좋은 시 되세요,’ ‘좋은 년 되세요’ 따위의 바리에이션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이러한 이름을 놔두고 굳이 금자로, 아니면 옥자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까? 국왕더러 만세라는 말을 두고 굳이 천세라고 외치는 우리네 동이족 조상처럼 말이다. 하긴 백세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한줌도 안 되는 나 같은 녀석에게는 누군가 씹세라 하더라도 할 말이 없겠다.


오늘도, 내게 싸늘하기만 했던 직장 동료가 이메일 말미에 ‘좋은 하루 되세요’라 하였다. 그는 나의 무능에 짜증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메일 끝에는 좋은 하루가 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무능한 내 자신을 마주하다 보니 그리고 짜증까지 낼 일이었나 하고 남탓을 하다 보니 잠깐 심술이 나기도 하였지만, 좋은 하루 되라는 말에 위로를 얻었다. 엄빠처럼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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