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ho Jul 12. 2022

나에겐 초능력 _ 올나이트

내가 모르는 세계





   나는 아침잠이 많은 아침형 인간이다. 평일에 알람만 맞춰두면 정말 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주말에는 절대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늦잠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말이 안 될 정도로 늦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과 밤에는 꼭 잠을 자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주말 나의 기상 시간은 대략 아홉 시 경이다. 아홉 시 삼십 분일 때도 있고 열 시까지 못 일어난 날도 있다. 내가 늦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두 사람 때문이다. 그들은 주말에도 아침 일곱 시, 빠르면 여섯 시에도 일어난다. 내가 느지막이 일어나 반쯤 감은 눈으로 걸어 나오면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침을 먹고 있다.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같은 인사를 하거나 말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아이는 밥을 입에 문 채 달려와 나를 안아준다. 나는 아침형 인간인데, 우리 집 사람들은 더 지독한 아침형 인간이다.

   잠드는 시간 자체도 다르다. 나는 밤 열두 시를 기준으로 한 시간 안팎으로 잠자리에 든다. 자리에 누워서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한참 뒤척이다가 결국 예상보다 늦게 잠든다. 반면 우리 집 두 사람은 밤 아홉 시를 기준으로 삼십 분 안팎으로 잠자리에 든다. 둘 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 날도 있는데(거의 없다) 그래도 보면 어느새 잠들어 있다. 누가 마취총이라도 쏜 것처럼 잠든 두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또 다행이고. 작은 사람은 아직 성장기 어린이라 일찍 잔다고 치지만 큰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연애할 때는 매일 이른 저녁부터 잔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새벽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하지 싶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이 사람은 이런 생활방식이 곧 습관이고 그저 한결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어쩌면 작은 사람은 얼굴뿐만 아니라 그런 몸의 리듬까지도 큰 사람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같은 공식을 갖고 있다. 

   

   밤=자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     


   나도 내 부모님을 닮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비슷한 일과를 보내신다. 새벽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열한 시쯤 잠자리에 드신다. 내가 반복되는 루틴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삶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가끔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언니 방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녀조차도 밤보다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밤을 지새울 만큼 공부를 해본 적이, 글쎄. 이렇게 졸린 데 지금 뭘 더 본다 한들 머릿속에 들어오겠나 싶었다. 결국, 이기는 쪽은 잠과 자기 합리화였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다. 수업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내가 갈 수 있는 활동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나는 예술대학 소속이어서 시험은 거의 없었고 대신 매번 제출해야 하는 실기 과제물이 많았다. 주로 조별 활동이 많았기 때문에 과제를 핑계 삼아 친구들과 밤을 새우기도 했다. 야간작업, 줄여서 ‘야작’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 예술대학이라는 건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야작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처음에는 야작을 앞세워 친구들과 대학로나 홍대에서 밤늦게까지 놀았다. 밤이 이토록 환한 세상이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깨어있는 수많은 사람과 화려한 간판 불빛이 거리마다 넘실거렸다. 처음 몇 번은 그런 광경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나는 졸렸기 때문에 정신은 몽롱한 상태였다. 신나게 놀만큼 활동적이지 않기도 했고, 그런 세계를 즐길 줄은 더욱 몰랐으므로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매번 놀 순 없을 만큼 정말 과제가 많았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학교에서 같은 과 동기들과 음악을 틀어놓고 수다를 떨며 작품을 만드는 일이 훨씬 일상적이었다. 

   동기 중에서 나와 내 친구 M과 E는 결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학교보다 누군가의 집을 더 선호했고, 늦게까지 과제를 하다가도 잠시 눈을 붙일 편안한 장소가 필요했다. 너무 늦게까지 작업하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자고 일어나 새벽에 마무리하는 편을 택했다. 우연히 생활방식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된 건지, 그런 면 때문에 서로에게 끌리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든든했다. 그녀들 덕분에 나는 잘 자고 잘 일어나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나답게 남을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해 주어 고맙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는지. 어쩌면 좋았던 건 나뿐이고 더 놀지 못한 지난날을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나에게 밤은 어둠과 고요, 꿈과 공상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자려고 누워서 내가 기다리는 것은 잠이지만 그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찾아온다.

어느 날에는 이런 상상을 했다. 지구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세트라서 스위치를 올리고 내려서 낮과 밤을 구분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무대 저편에 내가 모르는 세상을 그려본다. 나만 빼고 모두 즐거운 그곳은 나에게 우주만큼 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겐 초능력 _ 수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