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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Oct 21. 2021

생의 실루엣 - 미야모토 테루


쓰다 아주머니도 돌아가시고 2,3년이 지난 무렵,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예전에는 쓰다가의 소유였던 귤 산에 올랐다. 이렇게 큰 산이었나 놀라며 진주 양식용 뗏목이 가지런히 떠 있는 아름다운 미쇼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 소네자키 경찰서에서 쓰다 아주머니가 후배 경찰들에게 어린 나를 소개하던 순간의 말이 문득 되살아났다.


"내 자식 같은 애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그것과 겹치듯이 툇마루에서 아저씨가 했던 말도 가슴에 북받쳤다. 쓰다 아저씨의 말속에는 천만 마디를 써도 표현하지 못할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깨달았다.


난요의 햇빛을 받고 빙빙 도는 갈매기를 눈 아래로 바라보며, 나는 생명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생각했다. 생명보다 이상한 것이 달리 있을까, 하고.



- 미야모토 테루 <생의 실루엣> 210p







일본의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미야모토 테루가 <소유>에 연재하던 에세이를 모아 엮은 문고판 책이다. 사실 그의 저서는 제법 귀에 익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에 손을 쉽게 뻗기는 힘들었다. 일본 남성 작가들의 글에서 나는 이상한 폭력성의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이 책 역시 사놓고도 한참을 책장에 등만 보인 채 있다가 잠시 많은 의무감에서 시선을 돌릴 때 눈에 띄었다. 책이 가진 물성에 쉽게 사로잡히는 나로서는 코팅되지 않은 종이, 가벼운 내지의 매력에 금방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읽어 나가는데, 마치 취하듯이 글들을 내 안으로 빨아들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문장들이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느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소환한 사람들, 건물, 풍경, 분위기들이 사소한 일이었겠지만 그의 문체로 다시 태어난 것은 간결한 사유의 형태였다. 이 책을 덮은 순간, 만족스러운 독서의 행위에 입가는 절로 올라갔다. 이런 경험을 하면 꼭 그 작가의 다른 책을 들여다보려고 하기에, 얼른 그의 다른 저서를 들였다.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기에 또 다르겠지만 그를 한 번은 만났기에 소설역시 관대함이 한 스푼 더해진 채로 만나게 될 것이다.




번외 편 같지만 가끔 시인이 쓰는 에세이와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를 번갈아가며 읽기도 하는데 두 글의 성격이나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글의 매혹적인 부분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시인의 에세이와 작가 자체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소설가의 에세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어느 편이 더 좋냐고 하냐면 솔직히 소설가의 에세이를 나는 조금 더 사랑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사실 시인의 에세이는 읽고 나서도 정리하기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너무나 솔직한 것 아닌가) 왜 이 생각이 <생의 실루엣>을 읽고 나서 갑자기 더 강하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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