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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Jun 10. 2017

내 사랑, 안달루시아! (2)

La bonne heure

헉!!!!!!!!!!!!!
이거 뭐냐구~~~~~~~



 "이거 뭐냐~구~" 는 요즘 미니가 밀고 있는 한국어입니다

남편도 나도 순간 깜짝 놀랐다.


그것은 보통 크로아상이 아니었다. 크로아상이었다.

심지어 모양도 일반 크로아상 두 개를 데칼코마니처럼 더한 듯한 모양.


본래 우리가 가려 했던 브런치 레스토랑은 호텔에서 꽤나 먼 거리였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도 뺨을 스치고 따사로운 햇살도 간질간질, 기분이 좋으니 좀 걷는게 무슨 대수인가? 오늘도 지도 없이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찾아갔건만 웬일인지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다. 인터넷에 분명 9시에 오픈한다고 쓰여 있었고 지금 보니 식당 문 앞에도 떡 하니 적혀 있는데? 안쪽에서는 청소를 하는 건지 쿵쾅쿵쾅 둔탁한 잡음이며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으니 언제 영업을 시작하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는 길에 본 현지인들이 꽉 들어차 있는 목이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 크로아상과 커피를 주문하고 매우 허기가 진 상태였으므로 나눠먹을 토스트도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와중에 이 한 접시의 대왕크로아상이 나온 거다.

"미니, 이거 왜 이렇게 큰 거야? 원래 반으로 나눠서 서빙하는걸 통으로 준 건가?"


한참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직원들도 너무 바빠 보이고 일단 나눠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반으로 자르려는 순간!

종업원이 왕크로아상 한 개를 더 가져다주었다.

그렇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크로아상이었던 거다.

그럼 진작에 좀 같이 가져다주지 정말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크로아상은 좀 뻑뻑했지만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왕크로아상을 절반 정도 열심히 우걱거리고나니 으깬 토마토가 발라진 바게뜨 토스트가 나왔는데 이것은 거짓말 살짝 보태서 팔뚝만한 크기.

그걸 보고 또 한 번 놀라고 있는 우리에게 종업원이 물었다.


"이거 어떻게 먹는지 알아? 원하면 내가 보여줄게"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보여주시오."


사실 먹는 법은 위와 같이 간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올리브 오일을 거침없이 뿌린 토스트를 포크로 사정없이 콕콕콕 찍어서 빵이 그 구멍들을 통해 오일을 쫘악 흡수하도록 해 주는 것.

짝짝짝!

처음엔 차가운 인상이었던 이 남자는 아주 기쁘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현란하게 오일과 소금과 후추를 찹찹찹찹. 리액션 좋은 우리 부부는 박수가 절로 짝짝짝.

날씨도 좋고 커피도 사람도 다 좋은 모든 게 완벽한 아침이었다.


각도상 그리 안보이지만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컸어요.


그렇게 바캉스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말랑말랑 야들야들했건만, 아침 잘 먹고 한적한 거리 곳곳을 활보하던 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것도 둘이 동시에 같은 문제가 발발.



배탈이었다.

꾸룩꾸룩 꿀렁꿀렁 뱃속에 전쟁이 났다.

아마도 어젯밤에 포장전문점에서 사다 먹은 이탈리안 음식 때문인 거 같았다.


화장실 전쟁

이 상황에 별 수 있나...

호텔로 돌아가야지.


전쟁 후 화해: 대인배들

다행히 둘 다 심각한 것은 아니어서 배를 좀 진정시키고 다시 외출. 나보다는 위장 약한 미니가 좀 더 안 좋은 상황이었는데 만약을 위해 점심은 생략하기로 했다. 어쩌다 한 끼 거르면 손이 떨린다느니 눈이 침침하다느니 앓는 소리 하는 남자가 점심까지 생략하며 외출을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 도착!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이 입구

바로 여기!

그라나다에 온 가장 큰 이유, 말로만 듣던 알람브라 궁전에 가기 위해서였다. 알람브라는 훼손을 막기 위해 매일 정해진 수의 관광객만을 수용함으로 미리 예약해 둔 날짜에 꼭 가야만 했다.


알람브라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었지만 급경사진 오르막 길을 꽤 오래 걸어야 하고, 이 날은 햇빛도 너무 뜨거워서 버스를 탔다. 매년 3백만 명이 찾는 명소라는게 관광객으로 꽉 찬 버스를 보니 실감이 난다. 화장을 곱게 하고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버스기사님은 온화한 미소와 달리 운전 스타일이 어찌나 터프하신지 돌 길을 질주하는 버스에서 서 있는 일이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입구로 들어가기 전 왼 편을 보니 음성지원 가이드를 대여해 주는 데스크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미술관을 가면 모든 설명이 불어로 적혀 있어서 모르는 작품들을 보다 보면 답답하거나 지루한 적이 많았는데 우와! 여긴 한국어도 지원이 된다 해서 망설임 없이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본 천장도 주변도 온통 초록초록.



알람브라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한(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최후의 이슬람 왕조였던 나스르 왕조가 그라나다 고원지대에 건축한 궁전이다.


이 알람브라 궁전의 내부는 크게 네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중 첫 번째로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채인 알카사바에 갔다.

알카사바 입구로 향하는 길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알카사바는 붉은 돌로 지어진 성곽의 형태인데, 내부에는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는 병사들의 숙소, 무기고, 대장간, 목욕탕 등의 군용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고 외부에는 보초를 서며 걸을 수 있는 이중 외벽과 그라나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탑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남편, 나는 벌써 지치고 힘들다."

이 날 날씨가 약 37도 정도로 너무 뜨거웠는데 알카사바의 가장 안쪽 벨라 탑까지 오르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그래도 탑에 오르니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옛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였다던 알바이신 지구의 흰 벽과 붉은 지붕들은 물론이고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까지도 볼 수가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더이상 못견디겠다 싶을 때즈음 벨라 탑을 내려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카를 5세 궁전.

오른쪽에 지어진 큰 건물이 카를 5세 궁전인데 사진을 찍을만큼 감동적이지가 않아서 정면사진조차 없다. 이 궁전은 16세기 스페인의 카를 5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한 건축물인데 단독으로는 훌륭한 건축물일지 몰라도 이슬람 양식으로 가득한 알람브라 궁전내에서는 굉장히 이질감을 줬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다면, 딱 떨어지는 사각형의 모습을 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이처럼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


아하! 드디어 줄을 설 시간이 되었다.

세 번째로 방문할 곳은 나스르 궁전. 인터넷으로 알람브라 표를 예매할 때 이 나스르 궁만큼은 입장 시간을 선택해야 했는데 매 30분마다 일정수의 방문객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땡 볕 아래서 웃음을 잃고 입장 대기를 하던 사람들.

뭐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가 오후 세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정말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햇볕이 강한 시간대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했다.

시간이 되서 티켓을 검사하고 차례대로 입장.

여기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나스르 궁의 아라야네스 정원.

나는 몰랐지만 매우 유명하다는 12마리의 물 뿜는 사자 조각이 있는 사자의 정원.

나스르 궁의 모든 부분이 매우 정교하고 섬세해서 유난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었는데, 지금 사진첩을 보니 성격 급하고 감각 없는 나는 엉망진창의 사진들만 남겼구나.

(실은 사진 찍는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잘 못 찍어요. 얼마 전에 제 사진을 보던 동생이 이 감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기적이라며... 저는 뭐 많이 안 찍어 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

그 엉망진창 사진들 중에 골라본 몇 장의 내부 장식사진들.



적당한 속도로 나스르 궁을 모두 보는데만 해도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이쯤 되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궁을 나가기 직전 이 작은 정원에서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린다하라 정원


이제는 마지막 목적지 헤네랄리페로 간다.

나스르 궁으로부터 저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이 헤네랄리페.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왕족의 여름 별궁이었다는 헤네랄리페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온갖 꽃과 나무가 무성했다.

특히 헤네랄리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키가 큰 사이프러스 나무 길이 눈에 띄었는데 아랍인들은 이 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이 곳이 헤네랄리페 내부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아세키아 정원.

분수를 가운데 두고 흐드러지게 핀 꽃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정원의 왼편으로는 오늘 열심히 걸어다녔던 알람브라 궁전의 반대편을 볼 수 어서  이렇게 다시 한 번 눈에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

관람을 마치고 알람브라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

시계를 보니 알람브라를 다 둘러보는데 무려 6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으로 정보 검색을 했을 때 세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세 시간으론 제대로 즐기기가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좀 다른데 시간을 보낸 탓이기도 하지만...


천장이 없는 알카사바 성채에서 뙤약볕에 장시간 노출된 후에 너무 지치기도 했고 뱃속 2차 전쟁으로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는 나무그들에서 신선놀음을 했다. 여행 정보글은 아니지만 혹시 언젠가 우리처럼 더운 날에 알람브라에 가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실지도 모르니 "알카사바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아이스크림 파는 작은 부스가 있습니다."라고 적어두고 싶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점심도 안 먹었고 날은 뜨거웠으니 그때 먹은 그 아이스크림이 우릴 살렸다고 할 수밖에...


즐거운 한 때

그리고 알람브라 어느 구역에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랑이, 줄무늬 노랑이, 오묘한 줄무늬, 노랑검정이, 검정이 등등. 사람들이 있든말든 여유로운 고양이들이 너무 웃겨서 같이 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말이 노는 거지 졸졸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팔려서 그만...

고양이들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사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나는 알람브라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미니가 가자고 해서 왔다. 좋은 계절에 방문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잘 보존된 아랍의 건축물은 잘 가꾸어진 자연과 함께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알람브라를 본 것만으로 우리의 여행이 이미 꽉 찬 듯한 느낌.

 


기쁘게 호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근처광장으로 나왔다. 고생한 몸뚱이에 수분을 채워주기 위해 맥주를 한 잔씩 주문하니 이베리아 포크로 만든 하몽을 얹은 바게뜨가 나왔다. 이것이 바로 그라나다의 아름다운 문화, 술이나 탄산을 한  주문하면 작은 타파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맥주도 맛있고 하몽도 너무 맛있어서 메뉴판을 부여잡고 동공 굴리기를 한참 한 뒤에 문어랑 크로켓도 주문했다. 물론 맥주도 더 마시고. 나는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니 내 평생 이리 부드러운 문어는 처음이라며 감탄을 하면서 먹었고, 예전엔 징그럽다고 손도 안대던 미니도 문어의 참 맛을 알게 되서 더더욱 기쁜 날.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눠 먹을 사람이랑 산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근데 미니가 너무 잘 먹어서 은근 경쟁심이 불탔던 것은 나만 알기로.

더 먹을거야!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흥이 절로 났으나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인 현실. 나도 한 때는 밤샘을 불사하는 흥녀였는데 이제 2차따윈 없다. 피곤하고 허기진 우리는 팔라펠(병아리 콩으로 만든 중동의 크로켓)샌드위치를 포장해서 호텔로 향했다. 몸이 피곤한거지 입이랑 위장이 피곤한건 아니니까.


"남편, 아까 (내) 문어 먹더라?!"




양껏 먹은 후에 정신차리고 보니 이 날의 반전...



바캉스의 흔적

시계줄 자국과 소매자국은 그렇다 치고 얼굴에 썬글라스 자국은 어쩌나...



남편, 그래도 우리 너무 즐거웠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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