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 Oct 02. 2018

4. 뒤늦은 여름 이야기

별 일 없는 오늘

지난여름은 정말 어마어마했죠. 한국은 이글이글 타고 있다는 얘기를 매일 전해 들었습니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뜨거운데 습하기까지 한 한국에 비해 건조한 이곳의 여름이 훨씬 낫다 싶지만, 그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 것은 대부분의 가정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 곳의 여름 자체가 견딜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실외기를 설치하는 것이 금지된 아파트가 대다수예요. 미관을 중요시하고 삶의 여러 부분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삶을 고수하는 나라. 이런 프랑스도 이제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된 걸까요? 자연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없는 거 같아요.


그 뜨거웠던 여름을 미니와 저는 낡은 선풍기 한 대로 버텼습니다. 조준을 잘 못하면 바람이 나오는지 조차도 모를 길쭉한 형태의 이상한 선풍기. 밤이 되면 이 선풍기마저 뜨뜻한 바람을 내뿜으니까 잠자기 에는 미세하게나마 집안 공기의 온도를 낮춰줄 묘안이 필요했어요.


미니는 페트병에 물을 담아 얼리고, 얼음통에도 얼음을 담아 얼리고 최대한으로 냉동실을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얼음이 녹으면서 차가운 공기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바람에 실려와요

이런 식으로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미니의 게임 준비 모드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이렇게 세팅을 했어요.



귀한 얼음 페트병을 세워두고 나무 바닥과 한 몸이 되어있던 어느 날. 디선가 찍! 하는 소리가… 귀를 의심하면서 그대로 바닥에 붙어 있는데 잠시 후 다시, 찍찍!


아악!!!!!!!!!!!!! 이것은!!!!!!!!!!!!!!!!!

요즘 파리에 쥐가 넘쳐난다더니 믿기 어렵지만 쥐가 우는 소리가 분명했어요. 재작년 작년 파리 강수가 높아지면서 지하세계 쥐들이 세상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늦봄 무렵 쥐 소탕에 대한 시청 유인물을 받은 적도 있고요. 최근 사람들이 엄청나게 지나다니는 길거리 덤불 속에서 몇 번이라 쥐꼬리를 발견 한터라 미니와 저는 칠색 팔색 사색이 되었습니다. 사실 며칠 전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미니도 정확히 들었고요. 발랑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면서 집안 구석구석 살피기는커녕 두 겁쟁이는 온갖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남편은 테니스 채를 들고 저는 돌돌 만 도화지 뭉치를 들고요. 사실 쥐가 눈앞에 나온다 한들 두 겁쟁이가 뭐를 할 수 있겠나 싶으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손에 뭐라도 들어야만 했어요.


쥐가 꽤 영악하더라고요. 호들갑 떠는소리를 들었는지 소리는 또 잠잠해졌습니다. 쥐는 어디로 갔나 걱정하면서 반나절을 보내고 나서 미니가 룰루랄라 샤워를 하고 있을 때, 하필 저 혼자 방에 있을 때 또 다시 찍! 소리가 났어요. 하…. 너무 무서웠는데 팔뚝에 난 털 한가닥까지 에너지를 보내 온전히 소리에만 집중했어요. 또 한 번 찍! 소리가 났고 엄청난 용기를 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지요. 한참을 기다리니 다시 나는 쥐 소리… 그렇게 한 발 한 발, 어느 순간 정말 제 바로 앞에서 찍찍! 하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소름이!


그것은 쥐가 아니었어. 어이 없게도 범인은 우리를 여름 내내 지켜 준 낡은 선풍기였습니다.

“남편! 남편!! 지금 또 소리가 났어! 내가 쥐를 찾았어! 빨리 나와 봐!!”

물을 뚝뚝 흘리며 헐레벌떡 나온 남편을 선풍기 앞에 앉혔지요. 의심 많은 미니는 몇 번이나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안심을 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그 날 뭘 했냐고요?

현실은 무반주

당연히 춤을 췄습니다.

기쁠 땐 늘 춤을 춥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

하루하루의 모양이 다 똑같을 순 없겠지만 결국은 평범한 일상.


추억속으로 풍덩

이런저런 날들로 가득한 여름을 보냈어요. 얼음물을 입에 달고 더워더워 하면서, 언제 여름이 끝나나 노래를 하다 보니 어느덧 히터 없이 못 지낼 싸늘한 가을날이 찾아왔습니다.


미니와 보낸 나의 여름들

함께 보낸 여덟 번째 여름,

올해도 마음 속에 꾹꾹 담았습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3. 근육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