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되지 않은 역할에 대한 채용은 "독"이다
지난해 추석.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군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그 내용에서처럼 어떤 당연한 것일지라도 그 본질을 정의 내리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매일 보는 지하철, 버스, 사과, 필기도구, 노트북, 예금, 현금인출기 등 일상 속 사물일지라도 장시간 깊은 사유 없이 그 개념의 본질을 간단 명료히 설명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블랭크에서 좋은 마케팅은 무엇인가?"
"좋은 마케팅이란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지난해말 사내 피플 유닛 - 회사의 인재상을 정의하고 채용과 사내문화를 책임지는 역할부서 - 의 문화담당자분께 받은 질문이다. 처음엔 주저리 주저리 그 앞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논리적인 것처럼 늘어놓았지만 돌아온 그의 대답은 "모호한데요?"였다. 나 역시도 말을 뱉으면서 속으론 스스로에 "정말 그렇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같은 질문을 할 정도였으니. 그 일이 있고 못마땅한 심정을 풀고자 몇 가지 우리 마케팅의 핵심역할을 정의하는 데 여럿과 시간을 들였고, 그 결과 최근 괜찮은 답을 내렸다. 그리고 금주부터 마케터 채용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간 암묵적으로만 블랭크 마케팅의 역할은 브랜드 마케터와 퍼포먼스 마케터가 나누어 가졌다. 여기서 그동안 "암묵적"이었단 것은, 풀이하면, "서로에게 상호배타적인 역할은 무엇이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은 무엇인지 머릴 맞대고 제대로 정의해본 적이 없단 뜻"이다.
먼저, "브랜드 마케터".
첫 번째, 관찰자다.
시장에서 제품의 고객은 누구인가?
시장에서 제품의 위치와 상황은 어떠한가?
캠페인 타깃 오디언스를 정하고 광고를 생성하는 것까지 자동화와 최적화 시스템이 해결하는 시대에 접어들며 누구나 쉽게 디지털 마케팅을 이해하고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혁신의 이기가 마케터로 하여금 제일 중요한 질문인 "우리 고객이 누구인가", "왜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가"와 같은 사유를 이전보다 등한시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기계적으로 광고 지표를 보고 미래 효율을 점쳐 투입할 예산을 결정하고 또 소재를 등록할 뿐 그걸 누구에게 얼마나 도달시킬 것이고 어떤 화제를 던질 건지에 관한 고민이 점차 적어진다는 기분이 든다. 특히 비디오커머스 마케팅에서 이 양상이 짙은 것 같다.
브랜드 마케터는 이러한 마케팅의 관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담당 브랜드를 사랑해 줄 고객을 프로파일링하고 가설에 따라 "이야기꾼"처럼 그녀와 그가 좋아할 메시지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계획을 짠다. 또 브랜드가 처한 현 상황에서 기회와 위기를 시장 조사를 통해 꾸준히 발견하고 그에 알맞은 기간별 마케팅 계획과 달성해나갈 목표를 세운다.
두 번째, 브랜드 이미지의 하한선을 설정한다.
세일즈와 브랜드 철학 사이에서의 고민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먼저, 해야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목록화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페이스북 광고관리자에 영상, 이미지 광고를 수십 개 등록하다 보면 양이 많기도 하고, 업 특성상 소재 하나 하나에 정제된 메시지보단 클릭을 유발하는 문안을 주로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 과정에서 제품기획자가 지키고자 한 브랜드와 제품의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발생하는데, 이때 브랜드 마케터는 그 가치와 세일즈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등록된 문안이나 크리에이티브가 가진 파급력이 세더라도 결정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해칠 수 있다면 재고해보는 식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 마케터는 제품기획자뿐만 아니라 성과지표를 관리하는 유닛과 시각의 컨센서스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고, 과정에서 균형 잡힌 입장을 고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직접 브랜드 결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퍼포먼스 마케터"의 역할이다.
*난 퍼포먼스 마케터란 용어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이는 "퍼포먼스"가 갖는 의미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역할의 영역을 매우 모호하게 만든단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근래 새 이름을 정했는데, 가칭이지만, 옵티마이저 혹은 최적화형 마케터로 정해보았다.
비교적 국한된 광고채널에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승부를 보는 비디오 커머스 산업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빠른 제품 카테고리 확장(출시)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치고 빠지기를 수백 번 하는 것이 한 번의 대단한 상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낫다. 어쩌면 이 산업은 린(lean)스타트업의 가장 작은 단위이겠다고 생각한다.
이 배경에서 제품과 브랜드가 늘어날 때마다 퍼포먼스 마케터를 채용해 배치한다면 회사로서는 큰 부담일 것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마케터(최적화형 마케터)에게 할당할 적절한 KPI는 "1인당 관리 가능한 캠페인의 숫자"라고 생각한다. 그 개수가 많을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확률이 크고 주된 관리 영역은 우선 광고수익률(ROAS)과 같은 수치적 부분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복합적이다. 광고 지표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뿐 아니라 곳곳에 쌓이는 비즈니스 관련 데이터를 취합하고 시각화하는 능력까지 다양하다. 수십, 수백 개의 캠페인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과 정보가 물 흐르듯 흘러야 하고, 더 나아가 의사결정까지의 과정이 자동화되면 가장 좋다.
그래서 최적화형 마케터 셀(cell)에는 마케터뿐 아니라 블랭크에서 희소성 높은 개발자와 프로덕트매니저가 속해있다. 그리고 그들은 광고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가깝게 교류하고 발견한 인사이트를 적용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브랜드 마케터와 최적화형 마케터의 연결점 "에이전시형 마케터"다.
에이전시형 마케터는 브랜드 마케터와 최적화형 마케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브랜드 마케터와 담당 브랜드를 부여 받아, 조금 더 객관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브랜드의 KPI와 미디어믹스를 수립한다. 그리고 외부 광고 에이전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진다.
보통 광고에이전시와 일할 때 RFP라고 하는 제안요청서를 작성해 의뢰하면, 에이전시에서는 시장에서 얻은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캠페인 목적을 수정해주고, 그에 따른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연결성 있는 광고매체를 제안해주곤 한다. 바로 이처럼 블랭크의 에이전시형 마케터는 브랜드 마케터가 브랜드 철학 정립에 골몰할 동안 최적화형 마케터 셀에서 보고하는 객관적 지표를 기반으로 브랜드의 KPI를 조정하고, 브랜드 맥락과 고객 동선 상에서 연결성 높은 미디어믹스를 짜는 것을 지원한다.
이 모든 업무는 브랜드 마케터와 짝을 이뤄 진행하기에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이해도도 꽤 높아야 하고, 객관적 지표와 브랜드의 신념 사이에서 끊임 없이 저울질하며 사고해야 하기에 공감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뛰어나야 한다. 즉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태도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블랭크 마케터의 역할 지도(role map)를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회사 내 이런 저런 개념에 관한 원칙과 정의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첨예한 논의도 오가며 예민해지고 평정도 잃을 때가 있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고 앞으로 더 단단한 조직이 될 수 있는 자양분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또, 이전에 어줍짢게 페이스북 담벼락에 비즈니스 디벨로퍼를 모집한다느니 어쩌느니 주접을 떨었던 일도 반성했다. 이번과 같은 가열한 고민 없이 겉멋만 가득 들어간 글이었기 때문이다.
+마치며...
블랭크에서는 인사에 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좋은 분 많이 오셨으면 합니다.
브랜드 마케터(0명)와 에이전시형 마케터(0명) 채용 공고가 이곳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곧, 최적화형 마케터에 대한 잡디스크립션도 게시하고 채용 창구를 열 계획이오니 관심 부탁드립니다 :D
+덧붙임
최적화형 마케터 채용공고를 추가 게재했습니다.
많은 신청과 문의 부탁드립니다 :D
(끝)